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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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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29회 작성일 17-08-11 04:59

본문

어쩌면 벌써 떠났어야 했고, 벌써 놓았어야 했다

 

산 밑에 터를 잡은 오골계 식당은 식당 사장의 결벽증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 통이 내리막 길을 제법 한참 걸어서,

도로를 건너, 소싸움 경기장 안내 방송 소리가 가끔 들리는

전신주 옆에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설 추석때 떡 다라이를 이고

방앗간에 떡을 하러 가듯, 음식물 쓰레기로 산을 이룬 다라이를 이고

달빛 속을 걸어가서 잘못 내리면 오물 한 줄기가 목과 등을 향해

서늘하게 한 줄 쭉 긋는 것을 느끼면서 분리 쓰레기통에

푹 쓰러지듯 쓰레기를 비운다. 종일 무더위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음식물 쓰레기통이 내뿜는 덥고 역한 공기를 피하기 위해 쓰레기

바구니에 끼여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흙바닥에 한 번 툭 털고

도로를 건널 때까지는 숨을 쉬지 말아야 한다. 혹시 눈 먼 차가

달려 오지 않나 이쪽 저쪽을 살펴 후닥닥 길을 건너고서야, 참았던

숨을 크게 한 번 몰아 쉬고, 그 순간을 위해 하루를 견딘듯이 올려다보는

달, 어제는 거의 보름달처럼 살이 찌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단체 손님이 있을 때면 손님 두 사람만 있어도 비스듬하게 깍아지른

언덕 같은 정원을 지나야 올라 갈 수 있는 방갈로에 손님을 받는데

그기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건 성격이 면면한 내 몫이다. 비 오는 날 내가

그 방갈로에 앉아 한 잔 한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실내만 종일 돌아 다녀도

나중에는 응치가 욱씬 거리는데 큰 바위로 오르막을 치다가, 돌 계단으로

입구까지 이어진 그 곳을 펄펄 끓는 탕을 들고 서너번만 오가면 그 안에

시원하게 에어콘 켜놓고 앉은 손님들이 남의 고통을 즐기는 변태들로

보인다. 그래도 나는 햇빛 속이거나 달빛 속이거나 그 정원에 있는

연꽃들을 볼 수 있고,  대숲에 술렁이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갓 잡은 닭비린내가 몇 년 동안 깊숙히 베인 실내를 벗어 날 수 있어서

바구니나 쟁반에 실린 무게를 잊고 팔푼이처럼 신이 나 있을 때가 더 많다.

 

가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내가 한참 젊은날 시를 쓴답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기억만으로 "내 딸은 시인이다"라는 자랑을 한다.

나랑 단 둘이 있을 때 그 말을 하시는 것도 챙피한데

엄마의 친구나 교회의 집사들이 있을 때 그 말씀을 하시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진다.

"당신이 임명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시를 쓰고 살면 시인이지 시인이 별겁니까"
당선이 되면 시를 실어 준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모 월간지 대표 시인에게 그 말을 할 때만 해도 난 참 젊었었나보다.

 

맞다, 나는 나 스스로 나를 시인이라고 부르며

하루 하루 시가 되는 기분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나도 징그럽다.

한 바구니 뒤 섞여 있으면 간더미가 다른 야채 더미와 다를 것도 없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목숨에 달려서 목숨이라는 시스템을 가동시키고 유지하던

장기라고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내일이면 이 바구니에 간덩이를

던져 줄지도 모를 닭들이 얇은 가건물 벽 너머에서 오골골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오늘 아침까지 그들의 친구였던 닭들의 간을 장만한다.

나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난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충실한 관료 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충실한 관료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 그로서는 진지하게 숙고하고

생각했던 결과 일거라 싶어, 감히 생각하지 않은 죄를 나는 물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내가 빼어 놓은 간을 백개이건 천개 이건 헤집고 쓸개를 발라내는 일을

누구보다 깔끔하고 신속하게 해내야 했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시를 통해

용서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어쩌면 내 부끄러움을 용서하고 싶어서 남의

부끄러움을 먼저 용서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라보면 살거라고 모래를 소화 시킨,

모래를 노란 금가루처럼 승화 시킨듯도 한 닭 모래집 속의 똥이 더럽게 느

껴지지 않는다. 사람 목숨들, 어쩌면 사치인 식탐을 위해 버려진 목숨들

깨끗하고 예쁘게 걷어주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왕지사 남 먹이자고 죽었으니

보암직도 먹음직도 하게 정성을 다해 그 시신을 거두어주어야지 하는 생각 든다.

시는 이렇게 바라보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켜 주어 해골의 물을 달게 마실 수 있게

마술을 부려주는 친구였다. 실핀을 찔러 무거운 것에 눌리면 더 아픈 머리를 오물 바구니 밑에서

꺼내고 올려다보는 달의 황도빛은 어찌그리 처연하고 고운지,

종일 그 사람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서성였던 사람처럼 나는 그 순간의 달을 볼 수 있다.

닭대가리, 닭뼈, 닭 내장, 닭다리, 닭 목뼈,

나는 시를 쓰기 때문인지 그것들이 징그럽다고 느낄 수가 없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 검고 윤기나는 눈을 감겨야 살 수 있는 내가 징그럽다.

오늘 타는 숯불을 들고 다 올라가면 숨이 섹섹 차는 방갈로에, 부부로는 보이지

않는 남성과 단 둘이 앉은 여자는 도무지 닭 같은 건 잡아먹지 않게 보이는

벨트를 찬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중년 여성이였다.

그녀는 딱 보기에도 닭고기 굽는 것이 서툴러 보이는 내게서 집게와 가위를

달라고 하며, 두 사람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우아하고 고상한 여성도 닭을 잡아 먹고 사는 것이다.

닭대가리, 닭 내장, 닭 다리, 그녀의 이빨 사이에서 모두 나온 것이다.

다만 아이히만이 그 나머지 일들을 다 해치웠던 것이다.

만약 그녀의 원피스에 피부에 그녀가 먹은 닭은 내장에서 단 한방울의 육수만 튀어도

그녀는 기절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닭을 먹기 위해 고급 승용차를 몰고

향수를 뿌리고 그기까지 온 것이다. 시는 내게 말한다. 유난떨지 말라고,

가증 떨지 말라고, 남의 엄한 목숨 절단 내었으면 맛이 있네 없네, 하지 말라고,

그게 니 목숨이면 어쩔거냐?  간도 쓸개도 똥간도, 다 네게 있는 것들인데

너가 너를 잡은 것인지도 모르니 백배하고 먹으라고,

 

서른 일곱의 베트남 여자는 뼈가 가늘어서 부러질듯 하다.

어려서부터 이국에 시집을 와서 친정에도 보내고 벌어 먹고 살거라고

주방일에는 이골이 나서 칼질하는 솜씨가 한 평생 주방에서 보낸

찬모들보다 낫다.

"야야! 언니가 갔다올께. 언니 덩치 한번 봐라. 이 정도는 되야

안정감이 있지"

그녀가 한숨을 안으로 내쉬며 바라보는 오물 바구니를 뺏으며

그녀를 한 번 웃게 만들어 주고 싶어진다. 시를 쓰면

그러니까 시를 쓰면 네가 나 같아 지는 것 같다.

단체 손님 파하고 첩첩으로 쌓인 탕 남비들, 숯 덩이가 되어 쌓인 석쇠들,

식기 세척기에 돌릴 수 없어 쌓아 둔 것들

내 일이나 남의 일이나 냉큼 고무장갑 끼고 주방에 들어가

척척 씻어 엎는다.

이국만리에서 시집 와 눈치만 늘어 웃기만 하는 그녀들을

정말 웃게 해주고 싶어진다.

 

내가 피곤하다고, 내가 지쳤다고

그대를 웃게 해주고 싶은 이 마음이 사라질까봐 나는 계속

여기 있다. 시를 쓴다. 엄마가 친구나 집사들에게

나를 시인이라고 자랑하면 정말 부끄럽지만

시를 쓰고, 시를 쓰야 행복하다면, 내가 시인이 맞긴 맞나보다.

엄마! 이 찜통 더위 속에서 선풍기 한 대 없는,

가스불이 최소한 열두개는 켜지는 주방에서

내 삶을 그저 시로 느낄 수 있다면, 나 시인 맞지?

엄마! 미안해요.

신춘문예나 어디 좋은 문예지에 사진하고,ㅡ 프로필하고

떡하니 나와서 자식 자랑이 제 자랑인 할머니들 앞에서

한 번 보라고, "야가,, 사진이 참 못 나와. 실물이 훨 나은데"

하며 자랑할 수 있는 시인이 아니라서 정말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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