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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 꽃다발을 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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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50회 작성일 17-09-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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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였다.

사람들은 무슨 까닭으로 어떤 의미라도 연관지어 그날 하루 더 쓸쓸해지기로 한 것일까?

온 종일 식당용 싸구려 세제로 범벅이 된, 한우 기름을 뒤집어 쓴 그릇들을 한번 담그기만하고

꺼내어도 세척이 될 만큼 들어부운 구정물에 헤엄을치다 싶이 하며 열 두 시간을 보내고

일당을 받아서 퇴근하는 길, 해마다 기념 되어 왔던 일년 중, 하루, 세상에 떨어진 빗방울 만큼이나

많은 하루들 중 내가 살기 시작했다는 하루를 다른 하루들처럼 그냥 보낸다는 것이 부모가 위독한데

병원에 가보지 않는 일만큼이나 무성의한 일처럼 느껴져서 내가 생일인지도 모르는 친구 한 명을

불러 내었다. 흰 옷을 입혀서 거리에 세워 놓으면 그대로 눈사람 같은 뚱뚱한 친구는, 구정물에

젖은 옷을 입고 한참을 동네의 윗몸 일으키기 하는 운동기구에 앉아 있던 나의 전화를 받고 밤

열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문이 열린 소머리국밥집으로 달려나왔다. 고맙게도 남편은

그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시어머니께서, 그러니까 고맙게도 차려준 생일상의 생선이 형체도

가눌수 없을만큼 철철 내려 앉은 것에 관해 내가 무심코 한 말 "한마리라도 멀쩡한 걸 해주시지"

이 싸가지 없다고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래, 고맙다고 생각하며, 그 늦은 시간에 영문도 묻지 않고

달려와 준 친구와 소주를 마셨다. 미리 말하면 오는 도중 빈 손이 부담스러워질까봐 뭔 일인가

그녀가 묻길래 사실은 생일이라서 세상 누구보다 니가 축하 해주면 내가 태어난 김에 살아도

될 사람으로 느껴질 것 같아서"라고 말을 했다. 사람들은 삶을 유의미한 것으로 엮어 나가기 위해

무슨 의미라도 끌어다 붙여서 시간과 의미를 꼬아나가지만, 이것이야 말로 또 다른 무의미의 창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으니까 상대적 빈곤 같은, 더 한층 불공편한 무의미와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억지로 의미를 짜내듯, 며느리의 생일날 콩나물과 부추를 주물럭거렸을 시어머니께 고마웠지만

결국, 그녀의 딸과 사위의 상에서는 구경해본 적 없었던 머리 떨어지고, 살점이 찢어진, 그래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에 무시당한 느낌이 드는 어쩔 수 없는 나는 속물인 것이다. 마지못한 정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 밥상에 관해 고마워하는 마음보다 일년 동안 며느리가 몸이라도 멀쩡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읽을 수 없는

망가진 생선에 대한 서운함이 더 큰, 길거리에 천막집을 짓고 나 앉았던 가난 속에서도 딸 생일날 생선만큼은

비싼 것 아니라도 몸 성한 것을 올렸던 친정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큰, 나는 싸가지 없는 속물인 것이다.

새벽 세시가 넘도록 그녀를 끌고 다니며 어디로든지 떠나는 차를 타야 한다고, 그녀가 바래다 주어야 한다고

떼를 썼다. 열 두시가 넘어 심야 버스가 끊겼으니 새벽 첫차를 탈 때까지 나와 함께 있어 주어야한다고 우기다

결국은 술이 너무 취해 아이들 집으로 가서 잤다. 서울에 있는 지인들에게도 내가 오늘 서울가는 버스를 탄다고

카톡을 보내놓고, 서울이나 뉴욕이나 이 세상 어디라도 상관 없는 잠을 잤다.

 

뒷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해장국을 먹자고,

난 서부 시장 골목에 있는 수제비 집으로 가자고 했다.

어제 밤새, 하루 번 일당을 다 쓰버리고 지갑에 몇 푼이 남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사천원 밖에 하지 않는 그 집의 수제비와 칼국수 맛은 정말 특별했다.

생일이 하루 지난 것이다. 크리스마스에도 이브가 있고 당일이 있듯이

생일 하루 뒷날도 일평생 나를 길들인 의미는 나에게 희미한 아쉬움 같은 것을

남기고 있었다. 가끔 내가 사는 도시의 관광 명소 같은 곳을 새삼스럽게 돌아보면

우리가 참 먼 곳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곧 있을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로 들뜬 남강과 촉석루를,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처럼 한바퀴 빙 돌며

해마다 똑 같은 원리로 만든 등이, 스토리 하나씩을 더 켜고 늘어나는 것 이외에

아무 다를 것도 없는 축제라 싶으면서도 괜시리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정말 내가

열살도 채 되지 전의 개천 예술제는 진정한 축제였다. 이렇게 구획화 되고 반듯하게

정리 되어 있지 않은, 일년 중 몇일 맘 먹고 노란 고무줄이 터져버린 소독저 다발 같은

자유분방이 그 때는 있었다. 거리의 약장수는 구충약을 팔려고, 길거리 가는, 꽤쬐쬐한

아무 오래 벌레에게 파먹혀 온듯한 아이 하나를 불러서 물과 알약을 먹이고, 그 아이는

얼마간 그 자리에 있다가, 그 자리에서 똥을 쌌다. 그러면 거시, 라고 부르던 파절이의

채쳐놓은 파 같은 덩어리들이 살아서 꿈틀대었다. 그 옆에서 원숭이는 목에 묶인 줄을

잊은듯 그 광경을 에워싼 시민들에게 달려들기도 하고, 시민들이 던져주는 음식들을 받아

먹기도 했다. 그기서 차도와 인도를 가득메운 사람들에게 떠밀려서가면, 검은 썬그라스를

낀 봉사 아저씨가 동전 바구니를 놓고 연주하는 기타 소리와 영원불변의 코드처럼 감정 없이

부르는 트롯트를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추석을 전후한 그 시점에는 비가 내린 적이 많았는데

또 한참을 사람의 물결에 떠밀리다보면 커다란 서커스 천막이 있고, 코끼리가 질퍽거리는

진흙을 꼬리로 튀기며 비를 맞고 서 있기도 했다. 밤이 늦으면 야바위꾼들이 모이는

천막들이 사람에게 떠내려 갈듯 흥청거리고, 통마리 돼지들이 바베큐 기계에 매달려

태양 앞의 지구처럼 기름을 뚝뚝 떨구며 기름지게 익어가고, 소주를 많이 탄 동동주에

취한 사람들이 난동을 피우기도 하고, 예술이 예술 회관에서 공연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거리 난전에서 공연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왜 그럴까? 개천 예술제의

예술은 그 밀고 밀리던 사람들의 파도를 떠나 공연장으로 들어가고, 틀에 박힌

유등들은 틀에 박힌 스마트폰 사진속으로 스며들 뿐이고, 코끼리도 서커스단도 사라지고,

돈이 없으면, 축제의 불꽃들이 흘러가는 남강가를 술에 취해 배회 할 수 조차 없다.

시민들의 문화 축제가 다른 예술 공연들처럼 돈이 없으면 볼 수 없는 축제가 된 것이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촉석루를 한바퀴 돌고, 오후 1시에 일을 가는 그녀를 바래다 주러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고 있는데, 왠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불렀다.

예?

"아가씨, 나 돈 천원만 주시유! 배가 너무 고파서"

딱 봐도 아가씨가 아닌 우리 두 사람을 아가씨라 부르며 불러 세우는 것이 왠지 상습적인

냄새를 풍겼다. 친구가 내 옆구리를 쳤지만, 내 상습적인 의심을 탓하며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내 지갑도 그 할머니의 배만큼이나 홀쪽했다.

천원을 드리려다, 그 곁의 만원짜리를 만지작거리다 다시 천원을, 그러니까 이천원을 드렸다.

천원이면 빵을 살테고, 또 천원은 우유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를 바래다 주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시월을 바라보는 가을 바람 사이를 도로처럼 달리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꽃집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십번째 나의 생일을 스스로 축하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오십번째 생일까지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준 것을 축하 해주고 싶었다. 화분의 꽃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유배 생활을 잘들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화분은 고도절해의 섬 같다. 한 흙을 이불처럼 덮고, 한 흙에 찌개 냄비처럼 숟가락

담그며 살아야 할 식물들이 발밑의 흙만 파먹으며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안스러워보인다. 화분을 사려다가

그런 식물들의 고독을 즐긴다는 것이 악취미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친구인 사람들처럼

우리는 자연에 대해 일방적이고 얄밉게 구는 것 같다. 장미는 한 가지에 사천오백원, 한 송이 이천원을 넘었다.

먹지도 못하는 장미에 만원을 쓸 수 있으면서, 배가 고프다는 할머니에게 선뜻 주지 못한 만원이 민망했다.

남이 배가 고파 죽어가는 것에 관해 의심만 하면서, 내가 오십년 살았다고 기특하다고, 대견하다고

몇일만 지나면 쓰레기가 될 꽃값을 지불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게다가 시어머니가 차려 준 생일상에

생선이 척키 인형처럼 머리와 몸통이 서로 어색하다고  불평했지 않았던가? 나는 나에게 꽃다발을 줄 수 없었다.

오십년 동안 헛살아 왔던 것 같았다. 왜 나는 배고픈 할머니에게 만원도 줄 수 없는 오십년을 살고 말았던가?

 

내년 생일에는 나에게 꽃다발을 받을 수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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