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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기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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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8회 작성일 17-08-1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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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근하러 나선 집 앞에서 뱀을 보았다. 아주 어린 아기 뱀이였다.  오디 농장의 오디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독사는 대가리를 치켜들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 새끼뱀은 대가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뱀이 있다고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오디 농장에서 뱀을 발견하고, "아! 뱀이다"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는데 오디 아저씨가 달려 오더니 뱀을 막대기로 죽도록 쳐서 뱀의 몸이 긴 노끈처럼 풀리고 나서야 오디 농장을 에두른 고랑에 던져 버렸다. 그 뱀은 독사도 아니고 꽃뱀이라고 했다. 만약 내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뱀은 그렇게도 처참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고, 또 독이 없는 뱀이라면 그렇게 처참하게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가리를 치켜들고 갈지자로 흙바닥을 헤엄쳐가는 뱀을 보고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나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다만 뱀이라는 이유만으로 뱀이 죽는 것은 너무 죄송한 일인 것 같았다. 뱀이건 벌레건, 다만 내가 싫다는 까닭으로 그들이 이 행성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아닌 것 같다. 이 모든 생명체들에게 인간만큼 징그럽고 무서운 짐승이 있으랴, 사람은 동족인 사람에게 조차 가장 무섭고 징그러운 동물이다. 못 먹는게 없으니까 생명체 모두의 천적일 것이다.

 

올 여름은 모기장으로 났다.

영화에 나오는 이집트 여왕의 침실처럼 반투명의 휘장이 드리워진 우리의 침실은 신비로운 무드로 넘친다.

사실 내가 기분이 좋은 건 그 신비로운 무드가 살상용 무기를 대신한다는 것 때문이다.

모기향도 에프킬라도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죽이지만 모기장은 아무도 죽일 수 없다.

어렸을 때 사방 벽에 고리를 걸고 쳤던 그 모기장을 선풍기가 전부인 방에 치고 너무 더워서 하룻밤에 열번도 더

몸에 찬물을 뿌리러 화장실을 들락거렸지만 나는 약을 치는 것보다 좋았다.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가려움을 피하고자 무엇이라도 죽게 만드는 것이 나는 싫다.

모기라고, 파리라고, 지네라고, 쉰발이라고, 거미라고 생이 없겠나?

내가 하찮아서 그런지 나는 하찮은 존재들을 죽이는 것이 너무 슬프다.

나는 왜 내가 모기보다 파리보다 지네보다 쉰발이보다 거비보다 나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까?

모기인들, 누군가의 피를 빨아 자손을 먹여 살리고 싶을까?

모기라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그러라고 신이 만들었다면 그 천벌은 모기가 받아야 하는 것일까?

생이 신의 축복이라면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진대로 생을 향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도 가려운 것은 싫다. 그렇다고 피 한모금 훔친 댓가가 죽음이라니

장발쟝은 억울 할 것도 없겠다.

 

오늘도 나는 수십마리 오골계의 쓸개를 떼고, 똥집을 갈랐다.

사는 일이 너무 비리다.

나는 그 살상에 가담하지 않고는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일까?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다.

돼지 국밥 집을 가도, 소고기 집을 가도, 오리 집을 가도...

 

토할 것 같고, 숨을 쉴 수가 없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나는 모기장이 좋다.

 

술 취한 나의 결심

 

고기를 먹지 말자.

죽을 때 비명을 지르거나 죽지 않으려고 팔딱거리거나

피를 흘리는 생명체를 음식으로 먹지 말 것,

부처님의 의견이나 예수님의 의견과 상관 없이

나의 식욕 때문에 죽는 목숨이 하나라도 줄어들게 하자.

 

오늘도 예약 전화가 왔다.

오골계 백숙 두 마리..

갑작스럽게 주방 뒤쪽에서 오골골 오~~골골골...닯의 비명이 들려고고

잠시 후 털 벗기는 기계 소리가 들리고,

그 닭은 백숙 솥에서 나왔다.

오골골, 오골골골 소리 때문에 두부를 굽고 있던 나는

토할 것 같아서 미치는 줄 알았다.

고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먹지 않기를 결심한다.

술이 취했다. 그래도 결심한다.

오골골. 오골골골..지금도 토할 것 같다.

녀석들의 간을 썰어서 밑 반찬을 만드는 내가, 토, 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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