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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넘는 박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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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97회 작성일 16-06-2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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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당하던 수치는 다 어디로 갔는지,

거웃만 풀덤풀처럼 풀풀 살아 있는 아랫도리에 무너진 탑은

그 위풍당당하던 소원을 잃었다.

종이 기저귀를 아기에게 채우듯 그냥 채우면

자주 들여다보지 못하면 오줌이 샌다고 한다.

그래서 손수건으로 장미꽃을 만들듯

여러장의 귀저귀로 그곳을 칭칭 싸맨 후 기저귀를 다시 채운다.

 

"야가 누요?"

"누긴 누라 송숙이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외동딸의 이름이 아니라 조카딸의 이름이였다.

마음은 딸이름을 불렀는데 혀가 저린 손으로 쓴 글씨처럼

마음대로 움직여 버린 모양이다.

사실 요양원을 찾아와도

마트에서 사온 요구르트나 바나나 우유, 요플레 같은 것을

하나 따먹이고,  찾아 온 이가 누구냐고 묻고,

팔이나 어깨 한번 주무르고,

밥 때라 밥이라도 먹일 수 있으면 운이 좋은 것이다.

다른 병명의 환자를 찾아가도 조심스럽고 따분하지만

치매 환자를 병문안하는 일은 이십분만 있음

곧 말문이 막히고 무엇을 해드려야할지

시간의 실마리를 풀어가기 힘들다.

"아부지!  노래 한 번 불러 보이소"

젊어서 아버지의 꿈은 가수였다.

옛날 온식구가 한 마을에 모여 살던 시절

추수가 끝나면 큰 아들네, 작은 아들네 막내 아들네

각각 몇 가마니씩 양식을 나누어 주었다는데

겨우내 먹을 쌀을 다 팔아서 그 시절

3d프린터기 신형처럼 비쌌다던 축음기를 사실 정도였다

그런 까닭인지 사설 유치원처럼 좀 더 비싼 돈을 주고 있던

요양소에서는 곧잘 노래를 불러서 요양사들과

주변 할머니들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양소가 두번 바뀌고,

내가 요양소를 찾아가는 횟수가 늘수록

아버지의 노랫소리는 볼륨이 낮아졌다.

 

"천동사안..박악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무울 항나 저으고리가 궂은 비에 저으은는구나!

왕거미 집을 짓던"

"아부지 은자 노래 다 잊아삣제"

내가 아버지의 염장을 다 지르기도 전에

아버지의 노랫소리는 고기 핏물을 빼려고 종일 틀어놓은

수돗물 소리처럼 쫄쫄쫄 흘러 나왔다.

 

몇 해 전인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내가 시의 초성도 알지 못하던 시절

어디 아무 생각도 없이 던진 글이 당선이 될 무렵

아버지로 부터 전화가 왔다.

"남아...우째서 고피를 넘기도 넘기도 또 고피고?

산을 넘어도 넘어도 우째서 나는 그렇노?"

서른이 훌쩍 넘어, 한 번 실패를 했다는 이혼녀에게

어렵게 장가를 든 오빠,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올케 언니를 신주 단지 받들듯이 받들었다.

그런데 어느날 별다른 사유도 없는데 오빠랑 이혼을 하겠다고

온 식구들을 부른 것이였다.

그때는 백일도 되지 않아 엄마에게 맡겨졌던 쌍둥이 큰 애랑,

심장판막증 수술을 해서 쌍둥이 언니보다 훨씬 발육이 더뎠던

쌍둥이 동생이 막 돌을 앞두고 있을 무렵이였다

아버지가 우셨다.

태어나서 아버지가 우는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동생이 밤 깍는 칼로 팔목을 긋고 이름 모를 저수지에서 발견 되었을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을 쓰던 아버지는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런 아버지가 딸의 이혼에 이은 아들의 이혼에

케이오 패를 당한 권투 선수처럼 피눈물을 들키셨다.

 

당선 소감에 썼다.

넘어도 넘어도 산 뿐이고,

넘겨도 넘겨도 고비뿐이라는 아버지께 딸이 시인이라는 자랑꺼리 하나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그리고 십육칠년이 지났다.

큰 소리 쳤던 딸도 인터넷 문예 창작란에 댓글도 몇 개 달리지 않는 시를 올리는

자기 마음만 시인인, 이무기가 되었고,

아버지 역시 내가 시인이 되었다해도 자랑스러워할 정신이 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울고 넘는 박달재가 아버지에겐 너무 많았다.

왕거미 집을 짓던 고개마다 구비 마다 울었소, 소리 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아버지는 그렇게 박달재를 넘으셨다.

시를 쓰고 싶었다고,

슬그머니 내 죄를 시에게 떠넘긴다.

쌍둥이 조카까지 돌보고 있는 부모님께

내 두 아이까지 맡기고 멀리 돈을 벌러 시를 쓰러 떠났다.

미친년이였다.

시인이 될거라고 결심 한 날,

아버지로 부터 넘어도 넘어도 산이고, 한 고피, 넘기면

또 한 고비고.. 아버지의 울음 소리를 들었던 년이

시를 쓸거라고 아버지에게 천고비 만고비를 떠넘기고 말았으니,

 

언젠가, 회가 너무 먹고 싶었다.

생선을 너무 좋아해서 별명이 고양이였던 나는

그 무렵 젊고, 혼자였던 나는

오빠야, 자기야  맛 나는 거 사줘,

코맹맹이 소리로 전화 한 통 할 사람도 없었다.

술이나 지정신 없는 년처럼 퍼 마실까

그런 주변도, 요령도 없었다.

그런데 진주에서 유명한 횟집 골목에 살던 나는

출근하고 퇴근하는 길에

그 비싼 회들이 수족관에서 꼬리치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먹고 싶었다.

안주 부실한 술을 밤마다 퍼 마셔 속에 근기가 떨어진 것인지

마친 횟집의 수족관을 열어서 한마리 건져 먹고 싶은 심정이였다.

 

"아부지! ㅎㅎ"

"와? 무신일고?"

"아부지! 내 회 사죠!"

 

생뚱맞은 나의 전화에 이유도 묻지 않고

그 동네 골목에 있던 창선 횟집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뇌경색에 걸렸다 회복 되신지 얼마 뒤라 아버지는 수입도 없으셨다

그런데다 아버지는 회 한 점 드시지 못하는 식성이였다.

회가 나왔다.

정말 한달 굶은 고양이처럼 두툼하게 썰어나온

오만원짜리 회를 개눈 감추듯 싹쓸이 했다.

아버지가 웃으셨다.

그런데 회를 다먹고 나는 목이 꺽꺽 매였다.

이젠 회가 먹고 싶어도 아버지에게 전화 할 수 없다.

 

아버지! 천둥산 박달재 다 넘고 살아 있어 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진짜 시인 될 때까지만 살아 있어 주세요.

시 쓰면 다 시인 되는 줄 알았어요.

시 쓰면 그냥 다 시인인줄 알았어요.

등에 욕창이 나고

아버지 자신도 모르게 이가 덜거덕덜거덕 갈리고

떠 먹여 주지 않으면 죽을 드시지 못해도

저 시인 되는거 기다리느라 돌아가시지 못하죠?

될께요

정말 될께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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