행복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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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기에 나는 너무 행복한 것일까? 그래, 행복하다. 그런데 이 행복은 왜 이렇게 마른빵처럼 부스럭거리는지 모르겠다. 그는 내가 일을 가지 않으면 일을 가지 않는다. 나랑 있고 싶어한다. 나 역시 어느쪽이든 그가 더 행복한 쪽을 선택하는데 대해 별다른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는 따뜻한 감옥이다. 지금껏 살며 등이 너무 시렸던 나는 열선으로 만든 창살 같은 그를 떠나는 것이 무섭다. 나는 봄꽃처럼 치렁치렁 피어나는데 나의 시는 시들시들 시들어간다. 시의 결과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지한 것도 심각한 것도 절실한 것도 없다. 행복은 시나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충족감은 결핍보다 외롭지 못해 누구에게도 말을 걸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어디에 시를 투고 해보겠다고 이전에 썼던 시를 마주하고 앉아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내 나이 마흔 아홉이다. 함께 감을 솎으러 간 이모들은 나의 젊음을 부러워한다. 그런데 내게 닿으면 젊음이란 단어가 벌겋게 녹이 스는 것 같다. 칠단 사다리 꼭대기에서 두번이나 굴러 떨어져서도 한 군데도 다치지 않은 나를 보고 이모들은 내가 젊어서그렇다고 말한다. 어디서 낙법을 배운 적도 없는데 머리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몸을 둥글리고 굴러 떨어지는 순발력이 젊음 때문이라고 이모들은 말한다. 사실은 죽어도 다쳐서는 않되는 내 형편이 나의 몸에게 순간적인 명령을 한 것인데 말이다. 그 집의 감나무들은 키가 너무 크다. 산재 보험을 넣어준다지만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면 내겐 그나마 있으나마나, 그래도 오늘 죽지 않았으니 올 내일조차 사라지고 만다. 감 농장 사장이 이렇게 그만두면 우리 농사는 어떻게 되냐고 악다구니를 쳤지만, 그렇게 큰 감 농장을 가진 농장 주인이 전 재산이 몸뚱이 하나 뿐인 나에게 자신의 입장을 호소 하는 일은 그리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남편은 내가 끊고 맺고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드냐고 불 같이 화를 내지만 역지사지가 어쩐지 내 유전자에 새겨진, 어떻게 피해 볼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의 조건인 것 같다. 결국 감 농장 여 사장의 하소연에 질질 끌려가는 나를 보다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셔서 나는 그 큰 감나무들의 살의로 부터 탈출 할 수 있었다. 무슨 까닭인지 풀을 다 베어버리고, 미끈거리는 거름을 뿌려서 그 집 사다리는 조금만 방심하면 가랑이가 쭉쭉 찢어졌다. 나보다도 키가 작은 어머니와 이모는 아무리 발돋움을 해도 감 잎을 뜯지 않고는 감을 솎을 수 없었고, 나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어머니와 이모의 손이 닿지 않는 꼭대기 감들을 뒷처리 해야만 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이 아홉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일부러 한 두 칸은 남겨두고 올라가는 사다리에서 딱 한 칸만 발을 더 딪으면 솎을 수 있을 것 같은 감을 보며 불현듯 떠오르는 아홉수 이야기에 흠칫해졌다. 죽는 것...죽는 것 말이다. 솔직히 아직 무섭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다리로도 되지 않는 가지는 감나무를 탔다. 그러면 또 감나무가 다른 과실 나무보다 잘 부러져서 농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감나무에서 떨어져 죽거나 병신이 된 아제나 사촌, 사돈 팔촌이 꼭 한 명씩 있는데, 감나무 외가지에 온 몸을 지탱해서 목고개 틀어진 해바라기처럼 감나무 사이로 쨍쨍거리는 햇살과 눈이 마주치다보면 온 몸에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
다음 주부터 이모와 어머니를 따라 가게 될 곳은 양파 캐는 곳이다. 미처 다 솎아주지 못한, 그 농장 야산에 거의 대부분인 감나무들에겐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다치고 죽을 자유가 없다. 나는 또 흙이 토하는, 그 흙묻은 구근들에 대해 애틋할 것이다. 살아 있으므로 말이다. 이모들이 부러워하는 아직 젊은 우리들은 소변 보는 일이 골칫거리 일 것이다. 숲이 없는 벌판이기때문이라고 했다. 햇빛을 가려 줄 감잎 한 장 없을 것이라 했다. 포대에 가득한 양파를 우리가 끌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힘들것이라 했다. 그래도 죽을 가능성은 훨씬 더 적을 것이라 했다. 사다리나 나뭇 가지도 없이 딱 땅에 밀착해서 종일 땅과 독대를 할 것이다. 시나 한 포대씩 캘 수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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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님의 댓글

"미끈거리는 거름을 뿌려서 그 집 사다리는 조금만 방심하면 가랑이가 쭉쭉 찢어졌다"
일기라며 꺼내놓으신 음흉(ㅋㅋㅋ)한 글을 읽다가 입꼬리가 아주 쭉쭉 찢어집니다.
진짜 재밌는 미친 필력입니다. 글 읽으며 담뱃재를 떤 종이컵 커피를 마신 것은 존경의 뜻입니다.
웩웩웩~! 앳췽!!! 중독된다.... 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