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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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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66회 작성일 17-07-29 08:53

본문

감자를 깍고, 울어가며 한 망의 양파를 까고, 양파를 다듬고

물을 켜서 다듬은 것들을 씻어내고,

나의 손은 많은 사물들을 감각한다.

대부분 흙에서 난 것들이고, 가열을 하면 음식이 되는 것들

음식이 되어 사람의 생기와 삶이 되는 것들

정직하고 기적 같으며 신성한 사물들을 감각하는 일이

내 적성에 맞는듯하다

 

장사를 하는 것은 내게 맞지 않는 일인 것 같다.

그들이 필요해서 사먹는데도 나는 너무 고마워서

꼭 무엇인가를 주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 소소한 고마움의 표시들이 고스란히 빚이 되었다.

그러나 괜찮다.

몇 억을 투자해서, 또 수십억을 빚지고

모든 것을 잃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 까짓거 삼사백 만원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산다.

새벽부터 잠 못 자고, 끼니 걸러가면서 마음과

시간을 쏟았던 일의 결과라서 왜 이렇게 되었나

이상하긴 하지만 괜찮다. 그런데 집요하게 어떤

문제를 파고 들고 계산을 하는 성격이 못 되어

더 생각하기 싫어 그렇지, 뭔가 좀 이상하긴 하다.

유통 기한이 다 되어 먹거나, 손님에게 서비스로

주었던 것들은 노트에 다 기록했고, 밥을 사먹거나

소소한 지출 또한 다 기록했다. 커다란 욕조에

발효유를 가득 쏟아붓고 목욕을 해도 이삼십 만원을

넘지 않을텐데 첫 달엔 90만원,  평균 3,40만원,

저번 달엔 이백 만원, 마지막으로 배달만 한 이 달 조차

백만원 가까이 된다. 뷔페에 가서 김밥 하나, 고기 한 점,

접시에 올려도 한 접시를 채우니까 몇 백원짜리 빚이

모이고 모였을까? 모르겠다. 생각하기 싫다. 남의 것

뺏지 않고 내 것 잃어 다행이다.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물러터진 이전의 10지구 친구도

첫달, 백만원, 둘째 달 백, 그만 둘 때는 삼백만원을

물어 주었다는데, 그녀와 나 빼고는 전국 14000명 여사님들이

모두 아무 문제 없다고 사장이 말하니까 그냥

그녀와 나만 이상하고 만다. 그래, 고등학생 딸 둘 키우는

남편도 없는

그녀와 몇 백이 전 재산인 나만 이상하고 말아서 다행이다.

이 불볕 더위에 달랑, 파라솔 한 장에 비도 바람도 햇볕도 다

피하는, 14000명 여사님 모두 남한테 말못하는 납득하기 힘든

빚을 져가며 일하고 있다면 얼마나 참담하랴,

어쨌거나 나는 운동하러 나왔다 목이 마른 할머니에게

뭐라도 빨대를 꽂아 드릴 수 밖에 없고, 나만 보면 야쿠르트

아줌마다! 하며 소리를 지르는 네살 짜리 지민이에게

얼려 먹는 발효유를 하나 줄 수 밖에 없고, 친구들에게 왕따라는

5학년 정민이 친구들에게 발효유 한 묶음을 줄 수 밖에 없고,

유통 기한 삼 사일 남은 제품들을 친해진 새댁에게 부탁 할 수는

없고, 장사를 접어두고 빗 속을 헤매는 치매 노인을 모르는체 할

수 없어 국밥을 사먹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그럴 수 밖에 없다가

쌓이고, 모이고, 그래서 빚이 된거라면, 때려 치우는 것이 답이다.

 

한동안은 자학에 빠졌다. 늘 그랬지만 자학을 안주 삼아 술독에

다시 빠졌다. 뭐 하나 변변하게 하는 일이 없다. 사장님 말따나

만사천명 여사님들이 오년, 십년, 이십년 하고 집도 사고 해외

여행도 가는 일을 나는 감당히지 못해서 빚만 지고 그만둔다.

팔개월 동안 정들었던 지구다. 남은 배달을 하느라 지구를 돌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할머니들도 나를 좋아하고

나도 할머니들이 참 좋았다. 검은 손수건을 부르셨던 전직 교장 선생님은

요양 병원에 가신지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108동 할머니가 돌아

가실까봐 겁이난다.

 

그래, 그 까짓거 뭐라고,

최선을 다했으면 되었다.

 

날씨가 더우니까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마르고 말라 바닥을 보인다.

밥을 먹을 때 기도를 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새벽 배달을 나갔을 때

"너의 식물을 물 위에 던져 두라"

하셨던, 솔로몬에게 하셨던 말씀은 그저 솔로몬에게 하셨던 말씀이였나보다.

첫 달에 이해 못할 돈 80만원을 물어 넣고

계속 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며 배달을 돌리고 있을 때

누군가 내 마음에 불쑥 던지듯

나를 때리는 것 같은 그 한마디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냥 떠오른 기억에 지나지 않았다니,

나는 믿음이 부족해서

나의 식물을 물 위에 계속 던져 두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무역을 하던 옛 사람들에게 배 위에 식물을 던져 두라는 것은

계속 투자하고 진행하라는 말이다.

이젠 하나님의 말씀에도 속지 않도록 신경을 쓰야 할 것 같다.

 

덥다. 다만 덥다. 신경 쓰기 싫다.

주방에서 일을 하면 땀으로 샤워를 하는듯도 하지만

물을 맨손으로 종일 만질 수 있어서 좋다.

헬렌켈러가 물을 물이라고 깨달은 순간이

종일 지속 되는 것 같다. 정말 물은 기적이다.

계속, 그릇을 씻고 야채를 씻고, 물은 이어진다.

종일 물을 손끝에 만지며 물과 대화를 나누면

내 삶의 모든 슬픔과 울분, 기억, 뭐든, 뭐든 다

희석 된다. 맑아진다.

물은 영원한 여행이다.

내가 손끝에 만진 물은 언젠가 편지처럼 누군가에게로

흘러간다. 내 잘못이나 죄가 있다면, 내 잘못이나

죄를 씻은 물이 내가 무슨 잘못과 죄가 많았다고

생각하는 그, 혹은 그들의 기억도 씻을 것이다.

그렇게 물은 스스로 맑아져서 온 세상의 생기가 될 것이다.

울지말자, 무엇이 잘못 되었다고 여기지 말자.

 

나 자신을 믿자.

사장은 관리를 잘 못해서 그렇다고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신다.

나는 돈을 쓰지 않았다.

내가 쓴 인심을 몇 배로 쓴다해도 그 금액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 자신 아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 할 용기도

없다.

세상에 숱한 일들을 잘 하지 못했다.

그런 목록 중 하나가 더 늘었다고 비관 할 일은 아닌것 같다.

잠이 너무 와서 어린이 놀이터 미끄럼틀에 숨어서

새우처럼 짜부러져 잠든 적도 있었다.

너무 추워서 공중전화 부스에 숨어 있었던 적도 있있다.

그래도 나는 잘 할 수 없었다.

전국 14000명 여사님들이 다 잘도 해내고 있는 일을

나는 더 이상 빚을 질 능력이 되지 않아 그만두어야 한다.

네살박이 지민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줌마! 왜 그만 뒀어요. 우리 지민이가 몇 일 째

아줌마 않보인다고 찾아요."

정화씨가 함께 밥을 먹고 막걸리도 한 잔 하고,

담배를 권할 때 지민이 생각을 했다.

지민이가 담배 피는 야쿠르트 아줌마 모습을 보면

싫어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원래도 잘 피지 않는 담배가 더 싫어졌었다.

지민이가 싫어 할 것 같아 한 동안 욕도 잘 하지 않았다.

이젠 지민이와 상관 없이 살 수 있다.

학교를 마치고 꼭 오백원짜리 발효유를 하나 사 먹으며

이런 저런, 귀신 이야기와, 어떻게 생각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들을 늘어 놓던 정민이랑 상관 없이 살 수 있다.

나 같은 며느리 있으면 참 좋겠다던 108동 할머니,

열 시간, 풀 타임으로 살아온 세월을 쏟아내시던 광주 할머니

모두, 모두 상관 없이 살 수 있다.

새 여사님이 와서 나 인줄알고 갔더니, 다른 사람이더라고

전화를 해주신 모든 할머니, 새댁들과 상관 없이 살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이것 저것 심부름을 해드렸던 다리 아픈

106동 할머니 심부름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안녕, 안녕, 모두들, 빌어먹을 안녕,

 

나는 이제 감자를 깍고,

평생 쌓인 서러움 몰래 폐기하며 양파를 까고,

내 안에 쌓인 기름끼, 더러움이라 생각하며

그릇을 씻고 또 씻고,

화장실 바닥을 락스 풀어 씻고

주방 바닥도 락스 풀어 씻고

어디라도 얼룩지고 더러운 것이 보이면

또 닦고 씻고 마른 행주로 다시 닦아

광을 낼 것이다.

이해 못할 빚도 지지 않고 계산도 하지 않고

수금도 하지 않고, 사람과 사랑하거나 이해하거나

들어주지 않고, 사물만 계속해서 만지고 닦고

이해하며, 집중 할 것이다. 이제는 칼질도 조금 늘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동안 쉬어서

좀 어색하긴 해도 모두 익숙한 일들이다.

 

시는 모르겠다.

무슨 의미나 있는건지.

계속 쓰고 살았으니

또 계속 쓰고 살아가는거겠지

시는 아무 꿈도 희망도 아니다.

그냥 아무거나 오래 못하고

할 능력도 없는 내가

할 수 있고, 오래 하고 있는 일 중 하나 일뿐이다.

술을 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예수님, 사랑한다.

그러나 온 우주를 창조하신 당신의 사랑은 너무 아득하다.

멀미가 느껴진다.

나는 온 종일

감자를 깍으며

양파를 까며

버섯을 자르며

그릇을 씻으며

당신에게 집중하고, 당신을 느끼고

당신과 말하고, 당신과 함께 무슨 일이라고

하고 싶다. 난 도시에서 사람들 속에 있어도

사막의 수도원에 있듯이 오로지 당신과

독대하며 살아 갈 것이다.

당신 말고,

나는 너무 모순에 차 있고 불가능과 불완전과

불 명예, 불, 불, 불, 모든 불들로 가득차 있다.

내게 튄 침 만큼이라도 온전한 것이 남아 있다면

그기서부터 당신을 시작하는 것이다.

왜 살아계시는 이라고 기도하는가?

살아 계셧으면 하는 것인가?

그를 살아 있게 하려면

내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살아 계시다고 첨부, 중언부언 할 것 없이

온 세상은 살아 있지 않은가?

감자로, 양파로, 물로, 더러운 그릇들로,

나로, 너로,

모두 살아계시는 예수님의 이름인 것이다.

 

알았지? 이사람아,

넌 그래서 하나도 슬프지 않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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