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945까지 일본이 끼친 교육열과 우리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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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중량전의 국권포기는 고종의 무식도 한축이라 할수있다
흉년들어 궁중에 먹을 쌀이 없고 내탕금이 없을때
일본에 이등박문이 왕실에 권한을 보장해주고 내탕금을 충분히 주겠다는 꾀임에 빠저
忠자만 외치든 정신 나간대신들을 불러 토론해 봐라
이것이 국권을 내여주게된 벌미로 꾸물대는 그림자가 보인다
그렇치 않타해도 가쓰라 데프트 조약에 의해 병탐 되였겠지만
왕과 소위 중신에 무리가 너무 무식하고 자신들의 후손만 생각한 정치때문에 야기 된듯 하다
못난 왕과 양반족
저희 자식들만 서당에 가고 과거를 칠수있는 반상제도
이것은 스스로 국가를 경영할 능력이 없는 졸장부행태이고 중량전의 국권 포기를 가저 왔다 할것이다
1920년생~1937년생 까지
촌락에서는 일제의 공립 국민하교를 먼저다닌 학생들이 야학당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첬고
1935년생 부터는 정규입학에 떨어진 아희들도 고부생이라는 명칭으로
빠짐없이 교육을 시켰으니
지금 생각 하면 內鮮一體라는 그들의 정책의 일환 이였지만
이것이 지금의 자녀교육열을 부추긴 효과가 아니였을가?
구 서대문 형무소 뒷산 안산 마르쟁을 올라가다보면 구한말 풍운기에 열사라는 분들의
공적비가 줄지여 서 있다
망해가는 나라에 풍운아 국권을 잃어 비분강개하여
활복 자살한 민충정공 외에 별로 내세울 인물은 없었다
지난대선에서 윤석열의 선제 타격론을 향해 이재명이 "화약고 앞에서 불장난을 한다"고 힐난했다
핵탄을 발사할 기미가 보이면 선제타격
이것은 작계에 포함된 전술이다
언젠가 연평도에 포탄을 쏟아 부은 그들 핵탄이라고 못 쏠리 없지 않은가?
미군이 있기에 쏘지 못할뿐이다
한방이 떨어지면 오끼나와와 쾀도에 있는 무지무지 하게 많은 핵탄이 북을 페허화 시키기 때문이다
방어란 억제력의 힘이다
우리도 핵을 보유하고 미사일도 보유해야 그것이 진정한 방

어력임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 통일이 되겠지만 이북 식은 않된다
한사람을 위해 강냉이죽을 먹을수는 없지 않은가?
잘살기를 염원 하는이때 "겁개"의 탈을 쓴 주체 사랑론자는 경계할 대상이기때문이다
힘이다 강력한 힘을 배양하여 영원한 무궁화국가를 세워야 한다.
*경산에 편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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