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나무를 우러러 보러 나서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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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몸이란 정말 말귀를 알아듣는 꽃이다. 어제 잠들기 전, 너는 내일 다섯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더니, 새벽에 다섯시 이분에 잠을 깼다. 그것은 선거운동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떡이 되어도 몸은 내 말을 기억한다. 내 말을 몸에게 건내는 나는 누구이고, 내가 건낸 말을 알아듣고 시행하는 몸은 누구인지 모를 일이다. 어쟀거나 나는 다섯시 이분에 깨어 몇년이 된 건지도 모르는, 방구석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던 썬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그것도 모자라 비비크림을 잔뜩 덧발라 게이샤처럼 야한 얼굴이 되었다. 어느새 햇빛은 이렇게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 되버린 건지...오늘은 드디어 사과를 쏙으러 간다. 사과, 사과, 아! 사과, 사과라는 단어만 들어도 향기롭고 달콤한 과육맛이 입안 가득 고인다. 꽃을 딴다는 것일까? 아직 어린 사과를 딴다는 말일까? 어젯밤에는 피로에 젖어, 또 내 인생은 어디로 팔려 나갈것인가 싶더니, 역시 새벽이다. 생각이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깨어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같은 일자리에 가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할까? 나는 거의 일주일, 보름, 어떨땐 하루 걸러서도 직장이 달라진다. 나에게 어제와 똑 같은 오늘은 자주 없는 일이다.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근사한 하루가 시작되는 날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아니라 사과 나무를 받드는 일은 나의 생각이나 관점들을 사람에서 사과와 나무, 자연, 세계, 우주로 확장 시킬것이다. 보는 것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면 내 영혼의 구성이 달라진다. 새를 볼 것이고 개미를, 청설모를 볼 것이고, 나비와 꽃들을 볼 것이다. 구름을 볼 것이고, 하늘과 태양을 볼 것이다. 동트는 해를 볼 것이다. 그들에게 비싼 골프 웨어를 차려 입고 찾아가는 필드가 있듯, 가난한 내게도 싸구려 바람막이를 입고 찾아가는 필드가 있다니, 골프공은 쏙아주면 점 점 더 크고 달게 자라지도 않는데, 내가 쏙아 준 사과의 형제 자매들은 날마다 둥실둥실 살이 오르고 단물이 올라 가을이면 처녀들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시집갈 궁리를 할 것이다.
하루야! 화이팅이다. 너는 늘 생의 본질을 맨손으로 만지며 산다. 너, 시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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