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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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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4회 작성일 17-09-27 00:46

본문

아침에 청소 업체에서 운행하는 봉고버스를 타고 통영에 갔다.

내 들뜬 바램대로 그 신축 아파트는 거실에서도 바다가 보였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어 바닥만 보다 왔다.

이십이층 꼭대기에서 앉은 걸음으로 계단을 한 칸 한 칸 닦으면서

지하 이층까지, 두 동을 닦았다.

난 아무래도 바다에 관한 시보다 바닥에 관한 시를 쓰는 것이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끌을 쥐고 바닥에 튀인 페인트 방울이나 이물질들을 긁어내고

수세미로 문질러서 걸레로 닦았다.

밑바닥은 더 떨어질데가 없어서 외려 안전하다.

그러다 점심을 먹고 다시 우리 도시에 있는 공사 현장으로 차를 달려 와서

시멘트가 덕지덕지 말라 붙어 있는 창틀에서 시멘트와 흙가루들을

페인트 붓으로 쓸어 내는 일을 했다. 사다리에 서서 열심히 창틀을 닦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외줄 그네를 타고 내려와 창을 가렸다.

"이래 놀고 있지말고, 하다못해 노가다라도 가라"

군대 제대한 이후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않고 있는 아들에게

눈만 마주치면 했던 말이 쏙 기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난 아들에게 불을 끄고 붓글씨를 쓰게 하는 위대한 어머니가 못된다.

차라리 내가 벌어서 먹여 살리면살렸지 아들에게 외줄 그네를 타게 할

강심장을 가지지 못했다. 종일 발암물질이 있다는 흙먼지를 둘러 마시고

집에 돌아오니, 갑자기 내일은 뜰거라는 내일의 해가 무서워졌다.

학교 다닐 때 철 없어서 공부 못한 죄가 이렇게도 크서

나는 오십이 넘어도 토끼뜀을 뛰며 살고 있는 것일까?

청소 업체 사장 마누라도 내가 하는 것이 영 시원챦아 보이는지

"일을 못할 것 같으면, 지금 판단을 해요."

 

이젠 술을 마시지 않은 뒷날도 숙취 우울증과 맞먹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잠이 오지 않는다.

시인님의 시창작강의도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 같다.

시도 쓰고 싶지 않다.

아무 것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내일 새벽에 일하러 가기 싫을까봐 일부러 일기를 쓰려고

전기 장판에서 등을 떼었다.

그래도 일찍 마치지 않는가?

아직 해가 남아 있을 때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익숙해지면 나아질 것이다.

십년 넘게 이 일을 했다는 베트남 여자도 그러지 않는가?

일을 하는 곳에서 바다를 볼 수 있지 않았던가?

내 평생에 주어진 시제가 사는 밑바닥이라면

더 악착을 떨며 들여다보자. 분명 그기에 시가 있을 것이다.

그 바닥에 눈물과 맛이 비슷한 액체가 가득차면 바다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식당 구정물통은 종일 안고 다니지는 않았는데

이 놈의 걸레 구정물통은 22층에서 1층까지 계단 한 칸 내려서면

들고 내려서야 한다. 냄새나는 농부의 낡은 가죽신발도

고호가 그려서 예술이 되지 않던가? 괜찬다. 이 구정물과 한발짝도

떨어지지 못하는 나의 삶도 시라는 캔버스 위에서는, 찌그러지고

짜부라질수록 더 멋이 나는 미학이 되는 것이다.  구정물 바께스를 들고

걸레와 끌과 수세미를 들고, 마스크를 끼고, 청소부들이 입는 노란 조끼를

입고, 넌 지금 이 그림의 모델이지 않는가?

일찍 마치면 시를 쓸 수 있다.

시를 쓰지 않을거라고, 그런것 쓰서 뭐하겠냐고 생각할 때

이렇게 계속 살아서 뭐에 쓸까 생각들지 않았던가?

 

백층도 있다는데 이십이층이어서 다행이지 않은가?

그 말라깽이 베트남 아이들도 해내는 일이 아닌가?

 

 

아주 오래전에 쓴 시인지 산문인지 모를 글을 하나 찾았다.

그 땐 참 기운이 넘쳤나보다.

다시, 그래보자.

 

 

 

누군가 비유하기를 시인은 탄광의 유독을 감지하기위해
갱도로 날려 보내는 카나리아라 했다.
 
시인은 카나리아가 아니다
생이 유독한것을 테스트하는 카나리아가 아니다
시인은 광부다
시인이 작은 유독함에도 목을 꺽고 죽는건 직무유기다
시인은 죽어도 살아 남아서 노래해야  하는 자이다
탄광이건 하수구이건 사막이건
박쥐로건 전갈이건 지렁이건
어떻게든 살아 남아서
그럼에도 삶은 살만한것이라고 노래  해야는 자이다
삶은 시적인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인이 필요하다
독을 발견하기 위해 죽어가는 카나리아가 아니라
독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는 시인이 필요하다
더우기 아름답게 존재하는,
존재를 아름답게 해독(解毒,督)하는,
답안 없는 생을, 끝없는 갱도같은 삶을 견디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자이다
유독에 달련되지 못한 자는 새일뿐 시인이 아니다
천상이 아닌 이 지상 아니 지하, 이 행성의 실체속에서
발효하는 독성을 뛰어 넘지 못하는 자는
주검일뿐 시인이 아니다.
살아라 어떻게든 살아 남아라
영원히 살아 남아라
이미 우리는 갱도속에 던져졌다
시험할 수 있는 유독성은 이미 독이 아니다
죽음은 죽음일뿐 죽음으로 증명할수 있는
나는 없다.
독은 만연하고 팽배하며 존재의 대부분이다
시인은 카나리아가 아니라 광부다
암흑속에서 독속에서 죽음속에서
캐어내는 자이다.
삶의 불과 빛과 힘을 캐어 내는 자이다
카나리아는 겸허하게 날개를 하늘에 반납하고
곡괭이와 칼과 해드 라이트를 지녀야한다.
시인이 지하에서 캐어 낸것으로
지상의 사람들이 그들의 독을 견디며 사는것이다
시인이여 강건하라 시인이여 질기고 무던하라
시인이여 더이상 카나리아로 죽지마라
무너진 탄도에서 제 오줌을 걸러 먹고서라도
살아 남아 삶을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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