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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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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유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6회 작성일 17-04-01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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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쓸었던 대빗자루로 꽃잎을 쓸려니 신발 씻는 솔로 양치질하는 기분이 들어
106동 청소하는 이모에게 아직 숱이 남은 싸리비를 하나 얻어 쓸었다. 그 예쁜 것을
왜 쓸고 있냐며 아까워 하시는 주민들을 나는 사랑한다. 호시탐탐, 경비 아저씨와
청소 이모들이 게을음을 피우지 않나 살피다 관리 사무실에 민원을 넣는 일부 주민들,
낙엽도 꽃잎도 사람도 아낄 줄 모르는 주민들이 불쌍하기도 하다. 봄을 창가에서 턱을
괴고 보지 않을 수 있는 나의 팔자에도 감사한다. 봄은 아름답고 막연한 배경이나 풍경이
아니라 내겐 달콩달콩한 끼여들기 이며 간섭이며 깜찍하고 발랄한 시비이며 때론
귀찮고 짜증스럽기도한, 살갑게 육화된 인연이다. 장부를 펼치면 일부러 끼운 적이 없는
살구 꽃잎 책갈피가 끼워져 있고, 보관함 두껑을 열면 야쿠르트와 천밀리 우윳병에
어디서 날려 왔는지 매화인지 살구인지 벚꽃인지 분간할 수 없는 꽃잎이 달라붙어 있고
비 온 뒷날은 차분해진 꽃잎을 싸리비로 쓸어야하고, 보관함 두껑에 나무가 월경하듯
뚝뚝 떨어지는 느티나무의 수액이 말라붙기 전에 행주로 닦아내야 하고, 시집도 않간
나이 어린 경리에게 찍혀서 온갖 잔소리를 다 듣고 돌아와, 아무도 모르게 울다
젖은 눈알을 말리느라 멀리 바라보면 우두커니 나의 슬픔을 바라보는 개의 털처럼 
와락 껴안고 싶은 꽃나무들, 젖은 비옷을 소나무 가지에 말려 놓으면 함께 말라붙는
꽃잎들...봄은 종일 야쿠르트를 팔아도 손에 쥐는 돈은 삼사만원 밖에 되지 않는
가난한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더 가까이 더 깊숙히 더 친하게 온다. 

한 이틀, 겨우내 나의 추운 곁을 다녀가시던 108동 할머니가 햇볕이 좋은데도
나오시지 않아 몹시 걱정이 되었다. "몇 일 전까지 팔각정과 경로당에서 만나던
할망구가 갑자기 보이지 않아 어쩐일인가 싶어 전화를 하면 다른 세상에 갔거나,
아파서 멀리 있는 자식들에게 갔거나, 요양소에 들어가고 없는거야" 하시던 여든 여덟살
할머니가 이틀이나 보이지 않으시는 것이였다. 하루는 비도 오락가락하고, 날이
궂어 그런가 했지만 햇빛 짱짱한 날에는 왜인가 싶어 그 동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붙잡고 물었지만 알길이 없었는데, 오늘 할머니가 유모차처럼 생긴, 늘 밀고
다니는 차를 밀고 나타나신 것이였다. 사실은 너무 반가워 눈물이 쏟아질 것 같
았지만 무슨 까닭인지 꾹 참았다. 사실은 할머니, 늘 보던 친구가 갑자기 오지
않았던 세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아닌가 싶어 얼마나 걱정 했는지 아세요?
할머니는 늘 점심때 다니러 오는 큰 아들과 삼천포 어시장에 가서 쌀가재미와
갈치 몇마리를 사시고, 여기 저기 봄장을 둘러 보시고 오셨다는 것이였다.
1931년생 나의 친구는 친구가 사라지는 세가지 이유 중 하나가 아니라 
몇번이나 남았을지 모르는 봄을 둘러 보시느라 이틀이나 잠수를 타신
것이였다. 아무리 건강하셔도 시한부인 나의 친구는 아들 이야기 며느리 이야기
이웃 이야기 나라 이야기 까슬까슬 햇볕에 잘 마른 수건처럼 흡수력 있는
목소리로 무릎 베고 졸며 들으면 참 좋을 것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시다
마무리를 하시듯 언제부터 짚기 시작한 지팡이처럼 현관문이나 국밥 먹으러 간
식당 신발장 옆에 기다리고 서있는 것 같은 죽음을 이야기 하시며 먹구름이
잠시 지나가는 양지처럼 어스럼해지신다. "할머니! 죽어서 보지 못할 친구보다
더 슬픈 친구는 살아 있는데 보지 않는 친구 같아요."  살아서 보지 않는 친구가
많은 나는 외려 죽을 때까지 친구였던 할머니들이 부럽다. 햇볕이 점점 좋아지며
옷장 속에 나프탈렌 냄새속에 묻어 두었던 수의를 꺼내어 말려야겠다는 할머니들이
많아졌다. 근사한 파티에나 입고 가려고 특별히 아껴 놓은 옷처럼 어둠 속에 묻어두었던
하얀 드레스를 햇볕에 내어 널며 오래 묵은 습기처럼 눅눅하게 베여드는 두려움도
일광소독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죽음을 말해도 전혀 심란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
정말 말발 좋은 나의 친구는 말 한마디 건내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하는 또래
친구보다 조근조근 말해도 알아 듣는 귀밝은 친구가 편한지 어느 페이지부터 펼쳐도
재미 있는 책을 읽어주듯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다 일부러 한참 동안 자리를 피해
주는 아들이 어디선가 돌아오면 "늙으면 주책이야. 내가 쓸데 없는 야기만 하다 가네"
하며 앉았던 자리를 수습하고 가신다. "어머니! 이젠 이틀 결석 하시면 전화 한다예!
감기 걸리거나 아프면 야쿠르트한데 벌금 내시는 거 잊지마이소"

오늘은 행복 했다. 이틀 동안 보이지 않던 오래 된, 거의 1세기나 되어가는 나의 친구가
연락이 되지 않는 세가지 이유와 상관 없이 다시 나타나주어 행복했고,

10지구 여사님이 사무실에 가는 길에 챙겨 달랬던 비옷을 싣고 자전거를 타고 갔던 
이웃지구에서 아침 저녁 등원 하원때마다 만나는 새댁들을 마주쳤는데
"어! 우리 동네 야쿠르트 이모가 왜 여기 와있어요? 이모 
빨리 우리 동네로 가요. 가게 비워 놓고 놀러 다니면 혼 나요!"
하며 얼마나 반가워 해주는지, 비옷을 건내받던 여사님이 부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정말, 행복이라는 단어가 봄이라는 단어처럼
살갑게 육화 되는 것 같았다. 어제는 다단계를 하는 사람이 네트워크
그물망을 내게 그려보이면서 사업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을 보고
112동 새댁에게전화가 왔다.
"이모! 제 얘기 듣기만 하세요.! 그거 피라미드 다단계거든요.
절대로 속으면 않되요. 걱정이 되서 전화 했어요."

불과 다섯달 전에는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이 외국에서 만난 동포처럼
길에서 만난 나를 반가워 하고 내가 이상한 사람에게 속을까봐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준다. 내 배달용 야쿠르트 가방에는 오다 가다
손님들이 주고 가시는 떡과 빵과 과자와 커피들이 넘쳐난다.
봄도 행복도 사랑도 친구도 요즘엔 내 생애에 모두 사람으로 태어난
예수님처럼 구체적이고 베릿하게, 체온과 냄새를 전하며 육화 되어간다.
만져진다. 안겨진다. 엎혀지고 손이 닿고 말이 통한다.

사무실에서 내가 뭔가를 했다고 홍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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