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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께로 앉은 그을음을 닦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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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64회 작성일 17-09-0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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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한번도 약을 치지 않은 감나무는 무슨 억울함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늦은 밤에도 퉁퉁

생가슴 치는 소리를 내며 땡감들을 창고 지붕 위에 떨군다. 떨어진지 오래 되어 물컹해진 낙과를

밟고 똥 밟은 사람처럼 황당한 출근길도 있었다. 주인 아저씨의 말씀에 의하면 대부분의 과실 나무들이

약발에 의지하지 않고는 늦을 가을까지 열매들을 지고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무엇이나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못해 자신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병신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개업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미역국집 가스대 안쪽에 끓는 미역국이 넘치거나 튀어 더께로

앉은 그을음을 닦았다. 덕지덕지 앉은 그을음은 세제를 잔뜩 묻힌 쇠수세미로도 어림이 없어

그것을 밀어내는 끌 같은 것이 따로 있다.  쇠를 쇠로 밀어내면 나는 끽끽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간에도 나는 일부러 다른 일을 찾아 할 때가 많았다.  묵은 때를 보면

모든 사물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던 것처럼 그것을 밀어낸 자리가 낯설다. 사람들 또한 사람으로

살아 온 세월의 그을음과 때가 덕지덕지 앉아 아예 본래의 성질을 알아 볼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끌로 밀어내고 쇠수세미로 닦아서 겨우 드러낸 가스관의 쇠빛이 마치 살을 다 베어내고

드러난 뼈처럼 보였다. 무심코 살아 갈 일은 아닌 것 같다. 더께 위에 더께가 또 앉듯, 사람은 사람이

아닌 성질들을 껴입고 껴입다 끝내는 불을 내뿜는 구멍이 막히고 가스가 흐르는 길이 망가져 못 쓰게

되어가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도무지 아무 필요도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욕망하고 꿈꾸는 것들의 팔할은 부질 없거나 처음부터 사람의 것이 아닌 것들이다.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옷, 그 좋은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좋은 것으로 굳어 왔거나 알게 모르게

학습되어 온 것들이다. 차도 집도 옷도 처음에는 없어도 상관 없던 것들이다. 두 다리, 두 발이 있었고,

동굴이 있었고, 알몸이였다. 좀 더 빨리 걸을 일과 달릴 일이 생겼을 것이고, 달리는 것도 부족해서

말을 타거나, 차를 타게 되었을 것이다. 점점 더 빨리 시간을 추월 해야 할 무슨 이유들이 그간 생긴 것일까?

원래 알몸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옷을 입지 않고 다니면 경범죄가 된다. 춥지 않아도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면

가볍든지 무겁든지 범죄가 되는 것이다. 알몸이라는 것이 그을음을 긁어낸 쇠의 빛깔처럼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처음에 동굴에 살던 혈거인들을 생각해보면 불을 지피고 불을 지키며 작은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함께 먹고 자고

했을 것인데, 지폈던 불이 가물가물 해지기 시작하면 피를 타고 확 지펴지는 욕망들 또한 벌거벗어 요즘 같으면

신문이나 인터넷에 대서특필 될 근친상간이나 성범죄들이 아무 꺼리낌 없이 일어 났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놓고 피를 흘렸을 것이고, 누이와 동생이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밤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서로 살을 부비면, 부싯돌에 불씨가 일듯, 생명의 씨앗이 생긴다는 것을 지각하기까지도 족히 몇 천 년은 걸렸을 것 같다.

가족간에 그런 관계들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평화가 깨어지고, 유전적으로도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또 몇 천년이 흘렀을 것이다. 그것은 죄로 규정이 되었고, 규정된 죄는 죄책감을 학습 시키고, 그것은 점점 더 의식의

밑바닥에 뿌리를 내려 아예 없던 던 것들이 원래 있던 것으로 점점 더 자리 잡았을 것이다. 숲속에서 열매를 따먹다

가만히 관찰해보니 그 열매를 좀 더 많이 따먹으려면 사람의 식성에 맞는 식물들만 골라 한 자리에서 재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식물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비축이 시작되고, 비축을 하다보니 자손에 대한 의미가

달라졌을 것이다. 피땀 흘려 일한 것을 아무 연고도 없는 자에게 주는 것보다 내 생명의 연장선 같은 자식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여성에게 순결을 요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간

농업에 필요한 강한 노동력 때문에 여성의 지위는 점점 더 낮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해 여성은

자주 임신을 해야 했을 것이고, 잦은 임신은 여성의 사회적인 활동을 제한하고 여성을 무력화 시켰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의지하던 남성성은 어머니를 벗어나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고 나아가 어머니에게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을 것이다. 좀 더

농업에 적합한 유전적인 조건을 가진 자가 더 많이 비축하고 더 많이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가

생겼을 것이고, 가진 것이 있으니까 뺏는자와 뺏기는 자가 생겼을 것이다. 가진 것이 많으니까 지키려고 했을 것이고,

지켜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두려움도 더해졌을 것이다. 신이 필요해졌을 것이다. 농업을 하는 자들에게 태양과 달이

신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신 또한 처음엔 나무로 깍은 바퀴에 지나지 않았던 물건처럼 점점 살이 붙고 광택이나며

진화 했을 것이다. 인구는 점점 불어나서 숲속에 숨어 살며 서로를 자세히 볼 수 없던 사람들이 숲을 베어낸 마을에

모여 사니까 서로를 자세히 보게 되었을 것이다. 자세히 보게 되니 미인과 미남이 보였을 것이고,  자세히 보게 되지

자세히 보여주게 되었을 것이다. 점점 옷이 진화하고, 격식이나 예의가 발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같이 접촉하는 빈도가

많아지니까 마음이나 정서처럼 섬세한 감수성이 발달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너와 나의 구분이 점점 뚜렷해져 갔을 것이다.

농업을 하다보니 기름진 땅이 필요 했을 것이고,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전쟁은 얼핏보기에

서로 잃는 게임 같지만, 전체의 세월을 놓고 보면 문화와 유전자의 합병 같은 것이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모두 죽이는 것 같지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소유하게 되므로해서 둘은 섞이게 되었을 것이다.

 

절에 중들은 원래, 본래의 자신을 찾아 평생을 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한 번의 생으로 중이 될 수도 없다고 한다. 숱한 생의 공부가 업이 되어 쌓이고 또 쌓여야 중이 되고 큰 스님이 된다고 했다. 처음엔 호스만 갖다 대어도 씻겨 내려가던 것들이, 나중엔 수세미를 대고, 쇠수세미를 대고 끌을 갖다대어야 벗겨지는 것처럼 역사와 문화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면 갈수록 무리한 힘이 필요해지는 것 같다. 본성을 찾고 회개를 하라고 교회고 절이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를 에워싼 이모든 문명과 문화의 더께들이 깊은 병처럼 불편하고 숨이 막히는 모양이다. 어떤 스님이 말했다고 한다. "중이 하나면 되지 둘이 무슨 필요인가?" 하나만 있어도 상관 없는 것들을 둘을 가지려고 하니 일해야 되고, 싸워야 되고, 다쳐야 되고, 힘들어야 하는 것 같다. 그 하나로 돌아가는 일이 어느새 몇 생애를 바쳐도 부족한 공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감나무는 약을 치지 않았고, 저렇게 여름내 퉁퉁, 강가에 이일없이 앉아 돌맹이를 던지듯, 부질없는 열매들을 스스로 솎아내고 꼭 필요한 열매들만 가을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정상이였던 것일까? 아니면 약을 치니까 더 독해진 벌레들이 극성을 부려 약발이 아니면 감나무는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일까?  

 

우리집 앞 논을 메워 만든 공터는 주인집 아저씨가 올 봄에 심은 들깻잎으로 출렁이는 저수지 같다. 밤 열시에 일을 마치고 돌아 오면 싱싱한 들깻잎 향기가 피곤하고 지친 내 마음을 쌈 싸먹어버리는 것 같다. 비닐 하우스에서 농부들의 욕심이 잠재우지 않은 깻잎과 달리, 남편이 마땅한 자리에 차를 대는 동안 길가에 웅크리고 앉아 한 잎씩 뚝뚝 따낸 깻잎은 향이 짙고 꽤나 큰 잎들조차 먹어보면 부드럽다.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남편이  차려 놓은 주안상 앞에 앉아 푹 불린 라면을 깻잎에 싸먹었다.  그때, 퉁 투루룽, 감나무가 장난치는 도깨비처럼 땡감 하나를 창고 지붕 위에 던진다. 잠시 눈을 감으면 가물가물 졸리는데, 이 놈아! 정신차리라며, 늘 아무것도 이뤄 놓은 것도 모아 놓은 것도 없어 부족한 것 같던 밥상 머리를 깨운다. 아무것도 이룰 것도 모울 것도 없던 것인데, 무엇이라도 이루고, 모아야 한다고 덕지덕지 앉은 더께들이 자꾸만 가르치는 것이다. 야참을 먹어 배가 부르고, 술을 마셔 취하고, 사람을 비벼 따신 잠을 자면 아무 문제가

없던 것인데, 밤새 감나무는 몇 번이나 나를 두드려 깨웠을 것인데, 나는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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