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 > 편지·일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편지·일기

  • HOME
  • 창작의 향기
  • 편지·일기

☞ 舊. 편지/일기    ♨ 맞춤법검사기

  

▷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증발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50회 작성일 16-06-17 05:36

본문

점점 내 몸속에서 잠이 말라간다는 것을 느낀다. 점점 내 몸속에서 눈물이 말라가고, 마음이 말라간다는 것을 느낀지도 제법 오래다. 노화란 일종의 증발 같은 것일까? 죽으면 하늘 나라로 간다더니, 점점 나를 이루던 것들이 조금씩 하늘로 보이지 않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버리는 것일까? 내가 중학생이였을 때 나는 밤이 오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했다. 보증빚에 까마귀가 우글거리는 들판에 나 앉았던 엄마와 아버지는 조금 상황이 수습 되는 기미가 보이자 오빠와 동생, 나 우리 삼남매만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잠을 해결 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그 집 천정 벽지가 누가 칼로 주술을 부려 놓은듯 엑스자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어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게다가 학교 앞에서 잡상인에게 샀던 주먹만한 성모 마리아 석고상이 어쩌다 깨져서 그것을 그집의 화단에다 묻었는데 무슨 까닭인지 내가 누군가를 살인하고 암매장해서 냄새를 맡은 경찰들에게 쫓기는 꿈을 계속 꾸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시집을 오고 한참을 지나서도 밤에 불을 꺼고 자지를 못했다. 시집을 오기 전까지도 늘 악몸에 가윗눌려서 잠결에 아직 젊었던 엄마와 아빠의 방으로 달려와 그 사이에 파고 들어서 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어떤 날은 불을 환하게 켜고, 일부러 지루하고 어려운 책을 읽어야 겨우 잠이 드는 날이 많다.

 

두세번 넘게 잠이 깬 것 같다. 부지런한 할머니의 요강 단지처럼 누가 이 거대한 반구의 어둠을 비워 놓은 것인지, 새벽 네시 사십칠분, 우리집 창밖의 논물은 말갛게 개어 이모집 매화밭이 있는 맞은편 산을 선연하게 그려놓고 있다. 나처럼 입이 험한 새 한마리가 탁하고 길게 몇 번 울고, 조롱조롱 목소리 맑은 새들도 서로 서로 아침 인사들을 건내고 있다. 그럼에도 내 눈앞에 묵직하게 서 있는 현실감은 어디 더 딪을 곳 없는 절벽이다.  아침에 식당 앞까지 갔다 아직 죽을 때를 맞지 못한 소처럼 발굽을 돌려 와버렸기 때문에 가사원에서 잘렸다. 마늘밭, 양파밭은 도무지 갈 엄두가 생기지를 않고, 정수기 부품 만드는 공장 또한 약자 위에 군림하려는 약자들의 역겨운 갑질 때문에 돌아봐지지 않는다. 요즘 경기가 나빠 우리일당의 일부를 떼지 않는 요식 협회 가사원은 일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탬버린을 흔들러 가겠는가? 그래서 겨우 일 하나 받아 놓은 것이 죽어라고 가기 싫던 홀 서빙 오전 반이다. 열시부터 세시까지 하면 삼만팔천원을 받을 것이다. 작은 오가리 속에서 부글부글 기포와 김을 토하는 어린 닭들의 시체냄새가 벌써 풍겨 온다.

 

어제 늦은 밤에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나 없어도 잘 살 수 있지?"

"응"

"나 그냥 떠날까? 나 돈 벌고 살기 싫어. 힘들어"

"그래, 편할데로 해"

"우리 적금 다 들고 가도되?"

"응"

"너는 나 없으면 못 살잖아"

"아니, 잘 살아. 걱정 마"

 

인근의 사찰에 공양주 모집하는 곳이 많다.

숙식을 제공하고, 한 달에 백오륙십을 줄 것이다.

 

그도 나도 안다. 내가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 없이 못사는 건 그가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그가 없으면 종일 라면 한 개도 끓여먹지 않고

술을 퍼마시고 아무데나 굴러서 길바닥이고 어디고 잠들 것이다.

몇일이고 씻지도 않고 몸에서 쉰내가 펄펄 할 것이다.

 

내 일이 글 쓰는 일이였음 좋겠다.

허구헌날 거미줄에 묶인 도롱이처럼 시에 묶여

바람 부는대로 뱅글뱅글 돌며 시 한 편

봄날처럼 내게로 올때까지 먹고 자고

흙바닥에 몸 닿지 않고 살고 싶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6건 1 페이지
편지·일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36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97 0 06-28
35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2 0 06-26
34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7 0 06-24
33
훈육 댓글+ 2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5 0 06-22
32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75 0 06-18
열람중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1 0 06-17
30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4 0 06-08
29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7 0 06-03
28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3 0 06-03
27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2 0 05-31
26
출세하다. 댓글+ 3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2 0 05-28
25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1 0 05-26
24
그를 보면 댓글+ 2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9 0 05-10
23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5 0 05-06
22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68 0 05-03
21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 0 05-02
20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44 0 04-29
19
내 꿈은 댓글+ 1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5 0 04-27
18
아침 일기 댓글+ 2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54 0 04-21
17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 0 04-19
16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57 0 04-18
15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31 0 04-16
14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9 0 04-14
13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7 0 03-14
12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1 0 02-13
11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9 0 02-12
10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94 0 01-21
9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14 1 09-18
8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2 1 09-08
7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5 0 08-13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