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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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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진흙피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4회 작성일 23-09-2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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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바꾸었다. 내가 색칠한 아일랜드 나무 의자에 앉으니 바깥의 풍경이 잘 보인다. 드라큐라라도 쫓는 것인지 밤에 켜져 있던 교회와 기도원의 십자가 두 개는 불이 꺼져 있다. 물풀이 많이 자라서 잔디구장처럼 변한 저수지와 저수지를 에워싼 작은 산과 가끔 고라니도 내려오는 습지와 감나무와 산딸기 나무들이 많이 심겨진 주인집의 밭과 돌공장을 하다 망한 주인집의 대리석 더미들, 바이올린 활을 비비면 위모레스크라도 흘러 나올 것 같은 송전탑 사이의 전깃줄들, 이렇게 항상 높은 의자에 앉아서 죽을 때까지 살자. 창밖이 보이지 않는 낮은 의자를 밀치고, 나를 에워싼 벽들을 넘어서면 사계절 바람을 타고 살아서 성장하고 쇠락하고, 다시 태어나는 이 세계의 실체를 바라보며 즐기고 살자. 나라는 망상, 자아라는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원래 있지 않은 자를 있게 하려고 바둥거리지 말자. 내 안에 있으면 나는 괴롭고 허무할 뿐이다. 나라는 벽을 더듬어 문을 찾고 문고리를 돌려서 문을 열고 내가 작은 점도 되지 못하는 광대한 나를 향해 뛰쳐 나가자. 개미는 이 우주보다 커다란 자신에게 이끌려서 부지런히 썩어가는 사체들 주변을 기어다닐 것이다. 육체는 그 안에 깃든 것을 우주보다 커다랗게 만드는 현미경이다. 괴로움은 아무것도 아니고 사는 기쁨은 어둠을 건너오는 별빛 같은 것이다. 내가 눈을 깜빡이면 같이 깜빡이는 태초부터 한번도 끊겨 본 적 없는 별빛

같은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나 고양이, 지렁이, 지네, 벌레로 태어난 것이나 복불복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무엇으로, 누구로 태어났건 감사할 일이다. 고양이로 태어났으면 날카로운 발톱과 유연함에 감사하고 지네로 태어났으면 양쪽 합하면 오십개는 될 것 같은 많은 발에 감사하고, 지렁이로 태어났으면 땅속으로 파고 들 수 있는 매끄러운 몸과 환대에 감사하고, 무엇으로 살아가건 잠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다가면 그만이다. 어떻게든 오래 머물려고 바둥거리면 추해진다. 빗방울이 토란잎을 치고 지나가는

찰나라도 살아 있었음이 살아 본 적 없음보다는 빛나는 일이라고 믿자. 저 많은 대리석은 어떤 감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을까? 빗방울이 천년을 떨어져서 구멍을 뚫어도 감감할 감각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우리의 한쪽 눈을 시큰한듯 감게 만들고, 떨어지는 그 순간 뺨의 근육이 실룩이고, 차가움과 촉촉함과 미끄러지는 감촉, 우리는 이 세계가 빗방울 속에 담은 메세지를 즉각적으로 열어보게 된다. 빗방울 또한 머리카락 더미에 떨어지면 내 두피 냄새에 있는 기름을 품게 될 것이고,나를 감각하고 접수하며 나와 섞이고 나를 흘러갈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이 세계와 내가 사귈수 있다는 뜻이다. 더우기 인간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귈수 있다는 현실이다. 아무래도 그럴려고 사람은 만들어진 것 같다. 사소하고 치사한 감각들은 닫아버리자. 그런것을 따지고 묻기에 이 세계는 너무나 무한한 빛을 발하는 거대한 보석이다.  금반지에도 구석구석 티끌같은 어둠들이 세공되어 있다. 그 그늘과 어둠을 품고서야 1차원은 삼차원이 되고 사차원이 되는 것이다. 내 귀는 아침과 저녁 새들의 우편함이다. 너무나 많은 편지가 와도 어떤 아침은 열어보고 어떤 아침은 그냥 지나간다. 그러나 다음에 읽으려고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기다린다. 이것을 느낄줄 아는 자에게 이 세계는

선물이다. 그러나 이것을 느낄 줄 모르는 자에게 이 세계는 이 세계만한 짐덩어리다. 그는 그기에 깔려서 서서히 죽어갈 뿐이다. 가슴을 설레이며 두근대며 이 세계랑 사귀다, 데이트를 하다 살을 비비고 키스를 하다

부부가 되어 더 이상 너를 느낄수 없게 되듯이 이 세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 세계와 내가 서로 매력을 잃어가는 일이 늙어가는 일이다. 서로 시큰둥하고 아야, 자야, 내 걱정만 늘어가는 시간이다. 늙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익숙한 것에서 낯설고 생소한 매력들을 발견해내어야 한다. 매력적으로 보는 눈과 귀와 콧구멍을 열어놓고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훈련을 시라고 부른다. 시는 이 세계랑 죽을 때까지

사귀는 기술이다. 이 세계와의 연애 기술이다. 그것을 종이에 옮기고 책을 출판하든지, 그저 내 마음이 연애할 때의 기분이든지는 상관 없다. 그 심장을 그대로 간직하고 산다면 그 삶은 시고, 그는 시인일 뿐이다. 시인이라고 등판을 하고 살아도 이 세계와 사귈 줄 모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그늘을 보아도 마음속의 나뭇잎이 한 장도 흔들리지 않는 불행한 이들이 시인의 배역을 맡고 있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는 돈벌이가 된다고 요량을 흔들며 앉은 가짜 무당과 같다. 그에겐 절대로 신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운동을 하러 가야겠다. 두 발로 이 세계를 두드리면 이 세계의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그것은 이내 나의 심장으로 옮아 올 것이다. 뛰어야 겠다. 그래서 내가 뛰면 심장도 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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