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7年 07月 02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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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14회 작성일 17-07-02 21:57본문
鵲巢日記 17年 07月 02日
꽤 흐린데다가 비가 내렸다.
고향에서도 / 이제는 객지 잠 신세 / 철새는 날고
위 詩는 하이쿠다. 일본 ‘교라이’ 詩人의 詩다. 타지에서 오래 살다가 고향에 왔다만, 고향은 더는 고향 같지가 않다. 소싯적, 정서적 어떤 위안 같은 것은 전혀 묻어나지 않는 타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곳이 돼 버렸다.
경산에서 참 오랫동안 살았다. 올해로 27년이 넘었다. 경산은 시민이 줄어드는 시가 아니라 오히려 외부에서 유입해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 시가 매년 점점 커가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학교가 가장 클 것이다. 4년제 대학만 해도 이곳은 몇 개나 있고, 전문대도 여러 곳에 자리한다. 다음은 진량공단이다. 여러 중소기업이 많이 밀집한 곳이 또 경산 진량이다. 중소기업의 인력난으로 외국인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 가게에서 편의점만 지나가도 중국인이나 피부가 다른 외국인은 쉽게 볼 수 있다.
피부가 다른 외국인이나 고향이 아닌 이곳에 내가 머문 것이나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철새처럼 왔다가 텃새가 되었다. 그것도 27년째 말이다.
경산은 과수농사를 참 많이 한다. 참외, 대추, 복숭아, 자두, 감, 포도 등 군데군데 농사짓는 모습은 여사로 볼 수 있다. 인심이 좋아 어디서 들어오는지 이러한 과일은 끊이지 않고 먹을 수 있어 그것도 좋다.
일본 ‘교라이’ 시인의 시처럼 이제는 고향은 객지처럼 느끼지만, 또 하룻밤 묵어가는 신세로 철새처럼 느끼는 곳이 도로 고향이 돼 버렸다. 나는 고향에 내려가도 한 번도 묵은 적이 없다. 잠을 특별히 가려 늘 자던 곳이 아니면 잘 수 없어, 부모님을 뵈어도 그날 오기 바쁘다.
지금은 고향이 오히려 버겁기만 하다. 동네 어른들 보기에도 아직 동기들이 머물러 있기라도 하면 소싯적 그 느낌은 버릴 수 없으니 오히려 그것이 부담일 때가 더 많다. 경산은 그런 것이 없다. 아예 나의 뿌리가 없으니, 어찌 보면 먹고 사는 일이 부끄러움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일도 오래 하면 부끄럽기만 하지만, 아직도 이 커피를 손에 쥐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경산은 익숙한 곳이 되었지만, 어느 사람을 만나도 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도 마치 오늘 새로 본 것처럼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뿌리가 없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종일 본점에서 책을 읽다가 본부로 이동해서 또 책을 읽었다. 다시 또 피곤하면 본점에 자리를 옮겨 책을 읽으며 오고가는 손님만 눈여겨보았다.
상주에 개업하겠다던 창대 씨가 본점에 종일 머물렀다. 교육 받기 시작한 지 참 오래되었다만, 그때 건물 다 지었다는 것이 아직 준공이 나지 않았나보다.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올해 초, 성주 모 교회에 기계를 설치한 적 있다. 교회 사모님 소개로 구미 모 반찬가게 사장을 소개받았다. 반찬가게지만, 커피를 부수적으로 갖추려고 한다. 내일 오전, 11시 30분에 본점에서 뵙기로 했다.
저녁, 9시쯤 어머님께 안부로 전화 드렸다. 어머니는 쌀이 좀 남았는데 동네 친구 어머님께서 두 자루 가져가셨다는 얘기와 올해 농사는 어찌 될는지 모르겠다만, 쌀값이 또 걱정이다. 그리고 옆집 어른이 엊저녁에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하신다. 옆집 어른의 함자는 병자 석자를 쓰시고 전주 이씨 정석군파 20대였다. 올해 여든 둘이셨다.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보았다. 아들, 동규는 올해 서른둘쯤 되었을 것이다. 고인은 첫 번째 아내를 얻었지만, 자식을 보지 못해, 두 번째 아내로 늦게 딸 둘과 아들을 보았다. 그러니까 막내 동규는 어머니가 두 분이다. 모두 살아계시지만, 큰어머니가 좋지 않다며 소식을 전한다. 옆집 어른은 동네 꽤 유지라 땅이 많았다. 어른께서는 형제도 꽤 많았지만, 옛날 사람은 유교에 따라 맏이가 전적으로 상속을 받아, 당시 재산 분배로 형제간에 우애가 크게 상했다. 명절 때가 되면, 옆집은 우리보다 손이 많아 떠들썩 법도 한데 늘 조용했던 기억이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머니는 옆집 어른이 돌아가셨다는데 목소리는 카랑카랑하셨다. 오히려 우울해하시지는 않을까 했지만, 정반대였다. 아버지는 논에 다녀오시거나 또 가시거나 하면, 옆집 어른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렇게 오랫동안 말벗 삼아 얘기하곤 하셨는데 오히려 아버지 심경이 좋지 않겠다는 생각만 든다. 어제 함께 식사할 때였다. 뇌졸중에 대해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병인지 묻기도 했다. 물론 모르시어 물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동네 함께 산, 정이 있고 그 한 사람이 떠나는 길에 잠깐이나마 산소호흡기 차고 있기에 하신 말씀이었다. 어머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제는 가족이 그 호흡기 떼 달라고 하면 병원에서도 더는 꽂아두지도 않는다고 말씀만 이었다. 여든을 넘겼다면 살만큼 산 것은 맞으나, 그래도 참 인생이 이렇게 빨리 가는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늘 뵙고 인사하고 가깝게 보았던 어른이라,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근자, 뵐 때도 피골이 상접하고 허리도 구부정하여 어찌 저리 늙으셨을꼬 했다만, 참 안 된 일이다. 오토바이타고 논에 가시려는 옆집 어른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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