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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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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보리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29회 작성일 17-01-23 20:24

본문

얼굴이란 참 강한 피부다. 이 맹 추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몸의 어떤 부위보다 땀구멍이 작고, 밀도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날, 얼굴의 피부가 몸의 피부보다 더 많이 찌그러지고, 구겨지고, 검버섯 피는 날도 오겠지만, 아직은 가장 악조건에서 가장 고운 피부다. 무슨 까닭인지 같은 조건의 박복을 견디는 손 피부는 푹 삶은 번데기 10개를 손 마디에 드러내며 정직하게 늙어 있다. 마치는 시간이 되자 날씨가 춥다 싶었던지 전화 하지 않아도, 어느샌가 전동카 앞에 손님처럼 와 있던 남편이 털 장갑 한켤레를 내밀었다. 종일 전대에 모인 만원권 지폐가 겨우 세 장이라 마음도 얼어가던 중에 그가 내미는 털장갑을 보니 금새 기분이 따뜻해졌다.  은근히 눈이 높은 내게 짙은 아이보리색의 장갑이 노티나고 없어 보인다 싶었지만, 그냥 엄청나게 고맙고 감동한 체 했다. 엄청나기까지는 아니였지만 정말 가슴이 찡했지만, 그것보다 더 오버해서 기쁘해주었다. 난 가끔 진실보다 따뜻한 거짓을 사용한다. 낯가림 심한 그가 혼자 가게에 들어가서 종업원의 눈길을 받으며 장갑을 고르고, 천원짜리 한 장도 크게 생각하는 그가 최소한 만원은 지불하며, 저녁 반찬 걱정을 했을 것을 생각하니 그가 돈 쓴 보람을 느끼길 바랬다. 아들 둘이 장염에 걸려 병원을 오가는 선희가 전기 장판 만한 선물 셑트를 사들고, 또 한보따리의 야쿠르트를 사러 왔다.  애들이 장염에 걸렸는데 유제품은 먹여선 안된다고 펄쩍 뛰는 나를 뒤로 하고 주섬주섬 제품을 골라 담았다. 늘 생각하지만 겨울은 참 따뜻한 계절이다. 겨울은 가장 뜨거운 계절이라는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거스럼 돈을 건내다가 내 손가락에 잠시 스치는 손님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그냥 와락 잡아버린다. 다행히 손님은 여자다. 너무 따뜻해요! 아이 좋아라, 계속 잡고 있었음 좋겠어요. " 그냥 표정 없이 동전을 거슬러 받던 손님의 얼굴에서 조금 어색해하다 곧 환한 측은지심이 피어난다. "춥지요? 어떻해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별개의 것인양 생각하지만 그런 순간 다정이 와락 교차하는 것을 보면 몸이 곧 마음인 것 같다. 피부에 마음이 피처럼 돌고 있는 것 같다. 여름이였다면 서로의 손바닥에 고인 땀기에 진저리를 치며 손을 털다시피 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인 선희는 공 선희고, 보험하는 선희는 백선희다. 또 내가 알고 있는 한 선희는, 그냥 선희다. 노래방 가명이기 때문이다. 야간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놓고 노래방을 다니던, 성씨 없는 선희는 허벅지까지 오는 찢어진 청치마를 사시사철 입고 사금 바구니를 흔들듯 탬버린을 흔들며 돈을 벌어 아이들을 키웠다. 지금은 좋은 남자 만나 분식점을 차렸다. 이 선희들과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였을 때 강변 가요제에

나온 파마머리의 이선희는 제이에게를 불러 공전의 히트를 쳤다. 나는 그 때부터 이 세상 누구도 아닌 이니셜을 첫 머리에 쓴 편지를, 이 세상 누가 생길 때까지 쓰고 또 썼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혼자 키우며 살고 있을 무렵 "선희야! 가방을 왜 쌌니?"하는 태진아 노래가 나왔다. 연탄을 차에 피워 놓고 정선희의 남편이 좀 오랜 후에 자살 했다. 선은 대부분 착할 善일 것이다. 그리고 희는 대부분이 계집 姬일 것이다.  내 주변에도 내 멀리에도 이렇게 착한 계집들은 많다.  나는 내가 착한 것은 싫어서 온갖 위악을 떨며 내가 좀 센척 하지만, 남이 착한 것은 정말 좋아한다. 착한 것은 무엇일까? 착한 사람, 착한 일, 착한 생각, 착한은 중국어 善과는 좀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선은 곧 惡과의 대비를 이루는데, 웬지 착한 것은 반댓 말이 없는 것 같다. 나쁜, 못된이 있지만 나쁜은 좋은과, 못된은 잘된과 짝일 것 같다. 선은 이미 어떤 분별에 이른 마음인 것 같은데 착한은 아무 분별도 모르는 고운, 어떤 의식이나 의향이나 의지인 것 같다. 잘모르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손을 와락 잡을 때, 어머, 아줌마 왜 이러세요? 하고 한 번 묻지도 않고, 손을 내맡기며, 아무 판단이나 생각 없이

측은이 만든, 살짝 저물녁의 역광 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은 착한, 인 것 같다. 착한은 너무 착해서 착한을 반대할 말 조차 없는 것 같다. 착한은 원래 고여 있던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일이라, 판단이나 생각의 필터에 오래 걸러질 시간이 없다. 순간적으로 그 착함이 우러나버리는 것이다. 그에 비해 선은 웬지 인간적인 의지가 관여하는 것 같다. 항상 빗방울 하나가 맺혀 있는 젖은 머루 같은 눈을 가진 공선희는 착하다. 내가 미친 개처럼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도, 누군가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토하고 넘어져도 끝내 나를 집에 까지 데려고 가서

이불까지 덮어주고 가는 선희는 착하다. 내가 어떤 말도 되지 않는 실수를 해도, 내가 술 깬 뒤에 말을 삼는 일이 없다. 그것이 노력으로 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착한 것이다. 나는 이 선희와 정 선희와 가방을 싼 선희가 착한지 어떤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도 모든 선희들은 내게 따뜻한 사람들일 것 같다. 선은 선을 행하는데 상대방이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을 내밀며 맞아도 상처 받지 않을 논리를 찾아 낼 것 같은데, 착한은 그저 맞고 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선희들에겐 이유도 없이 맞아서 울었던 손자국들이 많다. 선희는 가방을 싸야 했던 것 같다.

 

나의 술집은 우리 집이다.

나의 술친구는 남편이다.

우리의 게스트는 고양이다.

최근 고양이의 이름은 메롱고로 바뀌었다.

나는 인디언들처럼 그 때, 그 때의 내 느낌으로

자주 이름을 바꾼다.

그랬더니 키우던 개가 죽고

다른 동물들에게 그다지 정을 주지 않던 그도

고양이를 메롱고라고 따라부르며 정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한 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영어를 잘 하는가 못하는가로 유무식을 판가름하듯

오래 전엔 한문을 잘 하는가 못하는가로 유무식을 판가름 했을 것이다.

우린 왜 늘 내게 있는 것으로 나를 판단하지 못하고

남의 것으로 나를 판단하는 왜곡된 잣대를 가지게 되었을까?

우리는 늘 약소국으로라도 살아남는 동안에

강대국은 자꾸만 바뀌었는데

일본에게만 이를 갈며

다른 제국들은 영혼으로 받들고 살아가는 걸까?

일본이 더 교활 했더라면

우리는 명절에 기모노를 입고, 신사참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이 그 오래전 우리보다 약소국 출신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콜라와 햄버그처럼 그들의 언어를 숭상 할 것이다.

손발이라 말하지 않고 수족이라 말한다.

눈코입귀라 말하지 않고 이목구비라 말한다.

웬지 우리말은 숨이 소리의 끝까지 미치는 것 같다.

뜻이나 그 이상의 어떤 인위적인 의식의 여과를 거친 말이 아니라

착함처럼 그 순간의 마음이 대상을 만났을때 탄성처럼 쏟아진 말 같다.

화가 아니라 꽃, 향기가 아니라 냄새, 애가 아니라 사랑, 심이 아니라 마음

신이 아니라 몸, 어디에도 붙들리지 않은 숨의 소리가 난다.

바람, 나무, 하늘, 숲, 빛, 나, 너,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단어 하나 숨이 죽은 것이 없다.

왜 이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내가 숨을 쉬기 시작하면서 부터 사용했던 말이기 때문일까?

 

선희야, 고맙다. 나는 감사라는 단어보다 고맙습니다.가 좋다.

깍듯하고 정제되고, 뭔가 그래야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 감사보다

고맙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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