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싹이 트고 꽃이 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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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아파트에서 토마토를 키워보고 싶다는 시누에게 빈화분에 심은 것을 한 그루 주고, 네 그루를 우리 마당에 심었다. 그리고 감나무 아래에는 해바라기 접시꽃과 수레국화와 비슷하게 생긴 꽃씨를 심었다. 이렇듯 희망이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심는 것일까? 곧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리라는 희망을 심었다. 토마토를 키워서 장사를 하고, 해바라기 접시꽃을 심어서 나물을 해먹을 것도 아니지만, 곧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리라는 사실로 인해 나는 희망을 얻었다. 도대체 희망이란 무엇이어야 했길래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 없으면 한 그루 사백원 하고, 한 봉지 삼백원 하는데 사다가 심으면 되지 않는가? 버스비 1200원을 내고 변두리 어느 풀숲에라도 던져두었을 희망을 찾으러 가면 되지 않는가? 이것 저것 장을 봐와서 평소 한번 제대로 끓여보고 싶었던 추어탕이라도 한번 끓여보라. 큰 국자에 뜬 추어탕의 간을 보며 희망의 맛을 보는 것은 어떤가? 희망은 없어서 못찾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찾지 못하는 것일까? 희망은 덩치가 커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야 하는 것인가? 소소하면 희망은 희망이 아닌가? 희망은 없는 것이 아니라 가지기 귀찮거나, 너무 많은 세잎 클로바가 지겨워서 네잎클로버를 찾고 손가락이 여섯개 달린 아기를 찾듯 희귀한 것을 희망이라 믿거나, 공기나 물처럼 너무 지천이라 굳이 소유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야망에 비해서 너무 작은 것이라 아예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
곧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리라. 사백원을 받고 사천원, 사만원을 거슬러주는 식물들의 계산법으로 희망을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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