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미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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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일이 없다는 핑계로 설악산 여행을 계획해 두고 있는데, 토, 일, 일이 들어 왔다. 주말 이틀이면 십오만원을 벌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설악산을 포기하지 못했다. 지금은 한반도의 어떤 절경보다 식당안의 에어콘 바람이 나은데도 나는 기꺼히 더위를 찾아 설악산으로 갈 생각에 부풀어 있다. 아웃도어 이월 상품점에 가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이월 상품들을 잔뜩 샀다. 사람들이 산을 찾으며 교복을 입듯 아웃도어를 갖춰 입고 폼을 내는 것을 누구보다 경멸해오던 내가 그 옷들의 가슴이나 옆구리에 붙은 상표가 블랙 야크인지 밀레인지 코오롱인지를 살펴서 상의와 칠부바지를 사고, 한눈에 보기에도 유행이 한참 지난 것 같은 등산화도 사고, 수영씨는 싸구려 썬그라스와 두건까지 장만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빔을 받은 아이들처럼 신어보고 입어보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 합쳐봐야 17만원, 백화점에서 사는 정품 아웃도어 바지 하나 값도 않되는 쇼핑물로 인해 못해도 1700만원치는 법석을 떨며 유쾌해진 것 같다.
내가 처음보는 사람들의 괜한 인사치례를 순진하게 믿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려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가사원을 다니다보니 사흘들이 초면인 사람들과 대면을 하며 나이를 말하고 이름을 말해야 할 일들이 생기는데 때론 어려보인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 겸연쩍어서 대답하기 싫어질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비결을 묻기도하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철이 들면 나이도 드는 것이고 철이 없으면 어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릴수 밖에 없다는 대답을 한다. 사람들은 고생을 많이 하면 일찍 늙는다고 믿고 있는데 육체 노동의 양과 노화에 어떤 생리의학적인 함수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육체 노동이든 어떤 형태로든 내게 짊어지어진 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가 노화를 촉진 시키거나 노화를 더디게 하는 것 같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나름의 통계를 내보면 대체로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 것 같다. 집을 사고 좋은 차를 몰고, 좋은 옷을 입고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기준 삼아 놓은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행복에 이르는 사람들은 일찍 철이 들고 일찍 노인이 되는 것 같다. 더 세속적인 사람이 더 세속의 시간의 흐름을 피부 위에 더 충실히 받아 적는 것은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많이 슬프고 많이 즐겁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아파해서 감정의 탄력이 좀 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나는 그래서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숱한 감정을 아우러며 마음껏 살아 있었던 것 같다. 바닷물 속에서 해류에 휩쓸리며 종일 움직이는 미역은 팽팽하고, 바닷물에서 건져진 미역은 뻣뻣하고 메마르다. 아직 물이 말라버린 골짜기처럼 많은 주름들로 뒤덮이지 않은 것은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흐름과 출렁임들이 아직 나를 빠져 나가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나는 이십오만원짜리 아웃도어 바지가 아니라 이만삼천원짜리 아웃도어를 입고도 감쪽같이 속아서 온 몸이 엔돌핀에 젖어 들 수 있는 체질을 타고 난 것 같기도 하다. 통장에 돈을 쌓아둔 것도 아니지만 어느날에라도 문득 산의 부름을 받을 수 있고, 아웃 도어가 없어도 반바지를 입고, 면티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도 아무꺼리낌 없이 산에게 나를 맡길 수 있고, 동호회 따위를 만들어 산을 괴롭히지 않고 혼자서도 아무런 마음의 불편 없이 산과 연애라도 하듯 산에 몰두 할 수 있다. 철이 있다면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젊어 보이고 싶어서 일주일에 두세번 가는데도 몇 만원이 드는 마사지를 받는 여성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피부에 양보하세요가 아니라 마음에 양보하세요라고. 외모가 젊어졌기 때문에 마음이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젊기 때문에 외모도 젊어 보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젊어 보일거라고 먹고 소화 시키는 기능을 가지지 않은 장기인 피부에다 먹을 것을 잔뜩 바르고 문지르고 누워 있는 자체가 이미 거의 치매에 가까운 노화 현상인 것 같다. 어디가 아픈가 싶어 마사지 침대가 아닌 내시경 침대에 누워 보면 알겠지만 결국 피부의 광택과 색조의 톤을 조절하는 것은 피부 자신이 아니라 피부가 감싸고 있는 장기들이다. 잘 먹어야한다. 잘 싸고 잘 자야 한다. 다이어트 한다고 먹지 않고 삐쩍 골아서 피부에서 광택이 나기를 바란다는 것은 거의 치매 증상이다. 꼭 기쁠것도 즐거울것도 없지만 삶의 기류에 따라 생생하게 반응하고 치열하게 부딪히고 싸우고 생과 밀당을 해야한다. 출근 시간이다. 퇴근후 마저 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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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무님의 댓글

참 대단하십니다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