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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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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326회 작성일 17-08-28 00:27

본문

요즘은 오골계 똥집 대신 전복을 잡아서

내 삶은 참 좋아졌다.

참 거시기하게 생긴 전복은 죽을 때 피를 흘리지 않아서

이제부터 날마다 전복을 잡게된 내게 신의 축복이 내린 것 같다.

오골계 똥집에서 똥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지만

수족관에서 갓 꺼낸 전복은 똥냄새도 비린내도 풍기지 않고

가까이 코를 대어 보면 내가 좋아하는 바다 냄새가 난다.

처음엔 전복을 그녀의 집에서 어떻게 끌어내야 할지 난감 했지만

동물들에겐 숟가락만한 미끼가 없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맘에 드는

여자에게 남자들이 근사한 식사를 먼저 대접하며 숟가락의 위력을

보이듯, 나는 숟가락으로 전복의 집에서 전복을 끌어낸다. 다른 조개들은

바닥도 있고 천정도 있는 집에서 사는데 전복은 바닥 뿐인 집에서 산다.

신발 씻는 긴 솔로 물때가 앉아 거무티티한, 정말 야릇하게 생긴 전복을

씻으면 잔뜩 수축된 전복이 하얗게 변한다. 그 전복을 위해 상추와 깻잎으로 만든

커다란 방석을 깔고 접혔던 블라인드를 내리는 것처럼 전복의 몸을 조각 내어서

칼의 배에 얹고 길다랗게 손바닥을 얹어 늘어뜨리고 야채 방석 위에 눕히는 것이

새로 하게 된 나의 일이다. 아직은 서툴러서 햇빛을 가리는 블라인드처럼 길게

늘어져야할 전복이 물에 비친 가로등 그림자처럼 비틀거리고 전복 껍질 속에

남은 내장을 떼어내다가 내장이 터져 버리지만, 몇 마리만 더 잡아 보면 정말

예쁘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릴에 꽁치를 구워 내는 일도, 기름진

황금빛과 기름진 검은 빛이 반질반질 어우러진, 잘 구워진 꽁치 위에 파를 동동

띄운 간장을 끼얹는 일도 나는 잘 할 수 있고 행복하다.  좀 어리숙해 보이는 나에게

언니들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시키게 될 것 같은 일을 시키기 전에 해버린다. 내가 아직 미역국을

끓여내는 일을 잘 못하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언니가 종일 팔팔 끓는 뚝배기 스물

다섯개 앞에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리숙해 보이면 어떻고, 누가 어리숙하게 보면

또 어떤가? 따지고 보면 내가 좀 모자라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매사에 좀 그러한 것 같다.

 

가끔 식당 이야기를 시로 쓸 때 마는 주의 하는 것이 있다.

내 시를 읽고 식당 아줌마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자식을 낳으면 시키고 싶어하는 의사는 종일 아픈 사람을 보고

모두가 자식을 낧으면 시키고 싶어하는 변호사 판사 검사도 종일 나쁜 놈들과 당한 놈들만 상대하고 사는데

그래도 식당은 건강해서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맛나는 것을 먹고 싶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붓다 손이 붓다를 쓴 것은 손이 부어서 구부릴 수 없을 만큼 식당 아줌마들이 고생한다고

불쌍하게 여겨 달라고 쓴 것이 아닌다.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본래대로, 본성대로

돌이킨다는 것 아닌가? 예수님은 회개라고 하고, 부처님은 깨닫는다고 하는 것인데

식당 아줌마들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들이 먹은 자리를 아무것도 먹기 이전의

원래로 돌이키는 일을 한다. 그녀들이 구제한 그릇들이 다시 중생을 먹이는 것이다. 무엇이라도

깨끗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은 선업이다.  사람들의 선망을 받으며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왜 돈 받고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돈을 받고,

배고픈 사람을 먹이는 일은 하찮은 일인가? 나는 내가 시를 잘 쓰서 그녀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스스로 존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날마다 오골계의 간을 만지고, 장을 만지다보니 나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몇 박스의 보리밀을 다듬으면서 나는 알 것 같았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검지 손가락만한 보리밀이 나무 궤짝에 한 박스면 수백마리는 족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수백 마리의

보리밀이 똑 같은 배와 똑 같은 내장을 가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개성을 말하고 우리의 개별성을

하나님보다 맹신하지만, 갑자기 지구가 급냉 되어 누군가 지구에 달라붙은 인간들을 보리밀처럼 장만하게

된다면 우리는 무슨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이야기라고 말해도 소용 없다. 사람이 육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육체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가? 치와와와 진돗개의 차이는

엄청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개와 개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우슈비츠에서 수백만의

인간은 도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물고기나 개와 오골계처럼 사람을 생각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특별한 존재니까 적어도 사람과 사람 끼리는 동등한 소중함을 가진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인생이 넉넉한 업보만 있으면 무한 리필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일생에 하나씩

뭔가를 배우면 될 것 같다. 나는 이 생에서 꼬마 김밥과 롤 김밥, 그리고 똥집 장만 하는 것과 전복 잡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미역탕을 끓여 내는 것도 곧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면 리필된 생애에서는 요리사로 태어나게

되는 것일까? 그래 그래도 좋겠다. 아니, 주방 찬모도 좋겠다. 찬모는 설겆이를 하는 아줌마에 비해서 돈을 많이

받는데 주방에서 대통령이다. 나도 찬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음식이라곤 라면 밖에 못 끓이니까 찬모를 하지 못하는데

이것 저것 식당에서 많이 배워서 행여나 또 생을 살아야 한다면 주방 찬모를 했으면 좋겠다. 시인은 부업이였으면 좋겠다.

취미도 좋겠다. 이전엔 주방 찬모님보다 시인이 훨씬 나은 사람들인줄 알았기 때문에 나의 직업은 시인이고,

먹고 살기 위해 전전하는 모든 업들을 부업이라고 주장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나를 먹고 살게 하는 일이

나를 느끼고 살게 하는 일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철이 들었다. 시는 살기 위한 방편일 뿐이지 시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나는 요즘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시가 아직은 취미도 부업도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숭고할 것도

거룩할 것도, 고고 할 것도 없는 것 같다. 숭고하고 거룩하고 고고한 것은 다만 우리 모두의 혹은 그들 중 한 사람인

나의 삶인 것 같다. 요즘은 그런 착각이 신선하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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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시사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사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진주 아줌마 시인님? ㅎ얼굴도 안다만.
여전히 열씨미 쓰십니다 그려~
창방에서 술 마시고 신. 자. 등 남자 문인들과 싸우지 말고요~
특히 ' 내마음의 ㅇㅇ'똑같은 도롯트 가사쓰는 이팔떼기 머슴.. 신하고는 격이 안 맞으니 상대하지 마이소~~
담배. 술은 특히 여자에게 해로븜.
응원합니다, 치열한  당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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