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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로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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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51회 작성일 17-08-30 09:06

본문

모처럼 쉬는 날 아무데도 가지 않고 시를 썼다.

함께 식당을 다니는 친구들은 침을 맞으러 가고

물리 치료를 받으러 가는 뼈 아픈 휴일이다.

그렇게 쓰도 내 시를 읽어 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댓글 같은 건 기대 하지도 않는다.

읽는 사람이 없는데 댓글은 무슨..

 

이런 무명 인사들이 가장 쉽게 꺼내는 카드가 고호 같다.

생전에 한 점의 그림도 제대로 팔아 본 적 없다던,

그러나 쉽게 고호에 기대는 얇팍한 보상 심리는

마치 할머니들의 종교 같다.

나는 고호를 버린다.

푸주간의 종이도 버린다.

나의 독자는 나 자신이면 족하다.

처음부터 그랬다. 나는 퇴고를 배우지 못했다.

시 조차 배운 적이 없는데 퇴교를 어찌 배우겠는가?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 넣어야 하는지

염두에 두어 본 적이 없었다.

그 시를 순간 내 안의 시를 지면 위로

놓아주면 끝이였다.

그리고 그 시를 남의 시를 잘 읽지 않는

내가 읽었다.

뭔가 배우고 어쩌고 하는 것이

세상의 다른 일에 대해서 그러는 것처럼

귀찮고 거추장스러웠다.

먹고 살자고 일을 하면 어떤 집에서는

믈컵을 바로 놓으라고 가르치고

어떤 집에서는 물컵을 엎어 놓으라 가르친다

물컵을 바로 놓으라고 가르치는 집은

손님의 입이 닿는 곳이 식탁 바닥에

닿으면 비위생적이라는 것이고,

물컵을 엎어 놓으라고 가르치는 집은

물컵 안에 먼지가 앉는다는 것이다.

둘 다 타당하지만, 둘 다 문제가 있다.

가르침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어느 집을 가도 있는 가르침을

시를 쓰면서까지 받고 싶지 않다.

내가 놓고 싶은데로,

내가 사장인것처럼 놓고 싶다.

그래서 아무도 읽지 않으면 내가 읽으면 된다.

 

마음 먹고 인기나 명성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마음 먹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쓸쓸함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몸이 안마의자처럼 떨리는 겨울 밤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 한 번도 눈을 맞춰 보지 않은 별들이 참 많다.

추워서 더 맑은 대기 속에 홀연히 제 빛을 발하는

영겁의 외로움이 에세네파 수도사들의 흰 옷자락처럼

애써 찾아가는 고결 같다.

태양의 눈에 들어 본 적 없는 뿌리를 파보면

눈처럼 희고 순결하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꽃을 핀다

그러나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비가 보고, 나무가 보고, 새가 보고, 해가 보고

달이 보고 별이 보고, 바람이 보고 햇볕이 보고, 또 다른 꽃이 보고

그들에겐 사람이 알지 못하는 너무나 많은 독자들이 있어

아무 사람이 보지 않아도 꽃은 아무 때나 함부로 시들지 않고

아무도 따먹지 않은 돌사과들은 이도 들어가지 못하게 여물어지는 것이다.

 

단 한사람의 관객만 보고 있어도 연기를 한다고 했는데

진정한 연기자는 거울 앞에서도 연기를 할 것이다.

이미 외로운데 외롭지 말자 할 것은 없다.

그냥 외롭자. 묵묵히 자신을 지키는 것들은 외로움도 빛이 된다.

외로움을 버린 별은 사라진다.

난 고호의 빽을 믿지 않는다.

고호 역시 자신의 사후를 백년 후 천년 후를 뒷배 삼고

제 가난한 일생을 물감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별이였으니까 빛났을 것이고

꽃이였으니까 피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화단에 뿌리내리지 않는 꽃들이

온 세상에는 더 많다.

누가 봐주지 않는다고 별이 빛을 잃고

꽃이 스스로를 잃으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독자를 잃고 말 것이다.

 

뭐가 아까운가?

밥 벌이를 팽개치고 오로지 추구하는 자들의

이름도 내가 모르는 자들이 부지기수인데

나는 밥 벌고, 온갖 되지도 않는 사람구실 다해가며

열두시간 시민으로 살다

일주일에 하루나, 하루에 한 두 시간 시인으로

사는 것인데,

이런 비겁으로 내가 아까워해도 되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나이 스무살 때 나는 첫 월급으로 산 기타를 둘러매고

서울 가는 새벽 기차를 탔어야 했다.

나는 엄마가 울고,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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