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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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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물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267회 작성일 17-03-0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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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에게로 가는 길 / 정기모


무심한 날들을 접어둔 채
너에게로 가는 이 길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벚나무 그늘을 지날 때는
자주 눈물 글썽거렸지
하얗게 지는 벚꽃잎 아래서
화려하지 못한 날들이지만
잊지 못함이 너무 컸던 내
그리움도 하얗게 날렸지
앞을 가로막던 보리밭 앞에서
지난날들의 아픈 추억이
날새운 잎들보다 상처가 깊다는걸
지나온 길 위서 들었지
밤마다 울어가던 소쩍새 흔적은
노란 민들레 눈가에 맺혀있고
뿌리로부터 키워낸 그리움은
하얀 꿈으로 날아오른다는 걸 들었지
따스한 봄날
너에게로 가는 길은
빛났던 지난 날들이었고
간절한 안부 진실로 전하고 싶던
그날들이 하얗게 번지는 길이였지






별리 / 권영준


이 한번의 눈맞춤을 위해
긴 혹성의 강을 헤엄쳐 온 너와 내가
만 번의 인연으로 만났다는 걸 아는지 몰라
어느 별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한순간 머물렀던 아픈 이별이
천 년의 어둠을 뚫고 지나는
사랑이었다는 걸 아는 지 몰라
상처는 가장 인간적인 추억의 속살
너를 위한 추억 하나를 위해
빛 하나가 우주를 가로질러
네게로 날아오고 있다는 걸 아는 지 몰라
설령 우리의 눈짓이 씻을 수 없는 죄가 되어
증오의 강을 건널지라도
우리가 어느 별에서 다시 만나
이 순간 눈맞춤의 기억 사르며
황홀한 어둠으로 피어나리라는 걸 아는지 몰라






나무의 밀교 / 권영준


누군가 내게 보낸 봉인된 엽서들을
손에 쥐고 흔드는 저 나무의 애틋한 눈길은
천상의 우체부를 닮았다
지난 겨우내 썼다 지우고
지웠다 다시 쓴 생명의 시간,
나무는 수도 없이 잎들을 땅에 떨구며
자신을 버리고
한번 버렸던 잎들을 봄마다 다시 주워들어
지나는 이들에게 애타게 손을 흔드는 것이다
그럴 때 세상은 볕에 물들고
빈 나무의 풍요한 밀교를 기억한다
길을 가다가 살펴보면
나무는 한 권의 책이 되어 있다
미처 건네 주지 못한 숱한 사연과 온기들을
둥근 나이테 사이에 두툼하게 끼워 두고
새파란 우체통이 되어 우두커니 서 있다
자물쇠 없는 우체통에서
오래 잠들었던 내 사랑을 흔들어 깨울 때,
몸에서는 짙푸른 잎사귀가 돋아나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다가가
불쑥, 초록 손을 내밀어보는 것이다





풀밭 위에서 / 권영준


바닥을 기고 있는 저것,
몸을 뒤집었다 폈다 오므렸다 하며
안간힘으로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저것,
몸이 주석(註釋)으로 붙어있지만
저 문장은 오늘의 석학(碩學)이 해독하지 못한다
손가락 한 토막보다 작은 등뼈에
소장된 엄청난 서적을 다 훑어볼 수 없다
작은 몸짓 한 장,
그것이 한 권의 경전(經典)보다 두껍다

공장이 세워지지 않은 곳마다 책갈피들이 펄럭인다

풀밭 위에 어떤 청정한 항해가 출렁거리고
풀잎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수많은 새떼들이 활자들을 읽고 지나간다
이곳에서 새들이 즐겨보는 책은
단 한 장으로 된 풀잎의 책
새들이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저 불립문자의 책을 읽고 부터이다

새소리가 아름다운 건 나뭇잎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 소리의 울림을 흉내내지 못하는 건
아무도 베껴가지 않았던 풀들의 묵음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평생을 읽어도 다 깨치지 못할
저 풀잎 두 쪽에 쓰여진
빽빽한 잠언들





사랑을 기억한다 / 김수우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가
내 몸 속 백혈구들은
고등어 한 토막에 일으켰던 네 살 적 알레르기를
꽃밥 짓다 사금파리에 긁힌 손끝 비린내를
마흔 네 개의 봄을 먹고 마흔 네 개의 겨울을 낳은
핏줄, 그 뜨거운 숲을 침입한 비린내에
돌짝 가슴 온통 가렵구나

살아있는가. 견딜 만한가 내 사랑, 다시
누군가, 라는 혁명을 꿈꾸라

제 그림자 다 크도록 흔들리기만한 눈빛들
놓쳐버리거나 놓아버린 이름들
내 몸속 빗살창이 되었으니
표시 없이 기억나는 멍울들
기억 없이 표시 나는 흠집들
마흔 네 그루 포플러를 낳았으니 , 그 바람소리에
온 하늘이 지독히 가렵구나

그래, 많이 여위지는 않았는가 내 사랑, 다시
어딘가, 라는 혁명을 꿈꾸라






빈 계절의 연서 / 정기모


흰 바람벽에 머물다 떠나는
얇아진 빈 계절의 연서는
풀물 머금은 그리움으로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들국화 향기도
마른 잎의 향기도
붉게 내려서는 노을빛도
모두 품어 안고 흐르다
적막함이 일어서는
깊어진 밤으로 걷다가
비로소 풀어지는
빛 푸른 강물이 되리니

다시, 흰 바람벽에
빈 계절의 연서가 새어 나가고
물푸레나무보다 더 푸른
문장들이 곱게 새겨지면
촛불의 목마름보다 더 깊은
기도 같은 고요의 깊이가 되리니





그 먼 기다림 / 정기모


속삭이듯 내리던
겨울비의 음표들이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어 깨우는 동안
오랜 그리움들이 몰려나와
실낱같은 잔뿌리들을 헹구어내면
침묵보다 더 깊던 겨울이
단잠으로부터 깨어나고
봄의 향기에 기대어
고요한 문양 수놓아갈 계절에
오래도록 목놓아보아도 좋겠습니다

강물의 노랫소리 청아한 저녁
시린 가슴으로 별들을 찾을 때
조각조각 흩어진 사랑의 흔적들이
여름날의 꽃들처럼 환하여
따뜻한 꿈은 온 밤 다 새우는데
두근거리던 오랜 기다림일랑
저 홀로 떨어져 내리는
붉은 동백 속에 감춰두고
새벽 물안개를 휘감아 안고
그 먼 기다림인 듯
꽃인 듯 피어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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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물풀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물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 김 근

  이제 우리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구름떼처럼은 아니지만 제 얼굴을 지우고 싶은 사람들
 하나둘 숨어드는 곳 햇빛 따위는 잊어버려도 좋아요 날카롭게 돋아나서 눈을 찔러버리는
 것들은 잊고 구름으로 된 의자에 앉아 남모르게 우리는 제 몫의 구름을 조금씩 교환하기만
 하면 되지요 「구름목장의 결투」나 「황야의 구름」같은 오래된 영화의 총소리를 굳이 들을
 필요는 없어요 구름극장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네모난 영사막은
 뭉게뭉게 피어올라 금세 다른 모양으로 몸을 바꾸지요 그럴 때 사람들이 조금씩 흘려놓은
 구름 냄새에 취해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건 어때요 오직 이곳에서만 그대와 나인 우리 아직
 어둠 속으로 흩어져버리기 전인 우리 서로 나눠 가진 구름의 입자들만 땀구멍이나
 주름 사이에 스멀거리기만 할 우리 아무것도 아닐 그대 혹은 나 지금은 너무 많은
 우리 사람들이 쏟아놓은 구름 위를 통통통 뛰어다녀 보아요 가볍게 천사는 되지 못해도
 얼굴이 뭉개진 천사처럼 하얗고 가볍게 이따금 의자를 딸깍거리며 구름처럼 증발해버리는
 사람이 있어도 그런 건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요 구름극장이 아니어도 우리도 모두
 그처럼 가볍게 증발해버릴 운명들이니까요 햇빛 따위는 잊어버려도 좋아요 구름에 관한
 동시상영 영화들은 그리 길지 않아요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저녁이면 둥실 떠올라 세상에는 아주 없는 것 같은 구름극장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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