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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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80회 작성일 17-08-25 09:13본문
곧 평택에 있는 전자 회사로 취업을 갈 거라는 아들과
오늘 아침부터 정직원이 되어 첫 출근을 하기로 한 내가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년은 버텨 보자고
오래 한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것이 나쁜 피 탓인지
좋은 피 탓인지 모르겠다.
어디엔가 적을 두고 바닥을 파며 사는 체질이 꼭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나를 이해 하면서도
나를 닮은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닮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술을 한 잔 마시고 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늘 그가 우주 저 기슭까지 팽창하는
빅뱅에 시달리며 살고 있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감에 씁쓸해진다.
발 딪을 바닥이 없이
별들이 세포인 것처럼 밤 하늘에 둥둥 떠서
조합되지 않는 빛으로만 살아 갈 것 같아
위태로운 것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돈을 모르고 살면서
스물 다섯살 아들에게는
돈의 위력을 일깨워주려고
눈만 마주치면 돈, 돈, 돈한다.
아껴쓰라
적금을 넣어라
목표를 세워라
그 어느것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주문들을
아들에게 늘어 놓으며
그 세가지를 다 잘하지 못해서
물려 줄 것 하나 없는 죄송함을 자위한다.
그러나 아들아
사실은 뭐를 가지든지 가지지 못하든지
그저 하루 하루 행복하면 된다.
행복이 너에게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나에게 조차 행복이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고
때론 아무것도 아니기조차 하다.
어떤 너이더라도 너 자신과의 대화와 감사를 잃지 말기 바란다.
땡전 한 푼 없이 거리를 나서도
저마다의 지폐를 흔들며 푸른 부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있고
관람료 내지 않아도 저마다의 흔들림을 공연하는 화초들이 있고
달이나 해나, 어두운 장면은 어두운대로
밝은 장면은 밝은대로 비추는 조명이 있고
바람이 불고, 다이아몬드보다 영원한 별빛은 밤하늘에 지천이다.
주눅들 것도, 기죽을 것도 없다.
우리가 더 가졌다고 부러워하거나 자랑하는 것들이
사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일단은 새끼 손가락 걸었으니 1년은 버텨보자.
약속을 어기더라도 기죽지 말자
손가락에 맞지 않은 반지는 빼야지
반지에 맞춰 손가락의 살을 뺄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이 원하는 네가 되지 못할 것 같아
살을 빼라
운동을 해라
책을 읽어라 닥달이지만
엄마는 네가 원하는 네가 되건
세상이 원하는 네가 되건
어떤 너라도 사랑한다.
엄마는 다만 내가 이 생에 초대한 네가
이 축제에 나를 불러주어 고맙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가 아니라 이 생에게 고마워 할 수 있는
네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두달이 멀다 하고 식당을 그만두어도
그러는 나를 사랑한다.
어쩐지 그렇다.
이 세상 누가 손가락질하고, 버리고, 짓밟아도
어쩐지 나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
내가 나의 손을 잡고, 내가 나를 일으킨다
어쩐지 나를 버릴 수 없게
나를 소중히 여겨준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버리지 말라고
아무도 몰래 울면서 기도해준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어쩐지 나에게 매력적인 내가 되게
살아보자,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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