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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천지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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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18회 작성일 17-10-01 10:16

본문

아침에 일어나서 종일 세수를 하지 않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백수도 혼자보다 둘이 낫다.

종일 우리 두 사람의 공통 관심사는 새끼가 세 마리나 배에 달라붙어

젖을 뜯기고 있는 난(못난이)이다. 나는 엊그제 삼천포 회 시장에서 얻어 온

장어를, 상한 줄도 모르고 커다란 냄비에 한 냄비 삶다가 온 집을

홍어 삭히는 창고로 만들고, 그는 온 집안의 음식물 쓰레기들을 다 얻어 온다.

우리의 인기척을 들으면 새끼들이 어미의 배에서 떨어져 어느 구석으론가 뿔뿔이

흩어질까봐 두 사람 사이에 공통으로 사라진 것은 발소리다.

새끼들이 모두 도망치고 어미 혼자 길게 누운 모습을 보면 풍지박산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미는 그대로 초가집이고, 초가 지붕 같고

고양이 새끼들은 조랑조랑한 흥부네 아이들 같고 그 집 지붕의

박새끼들 같다. 가끔 녀석들의 출생과 무슨 연관이 있기라도 한듯

감나무 가지에서 망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노랑이가 내려와

밥을 먹고, 다시 감나무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가을은 먼곳에서

시를 짓지 않고 우리집 마당에서 자꾸 떨어져 더러워서 피하는

똥처럼 변한 홍시와 햇살을 받으며 젖을 먹이고 있는 고양이 일가를

고심한 문장처럼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약을 치지 않아 뽀드락지가

덕지덕지 앉은 홍시를 하나씩 갈라먹어보면 꽤나 입가심이 되어

나무가 말하지 않아도 후식을 내주는 잘하는 서빙 아줌마 같다.

 

시를 몇 편 썼다.

그러나 아직 어둠 속에 숨겨두고 싶은 새끼들 같다.

잠깐 볕을 보였다 다시 지붕과 천정 사이에 물어다 놓았다.

 

추석까지는 그냥 대책 없자.

내 몸에는 알콜만큼이나 일이 중독 되어 있다.

너무 취한 뒷날 이놈의 술, 내가 다시 마시면 사람이 아니지 하다가도

몇일 마시지 않으면 누가 접시에 담아 놓은 포도만 보아도 슬슬 취기가 돌아

퇴근길엔 검은 봉지를 들고 오는 것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저 빌어먹을 구정물통에 다시 손 담그나봐라 하지만

일이 끊기면 술이 끊긴 것처럼 손끝이 덜덜 떨린다.

그래도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빽으로 삼는다.

구미에 있다는 오빠의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어 학원 강사를 하던 그녀는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 인데다

코끼리처럼 몸이 부하고, 상아 뽑힌 코끼리처럼 몸이 자주 아파서

요즘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이전에는 오빠가 약값과 주사값과 병원비들을 도와 주곤 했는데

오빠 조차 한 두 달 회사 월급을 받지 못한 상태라 대책이 없는 모양이였다.

사실은 짜증이 확 밀려왔다.

이제 중학생인 쌍둥이 조카들은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제 학비를 벌고 있고

엄마는 겨울 내도록 난방을 하지 않고 겨울을 보냈다.

왜 사람이 엮여도 숨 쉴 바늘끝 같은 틈도 없는 위인이 제 몸하나도

성치 못한 사람과 엮여서 저러나,  속물을 드러내었다.

살고 있는 원룸에 백만원 보증금이 걸려 있는데 주인이 오십만원을

더 올려주라고 한다고 나에게 이십만원만 꾸어 달라고 했다.

나 조차도 대목밑에 거의 빈둥거리고 있어 돈 냄새 맡은지 오래다.

다 대목밑에 밑이 탈 것인데 어디다 돈 이야기를 하나, 스마트 폰의

번호들을 쭈루룩 내리고 올리고 해보다 그냥 문자를 보냈다.

미안하다고, 너무 너무....

그리고 팔은 안으로 굽어 머저리 등신 오빠 생각을 했다.

분명 제 코가 석자인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저 달콤한 서울말씨의 징징거림 앞에서 담배 몇 개피는 태웠을 것이다.

철천지 원수라더니, 저 놈의 철천지 사랑은 이제 식을 때도 되었는데

저 병신 같은 순정은 핏줄에 씌고난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집세 올려 줄 걱정은 없쟎은가?

친구네 올케가 하는 참기름 집에서 참깨, 들깨 셑트로 포장된 선물들도 사두었고,

저 꼼꼼스런 양반이 추석 보낼 돈은 알뜰살뜰 구겨 두었을테다.

엊그제 쭈그리고 앉아 아파트 계단 닦은 돈을 받으면

아들과 삼천포 드라이브 하느라 친구에게 꾸었던 돈은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내게는 대책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오빠는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허다한 사람들이 돈 때문에 이혼을 하고

돈 때문에 배우자를 죽이고

돈 때문에 부모도 죽이는 세상에

제 살이라도 뜯어먹여야 근근이 목숨부지 하는 병든 여자를

십년이 훨씬 넘도록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참 좋은 사람이지 않은가?

그녀 또한 오빠의 담배를 태우며 살아 있어서

오빠의 사랑이 되어 주어 고마움이 그지없지 않은가?

예견치 못하게 깜빡 졸도를 하고 해서

버스를 타지 못한다는 그녀가 용케도

살아 있어서 내 오빠가 안심이지 않은가?

 

시인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은유를 목숨처럼 여기는 시가 시인 조건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이젠 숨겨서 말하지 않아도 목 날아가지 않는다.

화끈하게 말하고,

신이, 생이 사람들에게 은유해놓은 의미들을 발견하는 것이

시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무식한 식당 아줌마가 뭘 안다고 하실 분은 아니지만

괜히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체 한 것 같아 맘에 걸린다.

그러니까 안도현 식으로 말하자면

연탄 발로 차지 마라

연탄 뒤에 생이 숨겨놓은 뜨거움을 발견해라

 

은유의 장르에서 발견의 장르로 시가 적자생존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무식해서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듣게 하라는 것이다.

 

말씀으로 지으신 이 세상은 신의 시다.

우리가 더 쓸 것은 없다.

그가 쓴 시를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은유의 미로를 벗어 던지고

신이 만든 은유의 미로에서 빛을 캐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눈물은 왜 짠가 같은 시는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만든 눈물이 왜 짠지 눈물의 은유를 발히는 것이다.

 

사랑이란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근사한 사람과 엮이는 줄거리가 아니다.

병들고, 전 재산이 백만원 뿐인 여자와 엮이고 계속 엮어가는 줄거리다.

그래서 사랑이다.

신은 시꺼먼 연탄속에 불꽃을 숨겨 두셨듯

저 찌질한 등신들에게 사랑을 숨겨둔 것이다.

그것을 읽기 위해

고양이 밥도 동냥해야하는 내가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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