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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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리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46회 작성일 17-01-26 19:39본문
동상 걸린 발가락이 오른 쪽 발에 두 발가락이 더 늘었다.
열에 주려서 난 병이라 한이 되었던지
두번째 발가락이 벌겋게 혼자 열을 내고 있다.
엄지 발가락 가장 자리도, 서로 마음을 터놓기라도 한듯
엄지의 최면을 지켜가며 조심스럽게 열을 내고 있다.
동상에 걸리지 않은 발가락들은 오히려 푸르딩딩하다.
낮에 시어머니가 내가 일하는 전빵 나무 아래를 다녀 가셨다.
보라색 털모자 아래로 몇 가닥 남지 않은
민머리가 살짝 보였다. 얼마나 시릴까 싶었지만
내 손발도 곱고 시려서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었다.
명절이라 많이 팔릴거라고 해서
이것 저것 잔뜩 내려놓은 제품들은 팔리지 않고 추위와
어둠은 더해갔다. 체념도 되지 않고, 낙관도 되지 않는 시간이
아무 생각도 말라고 그러는지 두통을 몰고 왔다.
그냥 어디가서 술 한잔 마시고 펑펑 울고 싶은 심정이였다.
물건이 없어서 팔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귀울인 것이 잘못이였다.
1300원 짜리는 백개도 넘개 남았다. 종일 팔려 나가는 것은 백칠십원짜리
스무개들이 묶음이 대부분이였다. 다음주 월요일 배달분을 싸고도 그만큼
남았다. 앞으로 삼일은 더 묵혀야 하는 제품들이다. 산너머 산이라더니
돌아오는 길에는 휴대폰 액정이 하얗게 지워졌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싶은 내 마음을 휴대폰이 어떻게 알았던지, 금방이라도 1300원 짜리
열개나 스무개를 사겠다는 고객의 전화가 걸려 올 것 같아 마음이 조마
조마 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냥 이대로 설 연휴 끝날때까지
발효유에 대한 전화는 두절 되었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일은 엄마를 보러 창원에 간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에게 내려가면 하룻밤 자고 오고 싶다.
피곤하다.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곳에 들어오니
얼음처럼 몸과 마음이 녹아내린다.
걱정하지 말자,
못 팔면 먹으면 되는 것이다.
백개라해도 십삼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십삼만원이면 신발 한켤레 값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다 못 먹으면 이웃에 나눠주면 된다.
조카들과 엄마에게 한 상자씩 선물하면 된다.
내가 언제부터 푼돈에 마음 졸이는 쫌생이였던가?
기분이 좀 나아진다.
동상걸린 발가락은 아프거나 가렵거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신경이 자꾸 쓰인다.
빨갛게 부어오른 자리를 꾸욱 느르면 하얗게 변한다.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자꾸 만지고 누르게 된다.
술이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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