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 일기 13 > 편지·일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편지·일기

  • HOME
  • 창작의 향기
  • 편지·일기

☞ 舊. 편지/일기    ♨ 맞춤법검사기

  

▷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유산균 일기 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849회 작성일 16-11-29 09:15

본문

밤 하늘의 별들이 나만 주목하는 새벽 가로등 밑에 나를 내려 놓고, 내가 화단 곁에서 끌고 온 전동차에서 무거운 보관통들을 내려 놓고, 빨리 집에 들어가서 쉬라며 발효유 한 병을 건내고, 이 동, 저 동 배달 갈 제품들을 손수레에 싣고 있는데, 그가 계속 가지 않고 서 있는 것이였다. 빨리 가서 한 숨 자라고 채근을 해도 계속 그가 가지 않고, 내가 제품을 가득 실은 손수레를 자신이 끌고 가는 것이였다. 그것만 끌어 주고 가려나 했는데 나를 따라 에레베이트까지 오더니 배달이 끝날 때까지 나를 따라 다니는 것이였다. 사실 야쿠르트 수금 용지를 보내기 위해 제품을 비닐 봉지에 넣어서 같은 제품인 경우에는 수금 영수증의 동호수가 바뀔까봐 다른 날보다 시간이 걸릴 뻔 했는데 그가 배달 장부와 에레베이트를 잡아 주어 빨리 배달을 끝낼 수 있었다. 사람의 훈기라는 것이 그렇게 든든한 줄 몰랐다.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아파트에서 마지막으로 귀가한 사람이 공중에 세워놓은 에레베이트를 일층으로 내리면, 에레베이트의 금속 도르레와 공기가 마찰해서 내는 음산한 신음 소리에 소름이 쫙 끼치곤 했었다. 아직 귀가 하지 않은 중고등 학생들이 담배를 피워물고 전동차 옆에 서 있으면 지은 죄도 없이 간이 철렁 내려 앉기도 했었다. 특히 비라도 내리면 비를 맞으며 축 쳐져 내린듯한 가로등 불빛이 문득 문득 고개 들어 보게 만드는 귀신 같았다. 그 거대한 아파트에 탱크의 물처럼 고인 어둠속으로 내가 빨려들어가는 뒷모습이 늘 안되었을까? 내가 배달할 곳도 없는 라인의 꼭대기 층까지 갔다가 헛걸음하고 일층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며 "한 달이 다 되었는데 아직도 그모양이냐"며 깐죽깐죽 지적질을 하기도 했지만 내 배달 꾸러미를 들어주고 끌어주는 그가 이 지상의 모래알처럼 많은 인간들 중 유일한 나의 친구로 느껴졌다. 나를 사랑하여, 그 시간 내 곁에 있어주는 그로 인해, 그렇게 새벽 어둠속을 헤매다 까무라쳐도 모를 내가 꼭 세상에 살아 있어야할 소중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지금 나이에 새벽일 하지 않고, 늦잠을 펑펑 자며 달 목욕을 다니고, 돈이 많은 남편을 둔 사람은 많겠지만  이렇게 애틋하게 애지중지 사랑 받는 아내는 얼마나 될까? 이 나이 먹도록 벌은 것도 물려 받은 것도 없어 새벽일을 나오지만 못내 안스러워 출근과 퇴근을 함께 하는 그가 있어

가난도 불행 중 다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아내와 남편을 한 에레베이트 거울에서 그 안스러운 눈빛과 측은과 고마움을 서로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이 가난은 돈을 주고 사려면 얼마일까? "에이구,  한달 했응께 때리 치아라, 니는 기억력이 나빠서 되도 않하것다." 라며 혀를 끌끌 차는 그의 말이 " 미안하다, 못난 나를 만나서 이제 좀 편안해도 될

나이에 이 고생 시켜서"로 직역 된다.


술 때문에 지옥 밑바닥까지 오래 씹다 뱉은 껌처럼 착 달라 붙었던 마음이 다시  부풀어 올라 하늘에 구름이 되어 떠오른다. 살아야겠다. 밥을 먹어야겠다.

추천0

댓글목록

Total 4,270건 115 페이지
편지·일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85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7 0 12-10
84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9 0 12-09
84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6 0 12-07
84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1 0 12-06
846 베르사유의장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0 0 12-06
84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8 0 12-06
84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3 0 12-05
843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8 0 12-04
84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74 0 12-04
841 베르사유의장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2 0 12-03
84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7 0 12-03
83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6 0 12-02
838 이혜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1 0 12-01
837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76 0 12-01
83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26 0 12-01
83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6 0 11-30
열람중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0 0 11-29
83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75 0 11-29
83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24 0 11-28
831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2 0 11-27
830 베르사유의장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6 0 11-27
82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9 0 11-27
828 마음이쉬는곳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8 0 11-27
82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70 0 11-26
82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9 0 11-25
825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8 0 11-24
824 이혜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92 0 11-24
82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2 0 11-24
822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3 0 11-23
82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0 0 11-23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