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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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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088회 작성일 17-09-16 23:58

본문

오늘은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식당에 일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남편이 나를 그 식당 앞에 내려다 주고 갔는데

나는 한참 동안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건너편을 바라 보았다.

그것은 적어도 외출은 아닐 것이다.

가출이거나 탈출이거나,

더 많이 노동하지 않고, 더 많이 시 쓸 수 있는 삶으로의

그러나 그는 내가 울리기에는 너무 착한 남자다.

어제는 스물 몇 살인지, 참 무식한 말로, 대가리 피도 않마른 새끼가,

그러니까 사장 아들이 나를 따라 다니며

이모, 설겆이는 이렇게 하는 것이고, 마무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고,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야이 자슥아! 니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주방에서 설겆이 하고 있었다."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식당일로 골머리 썩히기 싫어 참았다.

미역국집 사장 딸년도 그랬고, 갑자기 식당이라는 장소에 넌더리가 났다.

어디라도 가는 버스를 타기만 하면, 지금의 절반만 일하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치열한 열정속에서 피어난 꽃처럼 위태롭고,

성난 것 같으면서도 떨림이 있고,

그 시를 읽으면 내 얼굴이 벌개지는"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평생을 시를 쓰고 시를 가르친 시인이 만나고 싶다던 그 시를 내가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가출도 출가도 탈출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너무 두렵다면

그를 사랑한다는 말인 것 같다.

식당 사장은 아홉시 반에 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으니까 발발이 전화가 왔다.

바로 그 집에서 몇 발 떨어져 있지 않은 정류장에 앉아서 그 전화가 제풀에 지쳐서

숨이 뚝 떨어지기 전 전화를 받았다.

"죄송해요! 사장님, 제가 위치를 잘 찾지 못해서요. 아! 이제사 보이네요ㅣ"

난 오전 동안, 손님에게 하는 인사 외에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치열한 열정 속에서 핀 꽃처럼 위태롭고,

성난 것 같으면서도 떨림이 있고,

그 시를 읽으면 내 얼굴이 벌개지는, 그런 시 때문이였다.

 

멋 훗날 나는 또 오늘을 후회하리라.

내 스물살, 그 밤처럼, 훌쩍 떠나지 못한 것을,

그러나 후회보다 큰 위안 또한 있으리라

내 스무살, 그 밤 엄마 아빠를 걱정 시키지 않은 것을

내 오십살, 오늘, 이 착한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은 것을

그래도 내 생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시간은 아니었다는

사실로 후회보다 더 큰 위안 받으리라.

그것이 나를 사랑한 당신들을 위해 내가 쓴 시였다고

내 한 생애, 한 구절 문장으로 완성해가야겠다.

헤이즐넛, 너무 흔해빠진, 한 때는 신선했던, 헤이즐넛이여!

 

나는 오늘도 네게로 귀가했다.

사랑, 너에게로.

 

추천0

댓글목록

정석촌님의 댓글

profile_image 정석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詩 가  시작점이라
난  종점이라   
치열하게  왈부왈가  하는데
터미널


詩도  歸家 하고
나는 歸詩 한다

발이  詩에게  달려간다
나는  시를  놓쳤다

석촌

공덕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합니다. 정석촌님! 시가 어디 그 버스 가는데만 있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시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시덥쟎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몰라도 사는 것처럼
시가 무엇인지 몰라도 쓰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가을 바람이 많이 붑니다.
바람 한 점 없어도 떨어지던 나뭇잎들이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따귀를 치는 것 같은 바람에도 끄떡 없습니다.
저도 시를 잔가지처럼 놓아 줄 날도 오겠지요.

귀한 걸음 감사드립니다.

이동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동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두고 두고 남을 시 보다
남편을 향한 님의 마음이 시 입니다
떠나라고 등 떠밀고 싶지만
남편 아플까봐 몇 발자국 못 가서 돌아올 것 같아
지금 그 자리에서 행복하시라고 빌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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