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나무에서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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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나무는 역시 사람보다 아름다웠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거짓말이였다. 내가 사과 나무에게 해야 했던 일은 사람보다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것 같은 사과꽃을 쓰레기처럼 꺽고, 오종종 맺은 어린 사과의 씨알들 중 가장 굵고 단단할 것 같은 한 알만을 남겨 두는 일이였다. 일을 시작한지 한시간도 못되어 관광버스를 타고 사과 나무 과수원으로 오르며 사과꽃을 보고 지르던 탄성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아직도 한참 나비가 얼렁대는 사과꽃은 또다른 씨알을 맺기전에 꺽어야하는 사과나무의 적이였다. 처음부터 자연이 먼저 사과의 자본주의를 시작한 건지 농부들이 시작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한 무더기에 예닐곱개씩 달린 아기 사과 중 가장 씨알 굵고 튼튼해 보이는 놈에게 다른 사과가 성장하며 먹어야할 양분을 모두 몰아주게 돕는일이 우리의 일이였다. 무리의 약자를 돌보고 약자들과 더불어 살아남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웠으면 하는 사람들의 이상이지, 자연의 섭리는 아닌것 같았다. 그냥 우리들 자신만 돌아보아도 그렇다. 1억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억마리 중 가장 강한 내가 태어나며 그 구만구천구백구십구 마리의 정자들은 그 치열한 수영 시합을 끝으로, 그대로 몰살이였지 않은가? 나는 그 1억명의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그 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의 인간들을 대표하고 대신해서 이 지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사과의 자본 주의를 돕지 않아도 자연은 한 가지에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사과를 달고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 잘먹고 잘 사는 것은 모두 고만고만한 크기와 당도를 지닌 사과를 많이 맺는다는 것이고, 차라리 잘 될 놈이나 잘되는 사과는 크고 당도도 뛰어난 사람의 입맛에 행복한 사과 일 것이다. 사과 나무는 자신의 이 급격한 진화를 원했을까? 아마도 좀 더 많은 사과들이 햇빛의 달콤함과 타는 갈증을 파고드는 빗물의 시원함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며, 스스로 먹을 것도 아닌 당도나 크기에 집착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달다던가 쓰다던가하는 것은 달고 쓴 생명체에게 피부가 검다던가 희다던가하는 종의 특징일뿐 그 자신에게 아무런 불편도 자랑꺼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제 독에 중독되어 죽는 독사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소나 돼지나 오리나 닭도 마찬가지 일 것 같았다. 자신이 원하는 자신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원하는 소 돼지 오리 닭으로 진화 해왔을 것이다. 더 크고 더 육질이 부드러운..지 고기를 뜯어 먹을 일도 없을텐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고만고만한 특질들을 다 포기하고 더 크고, 더 달콤하게 말이다. 결국 자연은 강한 것을, 적자를 사랑하니까 여기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아! 항상 나의 생각은 너무 멀리 여행한다. 대한노인협회에서 지원한다는 우리들은 어쩌면 신이 엄지 손가락과 검지를 포개가며 솎아내고 싶은 무리들인지도 모른다. 점심 시간에 함께 밥을 먹으며 마주앉은 일꾼들은 거의가 칠십대가 되어가거나 넘은 할머니들이였다. 그 노인들이 어떻게 사다리를 타고 그렇게 자잘하게 무리져 있는 사과 씨알을 솎아 낸다는 말인지..그래도 할머니들은 사과 나무 과수원집 시어머니의 잔소리 폭풍을 잘 견디며 사다리에 매달려 하루를 잘 견디셨다. 가끔 좀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우리들 인간의 무리에서 약자에 속하는 베트남 필리핀 이주 여성들이였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늙은 한국인들과 잽도 되지 않는 강한 존재들이였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그들은 칠십대 할머니보다 열외의 사람들이였다. 그녀들은 기계보다 정확하게 기계보다 잘 일했지만 기계와 마찬가지로 불만불평이 없었다. 그들의 불만불평은 개인간의 문제가 되지 못하고, 우리라는 국가조직 전체에 대한 반항으로 비칠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하는 불만불평을 그녀들이 하면 베트남, 필리핀 여성들은 말이 많다는 국가적인 평가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그나마도 무슨 말이라도 한국말로 전달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녀들 중 한국말로 한국 사람과 비슷한 정서를 표현하고 소통해낼 수 있는 그녀들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베트남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비를 맞고 가길래 "티안! 여자가 비 맞고 자전거 타고 가는 모습 너무 안스럽게 보여! 비오는 날은 버스타고 다녀"라고 충고 했더니, 먼저 안스럽다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비를 맞는것이 총알을 맞는것도 아닌데 왜 피해야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산성비라던가 황사비라는 문제가 아니라 처량하게 남의 눈에 보이는 것이 총알을 맞는 것 못지 않게 사람의 기분을 죽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인 여성은 종일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며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삶은 이미 솎음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 일까? 간암말기 환자가 남편이였던 티안은 아이가 하나 있는 스물 여덟의 미망인이다. 가족들은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면서 티안을 베트남에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아이와 함께 티안은 시누들이 얻어준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그나마 베트남에서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는지 알 수는 없지만 티안은 잘 웃지 않으면서 잘 살아간다. 우리가 쏙아낸 꽃에도 한 동안은 나비가 날아들듯 말이다.
사건은 마칠 무렵에 일어났다.
오후 다섯시에 일을 마치고 한 시간 반이나 달려 거창에서 진주로 와야하는데 어쩐 일인지 차도 사람도 아침에 우리를 내려 주었던 과수원의 오르막길로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아주머니는 시간 되었다고 땡치냐? 어찌그리 인정머리가 없는가, 차 올때까지 더 일하자고 말했고, 그나마 일을 잃을까봐 눈치를 보며 몇몇 할머니들은 낮은 곳의 사과를 솎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처럼 해가 남아 있을때 퇴근할 수 있다는 기대가 무너지는가 싶어 좀 초조해졌다. 그래서 토시를 벗고 입에 쓰고 있었던 마스크를 벗고 앞치마를 천천히 벗으며 계속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삼십분이 지나도록 차는 오지 않았다. " 우리가 일을 잘하지도 못했는데 시간 됐다고 마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어머니와 함께 왔던 시이모님이 나섰다."그건 무슨 소리고? 처음 일하는데 잘하고 못하고가 오데있노? 그라몬 처음부터 일을 잘하는 사람을 불렀어야지..일을 잘했거나 못했거나 약속된 시간이 끝났는데 일을 마치야지 뭔 소리하고 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시어머니와 시이모도 있는데 어지간하면 아무 소리도 말자 싶었던 나도 이때다 하고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돈에서 오천원 더 받는다는 반장님에게 전화 해보세요. 이런 경우 책임지고 연락하고 수습하라고 우리 피 같은 돈 오천원 더 주는것 아닌가요? " 그러자 우리의 목소리에 주눅이 들었던 아주머니가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과 따는 일은 하지도 않고 굴공장엣 굴을 까고 있다는 반장은 우리가 봉고차를 타고 산을 내려가서 삼십분이 넘어서야 우리들 앞에 도착했다. 얼마전 바로 앞의 슈퍼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사장 친구가 "오늘은 일당 못 받겠네..여섯시 까지 일해야 되는데 다섯시 반까지 일했으니"하고 염장을 지르다 할머니들에게 쌍욕을 듣고 도망간 이후의 일이였다. 화가 난 할머니들이 원래 다섯시까지 일하고 왔는데 무슨 일이냐고 항의를 하자 이런 힘없는 노약자들을 다스리는데 이골이 난듯한 반장 여자가 짝다리를 짚고 "야! 야! 야! 조용히해! 조용히!"하며 반말과 큰 목소리로 소란을 제압했다. 나는 늘 그래왔던 것 같은 그녀의 태도에 발끈해져서 "저기 아주머니..반말은 하지 마시지요."라고 말했다. 문제는 반장이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대한 노인협회에서 다섯시 삼십분까지라고 약속했는데 우리에게는 다섯시라고 약속하고 인력을 동원한 것이였다. 내가 화가 난 것은 그녀의 잘못보다 그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우리에게 보이는 그녀의 태도였다. 서로 전달이 잘못된 것 같다고만 말했을 뿐 죄송하다는 말한마디 없었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서는 마이크를 잡길래..뭐라고 사과를 하려나 했는데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들이 가관이였다. "여러분! 지금 뭐하는 겁니까? 오늘 정말 챙피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좋게 해결을 해야지 돛대기 시장도 아니고, 품위 없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 그기까지는 머리까지 피가 뻗치는 느낌을 누르며 꾹 참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와 시이모가 계셨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그녀가 수류탄의 핀을 뽑는 말을 했다." 원래 노동법에도 다섯시 반까지는 해야 하루 일당이 나옵니다." 물론 말도 않되는 소리였지만 무지한 약자들을 겁먹이는데 법만큼 좋은 무기가 어디 있는가? 나는 더 이상 참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무슨 소리 합니까? 처음부터 우리가 여기에 일하러 온 것은 노동법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우리에게 한 약속을 믿고 왔습니다. 분명히 우리 모두가 듣는데서 다섯시에 일을 마친다고 했쟎아요? 당신 하나 때문에 우리 모두가 삼십분씩 더 일을 하고 집에도 가지 못하고 묶여 있는데
무슨 착오가 생겨 그리되었다면 정중하게 사과를 할 일이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왜 당신이 한 약속만 믿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돛대기 시장이니 품위니 하면서 몰아 붙이세요? "한번터져버린 말은 봇물이 되어서 멈추어지지가 않았다. 신랑보다 여덟살 많은 며느리라 여지껏 어머니 앞에서 아닙니다. 틀렸어요. 싫어요라는 말 한마디 내뱉아본 적이 없던 나였다. 어머니와 시누이는 늘 내가 너무 순한 것을 걱정 하셨다. 늘 어디 식당을 가나 누구에게 당해서 울고 들어오는 내 모습만 보아 왔을 것이였다. 그런데 정말 화가 나니가 그 누구도 의식할 수가 없었다. 책임 지세요. 당신이 반장이라며 우리가 받아야할 수당 중 오천원을 더 받는다면서요 그러자 여자가 돈 육만원을 들고 흔들며 나도 똑 같이 받았다. 더 받은 것 없다..그러는 것이였다. 그럼 오늘 일도 하지 않았는데 이 육만원은 뭐냐? 돈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우리는 당신 말만 믿고 여기까지 일하러 온것이다. 우리 시간비 못받은 것 당신이 책임져라. 그리고 어디서 여기에 어른들도 많이 계신데 반말 짓거리냐? 자신이 미안하다고 절을 해도 시원챦을 판에 당신 말 믿고 목고개가 부러져라 일한 사람들 품위 운운하냐?
나중에는 그녀가 사과를 주며, 맥주를 들고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의 표독스러운 모습에 놀랐을까봐 차에 내려서 어머니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는데 의외로 어머니도 이모도 어머니 동네의 반장 아줌마도 오히려
"잘했다. 잘했다. 니 말이 진짜 백번 맞다. 저 년이 사람을 진짜 우습게 본다. 진짜 니 말 잘했다."하시며 칭찬을 하시는 것이였다.
그렇게 나는 사과 나무에게서 사람에게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녀는 이현동 사람은 이제 오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맥주를 권할 때 나 때문에 이현동 할머니들이 일자리를 잃었나 미안해서 "이현동 사람은 일하러 오지 말라고요? 협박하는 겁니까? 나는 어차피 오지 않을거다. 그런데 이렇게 치사하게 보복하는거냐? 반장님 그정도 밖에 않됩니까? 했더니 이현동 사람 다시 오라고 그녀가 말했지만 어머니도 이모도 엄마 동네 반장 아줌마도 다시는 그기 일하러 가지 않을거라고 하셨다. 오늘은 비가 내려 쉬고...다시 가사원 일을 받기로 했다.
내겐 사과 나무를 받드는 일도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아 몹시 우울하지만, 우리 사회가 솎아 낸 사람들을 위해 내가 분노하고 싸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이 사는 곳을 보면 그렇다. 꼭 누군가의 희생과 땀을 걷어 먹는 자가 있다. 그들은 감사할 줄도 모르고 겸손할 줄도 모른다. 그렇게 잔머리 굴릴 수 있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믿는다. 자신도 약자이면서 약자의 피땀을 빨아먹는 기생충이 되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기생충에서 우리에게 일을 주는 사람으로 진화 하려면 우리에게 감사하고 겸손하고, 우리들에 대해 자신이 이익을 얻는만큼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빚진 인생이라는 말은 정말 진리인 것 같다. 나는 태어나는 순간 아버지에게 빚졌고, 구만구천구백구십 아홉마리의 형제들에게 빚졌고, 어머니에게 빚졌다. 우리가 먹는 사과 한 알은 그 한무더기 사과 씨알들이 먹고 향유해야했을 햇빛과 비와 바람을 빚진 것이다. 빚진자는 오만하고 거만하면 않된다. 감사하고 겸손하며 책임감을 느껴야한다. 나처럼 분노하는 자가 없어 모레부터 반장 여자는 또 다시 짝다리를 짚고 할머니들을 제압하려 들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다시 일할 할머니들 중 그녀가 나에게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빌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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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님의 댓글

왓칭님 아침에 읽는 재미가 솔솔했는데
글씨가 너무 빡빡이여서 눈이 아른거려 힘이드네요
읽는 사람을 위하여 띄워서 써주심 안될런지 하고
안타까이 보네요 이렇게 긴글을 쓰셨는데
읽는 사람이 즐거이 읽어주면 좋지않을까고
생각해보며 이렇게 씁니다
수고요~~
왓칭님의 댓글

예... 주의 하겠습니다. 제가 워낙 급하게 글을 쓰서요. 읽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