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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주 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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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보리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25회 작성일 17-01-21 08:17

본문

내가 소개 시켜 준 친구들이 현주 형님의 가발을 알아보는데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내가 현주 형님의 대머리를 알게 되는데는 무려 이년이나 걸렸다. 어느 날은 나이 사십이

훨씬 넘어서도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아, 혼자사는 미용실하는 친구를 서로 말벗이나 하라고

소개 시켜 주었는데, 잠깐 화장실에 가는 사이에 친구가 내게 묻는 것이였다.

"남아! 저 사람 머리 가발이제?"

"아니다. 가발을 왜 쓰니?"

어쩐 일이지 그 만남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다른 친구를 소개 시켜 주었는데, 나는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다른 친구가 또 하는 것이였다.

그래서 그 무렵에는 그냥 아는 동생이였던 남편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몇번을 아니라고 잡아떼다

어느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였다.

" 핸주 행님 집에 놀러를 갔는데 현관벽에 가족 사진이 걸려 있는기라.

그런데 행님집에 딸 둘이고 아들 하나 밖에 없다고 했는데, 어머니와 딸 둘, 그리고 아버지

사이에 웬 대머리 아저씨가 한 명 서있고 행님은 없는기라, 그래서 내가 행님한테 물어봤다 아이가,

"행님, 저 사람 누요?" 그랬더마 행님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내다" 그라는기라,"

 

핸주 행님은 돈을 잘 벌었다.

몇 년 전 고철 시세가 좋을 때는 하루에 백만원도 벌고, 평균 하루 수입이 오륙십은 훌쩍 넘었고,

큰 거래를 한번 트면 몇 백도 벌었다. 그는 성실하고 수완이 좋았다.

그러나 핸주 행님은 돈을 잘 썼다.

그의 외로움은 그가 번 돈을 먹는 하마였다.

내가 소개를 시켜 준 친구들은 먹고 사느라 소주방도 차리고 피자집,

호프집, 노래방도 차렸는데, 무엇을 차릴 때마다 호구처럼 그를 불러

돈을 쓰게 만들며 그와 친구가 되어 갔지만, 그의 외로움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지,  술에 취한 그는 주린 늑대처럼 거리를

배회하며 나이가 오십이 넘은 술집 아주머니들의 호구가 되었다.

그는 사람이 너무 좋아 그녀들이 늘어놓는 신세타령에 절대공감해서

한동안 단골이 되어 주었다.

어느날, 나는 친구로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핸주야! 그냥, 베트남 여자는 어떻겠노?

발랑까진, 머리에 똥만 가득찬 한국년보다 못하것나?"

"됐다.  베트남 여자들 애 낳고 도망 가버리면 우짜끼라,

말도 안통하고, 먼나라 여자 데비다가 씨받이나 시키서

되것나? "

 

벌교에 땅이 만평 있다는 그는 벌교 사람이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누이들이 시집을 가서

혼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여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남자, 그러니까 남편을 선택하는지

모르지만, 남편으로서 그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행님(남편이 그를 행님이라 불러 나도 그렇게 부른다) 보다

조건이 나을 것도 없는 여자들도 그를 마다하다,

무슨 장사를 한다, 보험을 한다 하기만 하면 연락을 해서

장어 껍데기 벗기듯 그의 돈을 벗겨 먹는 것이였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를 소개 시켜 주지도 못한다. 너무 미안해서

그는 키도 체격도 좋고 얼굴도 이전에 장모들이 보면 정말

덤직한 둥글 넙적한 얼굴이고, 성격도 호탕하고 품도 널널하다.

물론 반바지를 입고 종아리까지 오는 양말을 신기도 하는

치명적인 패션 오류를 가끔씩 범하기도 하지만, 우리 나이 그러니까

지천명에 접어들면 하늘의 뜻을 읽듯, 웬만한 사람도 읽게 되지

않는가?

한마디로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순박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의 장점을 두루 실천하는 사람,

따뜻하고 인정스럽다.

대머리가 그리 중요한가?

아이를 낳을 때 남편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낳는다더니

쥐어 뜯을 머리가 없어서 그가 좋은 남편감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그는 경기가 좋지 못한 지금도 돈을 잘 번다.

철거를 하고, 노가다를 가고, 무엇이라도 해서 하루 하루

전대를 채운다. 그리고 내가 소개 시켜준 친구들이 무엇을 개업하건

그는 찾아가서 개업발을 세워 줄 만큼 두루두루 베풀 줄 안다.

이제 올해 그의 나이 마흔 아홉이다.

한번씩 봄이 와서 그가 사는 시골 마을에 쑥을 캐러 가면

갓 자라난 머위와 봄밭의 시금치를 한 봉지 캐 주시며

"오데,, 여자 하나 있으면 소개 시켜 주시요,

새대기거치로 순하고 , 고마 딱 새대기 거튼 사람이면 조컷소"

(새대기가 술 한 잔 된 모습을 보지 않으신 까닭에)

"어머니, 그렇치예, 새사 사람 좋고, 성실하고 이렇게

어무이도 좋은데, 참말로 저리 좋은 신랑감을 우째

못알아보꼬예?"

 

어제 어떤 친구랑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참하고 말수 적고 속으로 품는 성격인 그녀와 현주씨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내가 넌즈시

"니 남자 한번 만나 볼래?"

"아직은..애들이 학생들이라.."

"가시나, 누가 데꼬 살아라카나?

그냥...가끔 술도 한 잔 같이 마시고,

기분 꿀꿀할 때 말벗도 하고 그라는그제"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는 대학을 나왔고

행님은 직업이 그리 번듯하지는 못하다.

그런데 직업이 뭔 소용인가?

제 밥벌이 하고, 뭔 짓을 해서라도 마누라

자식새끼 굶길 사람은 아닌데..허긴,

결혼이 무슨 대수인가? 적어도 착한 행님에게

순수하고 진지한, 착하고 따뜻한 여자 친구가

한 명 생겼으면 하는 것이다. 그를 호구로 생각하지

않는, 그래서 그가 뼈빠지게 번 돈이 주머니 속에

좀 굳히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 이상하다.

지금보다 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도

봄이면 보릿고개가 와서 사람들의 얼굴이 노르탱탱해지던 시절에도

떠꺼머리 총각들이 장가는 가지 않았던가?

지금 세계 경제 순위 9위 10위가 되어 잘 산다는 우리 나라에서

짝을 찾지 못한 인구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사람이 밥을 먹고 집을 짓고, 배필을 구하는 것은 사람으로 사는

기본이다. 그런데 여자가 없어 장가를 못가는 멀쩡한 총각들이

수두룩한 나라가 잘 사는 나라인가? 돈 많으면 뭐에 쓸것인가?

잘 산다는 것은, 잘 먹는다 잘 잔다, 와 사랑하며 산다라는

기본이 잘 되는 일을 말할 것이다. 때가 되면 같이 잘 먹고

같이 잘 잘 사람이 있어야 잘 산다가 성립 되는 것 같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니 먹고 자는 일도 최소한의

사회를 이루고서야 온전해지는 동물이라는 의미로 읽는다.

내가 일하는 구역의 아파트는 그나마 좀 사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파트라 자식들이 직업도 좋고,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에

손주 손녀들을 보내주고 데릴러 나오는 복을 누릴 수 있는 어르신들이 많다.

요즘에 손주 손녀를 안아 보지 못하는 노령 인구가 점점 늘어간다.

아들, 딸 장가 시집 보내서 손주 손녀 한 번 안아볼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경제 순위 9위 10위가 무슨

소용인가, 그것을 물려 줄 자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돈만 점점 늘어서, 역 피라밋으로 점점 늘어가는 노령 인생의

황혼이, 우리 미래의 황혼이 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어 시집 장가 못가고

애 마음대로 낳을 수 없는 나라와 사회는 잘 사는 장소가 아니다.

어쩌면 물에 뜨다니는 쌀 보리 밥알도 건져 먹을 판에

흥부네처럼 아이만 조랑조랑 하던 시대가 잘 산다는 측면에서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나은지도 모른다.

굶주림도 함께 할 사람들이 있지 않았는가?

함께 할 사람이 없는 풍요여,

도대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고 싶은 것인가?

 

순박하고 사람 좋은 핸주 행님이 더 이상

거액의 고독세를 물며 살아가지 않는

잘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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