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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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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73회 작성일 17-08-0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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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폰을 열면 곧바로 뜨는 성경을 외면한지 여러 날 입니다.

어제의 성경은 베드로가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는 장면 입니다.

그리고 통곡을 하는군요.

저는 무슨 까닭인지 예수님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은혜로 죽음을 넘어서는 장면들보다

예수님의 어마어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저 나약한 사람일수 밖에 없는 장면들에

더 가슴이 찡해집니다. 그리고 성경이 김일성이 백두산에서 맨손으로 호랑이 때려 잡는 장면들보다

사람의 나약하고 어리석고 더러운 장면에 대해 적나라해서 믿음이 갈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저를 잘 알듯이 제자 저 자신을 잘 아는 까닭일 것입니다.

저는 하루 종일 새벽닭을 울리는 베드로인 것 같습니다.

아예 주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이 아니라 제가 피땀 흘려 장만한 양식이라고 선포라도 하듯

밥상 머리에서는 주님을 떠올려 보지도 않고 밥알을 씹었습니다.

1년만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값85000원 쓴 것으로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함께 쓴소리 하는 것에 관해

자꾸만 치미는 노여움을 주님의 말씀으로 다스리기 보다는 그 노여움 때문에 주님이고 누구고

다 "어디, 있으면 날도 더운데 숨박꼭질이나 하지 말고 나와 봐, 나와 보라고"하며 술을 진탕 마시고

여자 혼자 술 취했다고 누가 건드리거나 흉을 볼까봐 잘 사는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 미끄럼틀에

숨어 들어 혼자 울며 중얼거렸습니다. 한낮의 열기가 미끄럼을 타지 못하고 고스란히 빨려 들어와 있는

플라스틱 미끄럼틀 안은 언제 부터인가 도롱이에게 꼭 맞는 도롱이 집처럼 저에게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시콜콜한 노여움들을 말할 주님이 없다면, 저는 동네 목욕탕에서 물커피에 얼음 동동

띄워놓고 앉아 이구아나처럼 온 등에 부황을 붙이고 상한 피를 빨아내듯 시월드를 펼치는 편안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겠지요. 그래요. 저는 좀 편해지면 않되나요?  오전에는 오디 농장, 오후에는 오골계 식당, 요즘에는

노예도 나만큼 일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런 내가 흰머리가 너무 많고, 반곱슬 머리를 생머리로 하고 있으니

어디서 서방질하다 머리 깍힌 년 같아 1년 만에 미용실 한 번 간 것이 알뜰하게 살지 않는다고 무슨 말이라도

들을 일인지, 무슨 이조 시대도 아닌데 나는 왜 아무 할 말을 하지도 못하고 너의 부모를 공경하고, 네 이웃을

사랑해야 했는지, 예수님, 싫습니다. 더 이상 사랑하기 싫어요.  있는 그대로 그냥 살고 싶어요. 미우면 미워하고

할 말 있으면 하고, 원수가 있으면 죽이고, 사랑은 당신이 다 하고 십자가에 매달렸으니, 난 그냥 좀 편하면

않되나요?  이전 같으면 벌써 전화를 해서, 어머니, 아까는 제가 너무 더워서 그랬어요. 어머니께 화가

난 것이 아닙니다. 죄송해요" 했을 것이다. 무슨 대꾸라도 한 것을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은 것을 사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지금은요, 계속 아무 말도 하기 싫어요. 제가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예수님만 아시는 것이 이제는 싫어요. 이대로라면 평생도 말하지 않게 될까봐 무서워요. 무슨 말을 한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자기 존재에 대한 권리와 자유를 깡그리 무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섞고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머니 당신은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져 칠팔십만원짜리

가발을 쓰고 계셨죠. 그 가발 썼을 때 저는 제가 사드리지 못해서 미안했지 어차피 빠진 머리를 그렇게 비싼

것으로 덮느냐고, 싼 인조 가발도 천지로 있는데 그러시냐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노란

고무줄로 질끈 동여맨, 머리카락 잘라주고 만원 주는 변태 아저씨가 만원을 주는 머리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제가 당신 아들이 벌어다 준 돈으로 미용실 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시월드가 보두 합세해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으신 것을,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도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무슨 연민이나 안스러움이나

모두 저의 몫이고, 상대방은 지치지도 않는지 무슨 잘못이나 부족한 것들만 지적하는

이상한 관계들이 아주 지긋지긋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가졌던 직업이 목수 였다고 하셨죠? 대패를 들고 나무를 깍으셨나요? 나무와 나무을

이러 집을 지으셨나요? 저는 식당에서 설겆이를 합니다.

처음에 요령이 없는 설겆이 아줌마들은 큰 대야에 맑은 물을 받거나, 개수대에 맑은 물을 가득 받아놓고

세제를 잔뜩 풀어 닥치는대로 그릇들을 빠뜨립니다. 그러면 물에 오물 찌꺼기들이 둥둥 뜨고 된장이나 초장

간장 때문에 금방 물이 흐려지고 그릇들은 씻으려고 담근 것인지 더럽히려고 담근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요령이 생기고 겁이 생긴 검투사가 칼을 휘두르기 전에 초 긴장 상태의 고요 속에서 상대방의

눈빛을 읽고, 눈빛과 싸우고, 눈빛을 제압하며, 상대방의 허를 살피듯, 설겆이도 요령이 생기면 소리가

많이 나지 않습니다. 먼저 오물 바구니에 그릇을 대고 흐르는 물로 그릇에 남은 모든 음식들을 비웁니다. 그리고

수세미로 남은 오물을 걷어 냅니다. 마음을 씻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먼저 큰 건더기들을 비워내고

찌꺼기들을 흘려 보내는 시간이 필요 합니다. 큰 건더기란 감정의 덩어리 같은 것인데 먼저 아무 양분도 없는

그것들을 오물로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고, 오물이기 때문에 내 안에 당아 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 중요 합니다.

버릴 것을 쓸 것과 함께 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쓸 것을 함께 모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른 설겆이 아줌마들은 어쩌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래요, 두번째 흘려 보낼 것을 흘려 보내고 수세미로

초벌을 닦아낸 그릇은 뜨거운 맑은 물에 담급니다.  이제 버릴 것 버렸으니, 진심으로 뜨겁게 안는 일이 중요합니다.

약간의 거품도 필요 합니다. 이전 시간의 기름끼나 앙금을 걷어내는데는 약간의 과장도 필요 합니다. 더 활짝 웃고

필요 없는 말도 건내고, 더 꼭 껴안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담겼던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성분이 아닙니다. 얼핏보면 더 씻을 필요도 없을 정도가 되어야 그릇들은 식기 세척기 바구니에 가지런히 꽂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근절이며 소독이며 혁신 입니다. 마음에 담았던 것은 아무리 맛있고 진귀한 감정일지라도 그릇에

담겼던 음식물처럼 씻어야 할 더러움이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상하고 변합니다. 이전에 담았던 것과 새로 담는 것이

서로를 물들 입니다. 빨간 김칫 국물이 다 지워지지 않은 그릇은 식기 세척기에 꽂혀도, 그 폭풍를 견뎌도

여전히 빨간 얼룩을 안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워지지 않는 것은 락스가 필요 합니다. 독이 필요 합니다. 항암치료를

하듯 내 안의 일부를 죽여야 깨끗함을 얻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래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많아 늘 술독에 나 자신을

담그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요령 있는 주방 보조 아줌마는 초벌에서 이미 승부를 냅니다. 칼을 휘두르기 전에

이미 그를 죽이고서야 칼을 빼는 것입니다.  식기 세척기는 일종의 태풍 입니다. 그 뜨거운 태풍에도 날려가지 않은 것들만

남아서 나오는 그릇들의 형틀 입니다. 그래도 양념을 씻어내지 못하고, 오이나 당근 채가 말라 붙은 그릇은 모든

과정을 다시 시작 합니다. 진실을 까놓고 머리채를 뜯고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 합니다. 그래도 남는 것 안에 다시

담아가면 되니까요. 아니면 스스로 분노의 폭풍을 견디고, 그기에 소독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의 경계를 인지하고

조심과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대궐 같은 집을 지어서 하필이면 산자락에 기대지 않으면 벌써 쓰러졌을 우리집 옆에 이사를 온 이종사촌

네집에 집떨이를 가서, 왜 어머니에게 살갑게 굴지 않느냐고 남편이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날 그의 기분을 살펴서 말했습니다.

"미안한데, 시간을 좀 줘. 지금 당장은 무슨 말도 나오지 않아.

 

그래요. 이젠 나았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환자예요. 그리고 무슨 악의가 있었겠어요.  저렇게 작고

외로운 노인에 대한 커다란 감정의 덩어리는 버리는 게 훨씬 나은 오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오물 바구니에 쏟고, 흐르는 물에 찌꺼기를 씻어낼 시간을 주세요. 모든 것이 안에 그대로 있는데

마음을 섞는 일은 부패를 섞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언제라도 이런 사소하고 인간적인 번민에 휩싸일 때마다 저 자신을

식기 세척기에 넣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주소서,

 

저는 지금 이 순간도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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