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2月 1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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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6年 02月 13日
흐리고 비가 내렸다.
커피 문화 강좌를 개최했다. 오늘도 새로 오신 분이 두 분 있었다. 기존에 등록하신 분을 합하면 오늘은 꽤 많은 분이 참석했다. 열댓 명 오신 것 같다. 카페리코 소개와 더불어 우리가 하는 일을 잠깐 소개했다. 오늘 오신 분은 눈매가 모두 예사롭지 않았다. 어떤 선생이다. 어떻게 해서 커피를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어릴 때 커피에 대한 꿈을 갖고 이에 매진하여 일한 경우는 아니기에 다소 부끄럽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했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이 어려워 들어갔던 자판기 A/S 회사에서 일한 내용을 설명했다. 그러다가 창업했으며 먹고 살기 위해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까 커피를 뭐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혹여나 커피 일에 궁금한 것이 있거나 시장을 더 알아보고자 하시는 분께 책을 소개했다. 내가 지은 책, ‘커피 향 노트’와 ‘카페 간 노자’를 소개했다. 어떤 선생이었다. 노자와 커피를 어떻게 매치시켰느냐며 물었다. 조금 난감했다. 노자는 춘추전국 시대에 초나라 사람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성은 이 씨며 이름은 이(耳)며, 자는 담(聃)이다. 주나라 도서관장직을 맡아 일했다. 어쩌다가 주나라를 떠나게 되었다. 국경지대인 함곡관에서 어느 문지기의 간곡한 부탁으로 도덕경 오천 여자를 남겼다. 노자가 살던 시대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대였다. 수많은 국가의 난립과 존폐의 시비가 엇갈리는 시대였다. 특별한 삶의 방법을 내놓아야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제자백가가 출현했으며 노자는 그 중 한 분이었다. 현 커피 시장도 마찬가지다. 춘추전국시대에 버금가는 수많은 카페가 난립하며 삶의 길을 모색한다. 그렇다고 노자와 같은 어떤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만, 다만 나의 현실점검을 통해 장래를 꾀해야겠다는 마음에 쓴 책이었다. 호! 자세한 것은 책을 통해 더 알아보셨으면 하고 이만 줄였다. 오늘은 에스프레소 교육했다. 교육을 맡은 오 선생을 소개했다. 한때는 바리스타 심사관으로 일했으며 경산 지역에 장애 학생의 커피 지도와 중학교 진로교육에도 힘썼으며 지금은 카페리코와 조감도에 메뉴개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오후에 한학촌에 커피 배송 다녀왔다. 오 선생과 둘째와 함께 소고깃국 밥집에 가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이모님과 외삼촌, 그리고 어머님께서 조감도에 오신 일 있었다. 그 전에 이모께서 전화다. 외삼촌과 어머님 모시고 조감도에 가볼까 싶어 길 나섰다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외삼촌은 못 뵌 지가 십여 년이 넘었다. 공군 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정년으로 퇴임하시어 연금에 의존하며 생활하신다. 외삼촌 말씀이었다. 84년도 미국에 있을 때였다. 그때 자가용을 처음 타셨는데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한 말씀 주셨다. 외삼촌의 말씀은 가슴이 뜨끔하게 닿았다. 그 어떤 일도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외삼촌에 비하면 참으로 나는 불효였다. 매사 먹고사는 일에 쪼들리며 사는 거저 능력 없는 자식일지도 모르겠다. 외삼촌은 문학에 대해서도 한 말씀 주셨다. 취미 중에 그래도 가장 돈 안 드는 종목이 문학이다. 이 문학도 가장 어려울 때 써야 진정한 글이지 나처럼 나이 들어 부족함이 없어 써는 글은 글도 아니라는 말씀이었다. 무려 책을 7권이나 내신 분이다. 이건 밥 먹듯이 쓰는 글에 나는 좀 부끄러웠다. 외삼촌은 올해 일흔이다.
==============가배도록 3권 원고
1. 아관파천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의 일이다. 국모인 명성황후가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시해되었다. 이때가 을미년이었다. 그다음 해(1896) 2월 11일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께서 궁녀로 변장하여 경복궁 북문으로 가마 타고 빠져나갔다. 가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약 380일 동안 고종은 머물게 되었다. 아관파천 1년간은 아무래도 러시아의 강한 영향력 밑에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고종은 많은 고심 끝에 다시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한다. 고종은 떳떳한 자주 독립국임을 세계에 선포하며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라 하였다.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오늘 2월 13일이다. 그러니까 아관파천이 있었던 해로 딱 120년이 흘렀고 이틀이 더 지났다. 고종께서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마셨던 커피를 나는 지금 한 잔 따라놓고 지금의 세계를 그린다. ‘카페 간 노자’를 출간한 지 1주일 지난 시점에서 나는 ‘가배도록 3’을 집필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런 집착을 하는가! 어쩌면 나만의 자주 독립적인 생활의 무대를 만들고자 하는 뜻은 아닐까! 돈도 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떤 큰 명예가 주어지지도 않는 이 일을 말이다. 재작년 100의 수치라면 작년 67% 정도의 수치에 머물렀다. 이는 매출신장세다. 그만큼 요식업계통에 일하는 사람은 힘들게 되었다. 폐점률이 그 어느 업종보다 높은 종목이 되었다. 나는 폐점이라는 왼쪽 자리가 아니라 희망의 열쇠를 찾기 위해 바늘 같은 세계에다가 한 발 내딛어본다.
커피 하는 많은 대표는 나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각자 떠안은 숙제에 각기 다른 해결방안을 내놓을 거시다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대표는 문 닫는 일로 간다. 커피 시장은 상당히 커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커피를 시작할 때 그러니까 고종께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보고 딱 100년이 지난 1996년은 약 1조 원 시장도 못 미쳤다. 그러고 20년이 흘렀다. 지금은 그 시장의 다섯 배에 육박한다. 그만큼 기회를 잡은 사람은 상당히 돈을 벌기도 했으며 또 어설프게 뛰어든 사람은 이 시장에 보탬이 되었다.
나는 이 바다 같은 커피 시장에 정말 돛단배 같은 열쇠는 있는 것인가? 그 열쇠가 있다면 노스탤지어와 같은 나만의 목표는 어떤 것인가? 그 향수를 찾았다면 오늘도 쉬지 말고 저어가야겠다. 나는 목탄 같은 내 자본의 노가 파도에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어가야겠다. 하얀 바다에 녹초가 되더라도 말이다. 마음껏 휘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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