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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천상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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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317회 작성일 17-08-02 14:06

본문

아버지 돌아 가신지 일주년이다

모두들 바쁜데 부담스러울거라는 만류에도

어머니는 작년 이맘때, 헐빈한 상갓집을 채워 준

사촌들과 아버지의 형제들을 불러 모았다.

살아 있어서 시간도 흐르는 것인지

납골당 항아리에 붙은 아버지는 뇌경색이 오기 전

그 얼굴로 웃고 계시고, 벌써 오래 전에 뼛가루가

되어 흩어진 동생도 아버지 곁에서 열아홉인데

일년 사이에 산사람들은 나이테처럼 나이 먹은 만큼 더 크게

늙어 있는듯 했다. 길거리에 나 앉아 진흙을 어개어

집을 짓고 살면서도 일가친척에 대한 도리에 소홀하지

않았던 당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던지, 그 무더위에도

열댓명이 넘는 일가 친척들이 모여 들었다.

망자의 피붙이나 인연들이 억지로 붙들어 두려는 의미들을

가둔 곳이 하늘 공원인듯, 꿀 파는 집에 꿀단지처럼 한 단지씩

앉혀 놓은 추억들은 각자의 이름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오랫만에 킁 하고 목이 매인 엄마가 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내더니

소녀처럼 동그랗게 납골당 바닥에 앉아 기도를 하시더니

울먹 울먹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는 문장이 귀에 익었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시가 행을 갈고, 연을 넘겨가면서 점점 아려 오던 눈알을 굴려 옆을 보니

늘 무쇠 같던 우리집 장손 사촌 오빠가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교회도 시도 멀고 멀던 팔십 넘은 큰 어머니, 삼촌 숙모, 사촌 올케

당숙모님, 머리가 하얀 당백부님, 모두 모두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하는 구절에서 끓는 주전자처럼 코를 킁킁이며 울었다.

 

장녀로 태어나 줄줄이 귀저기 찬 동생들 키우느라

초등학교 3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엄마가

가물가물 읽히던 한글이 교회 다니며 성경책 읽으니까

환해지더라는 엄마가, 산 건너 산, 물 건너 물이던 팔자가

박복해서 늘 찡그리고 아프다 아린다 하셔도 시원챦으실

엄마가 마음에 품고 사시는 시가 있었다니,

모자라고 변변찮아 마누라 남편 천신도 못하고

아이들만 줄줄이 끌어다 맡겨 놓았던 자식들 뒤치닥꺼리 하며

13년 누운자리 지키던 영감 돌보며

가난에 풍상에 하루 하루가 고문 같았을 엄마가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할거라는 싯귀에 공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를 쓴다고 하면서 언제  엄마에게 내가 읽은 시라며

한 편 읽어 준 적도 없던 나는 사실, 귀천을 초보자들이나 감동하는

시라며 깊이 읽어 본 적도 없었다. 너무 흔해서 무의미 해지는 것들

중 하나였을 뿐이였다. 금슬이 유난스러웠던 부부가 한 쪽을 먼저

보내고 남아 읽을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 엄마가 시를 읽다니,

그리고 엄마만큼이나 힘들고 고비고비 시름이였던

엄마 연세이거나 엄마 보다 더 늙은 노인들이 엄마가 낭송하는 시를

듣고 울다니...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밀려 들었다.

내가 이제껏 시라고 썻던 시들이 모두 쓰레기 같았다.

뭐든 기발하고 특이하게 꼬고 비틀고,

그러는게 아니였다.

 

누가 읽어도

누가 맞아도 젖는 비 같아야 했던 것이다.

엄마랑 일면식도 없는 천상병의 시가 엄마를 울리는데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엄마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자라

아직도 엄마 신세를 질 때가 있는 나의 시는 엄마가

한 편 들어 본 적도 없다니,

 

언젠가 한 친구가 생각 났다.

엄마가 읽어서 좋아할 시를 쓰고 싶다는

그 친구도 나도 아직 시집 한 권 내지 못하고

변변한 시인 조차 되지 못했지만

 

친구야, 아직 살아는 있으니

우리 다시 한번 쓰보자

엄마가 읽어서 좋아 할 시를

엄마 살아 생전 한 번 쓰보자.

 

오늘은 까페에 모아 둔 시들을 모두 읽어 보아야겠다.

엄마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시가 있는지

참,,,부끄럽다.

우리 엄마 참 아름답다.

단 한마디도 어디가 아프다 쑤신다는 말씀을 하실 줄 모르는 우리 엄마,

우리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늘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머리하고,

표정이 밝아서 모두가 좋아하는 우리 엄마,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고 살아 공기가 얼음장 같아도

십일조는 꼭꼭 하고 사시는 영혼이 건강한 우리 엄마,

영감 간지 일년만에 일가 친척 불러 모아놓고

읽어 줄 시를 품고 사는 우리 엄마,

정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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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일돌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일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랫만에 시마을에 들러 이곳 저곳 둘러 보다가
공덕수님의 글을 읽고 큰감동을 받았습니다
좋은 글이란 이렇게 진심과 애정이 배여 있는 글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
앞으로 좋은글 많이 쓰시길 기원합니다

공덕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ㅎㅎ 제 글에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댓글 달아 주시니까 엄청 기분 좋네요.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 저 자신이 저의 멘토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글 속의 저의 말을
현실 속의 제가 실천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무슨 의미라도 담지 않으면
날마다 씻어야 하는 돌솥 뚝배기와
불판들이 너무 무겁고 힘겹게 보여요.

누구를 감동 시킬 수도 있다고는 감히 생각 해보지
않았어요. 누구랑 친구가 될 재간도 없고
저 자신과 친구가 되어 저 자신과 수다 떨고
저 자신에게 하소연하고, 저 자신에게 충고와
조언을 얻고, 그러는 것이 저의 글 입니다.

누가 제 글을 읽을 것이라 생각하면 쓰지 않을 말도 많을 것입니다.
좀 그럴싸한 일들도 아니고
맨날 땀줄기로 만든 조롱에 갇혀 사는 새처럼 살아가는 일을
적은 것이 행여 궁상 떨고, 넋두리 하는 것으로 비치지나 말았음
좋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쓰면서, 저 자신이 저 자신에게
내미는 손을 잡으며 일어서고, 눈물을 닦고 그렇게 살 뿐
그외의 글에 대한 아무런 욕심도 꿈도 없습니다.
가끔 어디 독자 투고란 같은데 투고해서 이삼십만원 원고료를
받으면 여기 저기 진 작은 빚들을 갚을 수 있기도 합니다만
그 부업 할 시간도 잘 없어요. ㅋㅋㅋ

고마운 일돌님! 덥습니다. 이 더위에 제 후덥지근한 삶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돌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일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ㅡ우선 자꾸 댓글을 달아 성가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혹시 예전에 다른 필명으로 창작시방에 시를 올리신 분이
아니신지 상당히 독특한 시로 인상이 깊게 남었지요
소설을 한번 써보시는게 어떠실런지요
공덕수님의 글은 호흡이 길고 질박한 입담의 디테일이
강한지라 소설로 형상화 하기에 충분한 역량이라 생각됩니다
우스게 소리지만 소설 한번 잘 쓰면 돈이 되니까요 (ㅎㅎ)
다만 불편한세상에 대한 호기 있는 치기있는 글만 다듬어진다면요
너무 주제넘는 사견을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글을 보면 그사람이 읽힌다고
왕자과, 공주과의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은중에 공덕수님의 글은 진솔합니다
제도권문단도 선수는 선수를 알아 본다고 공덕수님의글이 문학적으로
표현될때 쾌히 받아드리리라 확신 합니다
허접한 참견에 다시한번 사과 드리며
하시는 일마다 항상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빌며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공덕수님의 끈질긴 건필을 응원합니다

공덕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소설을 쓰보라는 권유를 하며 자신이 아는 소설가까지 소개 시켜 준 친구 생각이 납니다.
ㅋㅋ 시는 그나마 분량이 짧으니까 돼던지 안되던지 쓰는데
소설은 시간 싸움인데 엄두도 안납니다.
뭐라도 될것 같았음 벌써 되었겠죠.
제 주제에 뭘 하겠어요.
고마워요. 뉘신지 모르오나, 정말 이 무더위에 식당 사장이 긴 호스로 화단에 뿌려주는
물 같습니다. 어떤 극작가인지 소설가인지 하는 젊은 문인이 굶어서 죽은 적이 있는데
이번 생은 아닌가 보다 했다든가.. 건강 하십시요. 오랫만에 들리셨다 하니 고민이 깊으셨던듯
합니다. 이 놈의 시가 무엇인가하고 말입니다. 시야 어쩌든간에 건강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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