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3月 14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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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6年 03月 14日
맑았다. 마치 가을처럼 선선한 기운은 흘러서 빈 주머니 손 찌르고 걷기에 적당한 날씨였다.
아침, 사동에서 조회를 마치고 본부 서류 처리 일 때문에 가고 있었다. 삼풍에서 사업하는 카페 김 사장이다. ‘아! 본부장님 기계 중간에 물 나오는 부위 있죠, 거기서 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와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듣고 보니까 상황은 급한 거였다. 본부 일도 급하기는 했지만, 우선은 이 집부터 들러 기계를 보아야 했다. 현장에 들러 보니까 정말 중간 밸브에서 물과 압은 계속 새어 나왔다. 우선 수돗물부터 잠그고 기계 위에 얹은 잔을 모두 들어내었다. 기계 덮개를 거둬내고 관련 밸브를 분해하여 뜯어냈다. 이 속에 이물질이 낀 것이 보였는데 수돗물에 잠시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깨끗이 다시 한 번 더 씻었다. 다시 조립하여 가동해 보았다. 그러니까 한 십분 정도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완벽한 수리였다. 물은 새지 않았다. 밸브 교체하면 비용은 최소 하루 매상과 어쩌면 그 이상 깨진다. 충분히 닦았으니 한동안 쓰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점심때였다. 압량에 성당공사를 주관했던 소장이 왔나 보다. 오수관을 확인했다. 압량에 일하는 오 씨 말로는 오수관 덮개를 열고 무엇을 찔렀는데 약 2미터 정도쯤에서 막혔다는 것이다. 문제는 경계석 놓은 팀과 전기 공사를 했던 팀, 어느 팀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이 오수관을 건드렸을 것 같다며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나는 세무 일로 현장에 가 볼 수 없었다. 내일 땅을 파보겠다며 전화는 왔으나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눈 것이 아니라 믿을 수는 없었다. 세무 일이 끝나고 현장에 들렀을 때는 오후 두 시쯤이었다. 오 씨는 다시 상황을 설명했다. 가게에 조금 더 애착을 뒀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냥 마음뿐이었다.
오후, 카페 단물고기에 다녀왔다. 커피 배송이었다. 사장은 어디 출타하셨는지 가게에 없었다. 바리스타께서 주스 한 잔 갈아 주시기에 쪽쪽 빨며 앉아 쉬기도 하고 어항을 보기도 하며 어항 속에 노니는 물고기도 감상했다. 여기는 우리나라 토종물고기는 거의 없다. 주스 한잔 마시며 어항을 보며 생각한다. 저 많은 어항을 관리하자면 참 부지런해야겠다. 물고기는 완전히 수인囚人과 다름없다. 주어진 환경에 살아야 하는 비운의 물고기다. 누가 관리하지 않으면 며칠이면 다 죽을 것이다.
본점 마감할 때였다. 동원 군 문자다. ‘본부장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커피 부탁합니다. 저는 화장실이 또 막혀서 싸움 중입니다. ㅎㅎ', 답장했다. ‘그렇지 대표는 어느 것이든 신경 안 쓰이는 게 없단다. 무엇 하나가 잘 못 되면 가끔 가슴부터 출렁거리지, 완벽한 나만의 자본으로 설 때는 더 그렇지, *석이 문제는 마음 꽤 썼을 것 같구나. 무엇보다 힘든 건 인간관계일 거라 생각 드는구먼. 힘내시게’
31. 종이(紙)
종이는 후한서 「채륜전」에 "··· 화제和帝 원년(A.D.105)에 채륜이 인피 섬유와 마 등의 식물섬유를 원료로 종이를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었으나 최근 전한시대 고분이 발굴되면서 이보다 150~200년 앞서 종이가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채륜은 종이의 보급 확대와 기술향상에 이바지 했을 거로 본다. 이때 사용했던 종이는 모두 마지였다.
우리나라는 언제 종이 만드는 기술을 받아 들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불교를 전수받은 약 4세기경으로 추정한다. 이후 610년 고구려 승려 담징은 일본에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수한 기록이 있다. 중국은 당대 이전까지만 해도 마지를 사용했다. 우리는 한지를 개발하여 사용했다. 이를 중국에 수출하기까지 했는데 시대에 따라 그 명칭은 각기 다르다. 말하자면, 계림지, 고려지, 조선지라 통했다. 이 종이는 중국의 역대 왕족이나 권위 있는 집안에 유명하여 매우 아꼈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해서 만드는데 사람의 손이 백 번을 거친다 하여 백지白紙라고도 했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4년 추정)과 755년(경덕왕 14)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모두 불교와 관련되어 나타난 한지 자료다. 특히, 대방광불화엄경 발문에 적혀 있는 종이 만드는 기술과 제작처의 지명 그리고 지작인(紙作人) 등은 우리나라 한지의 역사를 밝혀주는 귀중한 단서다.*
지금은 공업지를 많이 쓴다. 우리나라 제지(製紙) 생산량은 세계 5위 수준으로 확인됐다. 2014 년도 보고서다. 종이(Paper)의 어원은 파피루스(Papyrus)다. 파피루스는 나일강가에 자생하는 다년생 풀이다. 파피루스를 얇게 펴서 그 위에다가 글을 썼다. 이 파피루스의 최대 생산지가 이집트였다면 지금은 스웨덴이나 일부 선진국에 해당한다. 당시 이 파피루스의 최대 소비국은 로마였다. 우리의 제지 소비량 또한 만만치 않다. 세계 10위 안에 든다. 우리나라는 제지의 주원료인 펄프를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기술개발을 통하여 폐지 재활용률을 높였다. 이는 90% 이상까지 올렸으니 세계 최고 수준이라 말할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늘 쓰는 것도 좋아해서 귀한 종이를 보면 여사로 보지 않는다. 전사지나 습자지 같은 것도 인쇄하면 그런대로 멋이 나는 것 같아, 여기서 가까운 기획사에 들리곤 한다. 기획사는 대학가 앞에 자리하는데 내가 아는 선배라 커피 한 잔 뽑아 가져가면 작은 거 한 상자는 그냥 얻을 수 있다. 주로 A4 크기를 많이 쓴다.
하루는 인사 차 이 기획사에 들렸다. 새로 들어온 종이가 가게 안에 상자떼기로 쌓았는데 한 상자 뜯겨 있어 그중 한 장을 만졌다. 표면은 매끄럽고 부드러워 다른 종이와 많이 다르다며 얘기했더니 선배는 그냥 한 상자 가져가라며 선뜻 내미는 게 아닌가! 아! 얼마냐고 물어도 가져가란다.
우리는 역사 이래 물자만큼은 최대의 호황기를 맞은 셈이다. 글을 쓰지 못해서 문제지 종이가 없어 쓸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얀 백지를 보라! 마악 항칠이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 들지 않는가! 집을 짓는 것도 지붕부터 얹어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기초를 파고 기둥을 세운 다음 지붕을 얹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어떤 주제를 놓고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라! 다듬어라! 원석을 놓고 예리한 칼로 다져 나가듯 말이다.
종이,
우리나라는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종이는 최대 생산국이지만 최대 소비국이다. 이제는 무엇이든 쓸 것이 많은 시인은 호사한 세월을 맞은 셈이다.
각주]
*1,[네이버 지식백과] 전통 한지 (문화재를 위한 보존 방법론, 2008. 2. 20., 경인문화사)
*2,[네이버 지식백과] 한지 [韓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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