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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와 내가 바라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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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1회 작성일 17-10-02 13:55

본문

우리집 난이는 신석정 시인과 바다를 바라보던 그 난이가 아니다.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도 모르는 난이는

내가 평생 본 고양이 중에서 가장 못생겨서

이미 우리집 마당에 살던 노랑이가 먹던 밥 그릇에

머리를 담그고 있는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마자

못난이라는 이름이 떠올라, 차마 못난이라 부르지 못하고 난이라

부르기 시작한 고양이다. 어쨌거나 녀석도 난이고,

난이는 신석정과 바다를 바라보던 난이처럼 작은 짐승이기도 하다.

우리집에서 벌써 두 달이 넘도록 밥을 먹고 있지만

내게는 밥 티끌 하나도 고스란히 살이 되어 붙는 살이

못난이 난이에게는 한 점도 불지 않았다. 얼마나 난이가 엉큼한지

그 작은 몸에 축축 늘어진 광목 자락 같은 살이

먹어도 먹어도 뜯겨져 가는 곳을 두 달이나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오른 쪽 눈과 왼 쪽 눈 색깔이 다른, 콩 시루떡 빛깔의 새끼 한마리와

석양이 물든 저녁을 그린던 파렛트처럼 검정과 오렌지빛과 흰빛이

뒤섞인 꼭 지 닮은 새끼 한마리와 이 녀석보다는 좀 덜 늦은 오후를

그리던 파렛트 같은 좀 더 밟은 빛깔의 누더기가 털인 새끼랑

난이의 새끼들은 그나마 난이가 아니다.

난이가 그러하듯, 나 또한 시인 신석정도, 시인도 아니고

난이와 내가 햇볕 든 댓돌 위에 앉아 바라 볼 수 있는 곳 또한 바다가 아니다.

두어 달 내가 주는 밥에 길들여져

내 무료한 손길에 조심스럽게 목덜미를 내주는 난이도

여러 날 일이 없어 추석을 지나면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인 나도 작은 짐승이긴 하지만

난이와 나의 몸에선 한쪽으로 엎드린 게으런 짐승의

온기가 지린 분비물 냄새가 난다.

난이와 나보더 더 작고 여린 짐승 세마리는 그래도 내가

커다란 짐승으로 보이는지 내가 있으면 어미 곁에 모이지 않는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 산으로 떠나고

한 집안에 병신 하나는 만들어 낸다는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 마당에 남아서

나는 떨어진 홍시를 주워 먹고

난이는 홍시가 떨어져 터지는 밥그릇에서

상한 생선살을 발라 먹는다.

나도 희망을 찾지 않고

희망도 나를 찾지 않고

그런다고 다른 망상도 생기지 않고

어둡게 겹쳐진 산과 산 사이로 맥없이

태양은 떨어져 우리의 잠은 홍시속살처럼

어둠속에서 질퍽거린다.

꿈은 그냥 그자리에 주저앉지

다 터진 태양을 내일의 하늘에 걸거라고

나의 잠을 깨우지 않는다.

난 그저 난이에게 더 오래 밥을 먹여서

난이가 내 겨드랑이에 팔베개도 하고

발정이 나면 내 걷어가는 다리를 빙빙 돌며 몸을 비비고

정전기 오른 털을 싹싹 핥으며

고맙다고 날아가던 참새 새끼라도 한 마리

내 잠든 머리맡에 물어다 놓기를 바랄 뿐이다.

밉상이라고 하면 명이 길어진다고,

차에 치이거나

풀약을 먹거나,

무단이 죽어간 고양이들에게

박복한 내 사랑이 쥐약이였나 싶어

몇일이나 침처럼 고인 이름을 두고도 부르지 않았다.

이제 못난아, 너를 난이라 명명하니

아무 예쁜데도 없는 말라깽이 들풀들처럼

오래 오래 오래만 살아라.

지난 사월에 잠결에 품고 자던 메롱고가

담너머 공터의 흙을 덮고 자는 것을 보고

내가 녀석의 이름 지었음을 후회 했다.

도끼로 발등을 찧고 싶었던게 아니라

그 이름을 굴리던 혓등을 찧고 싶었다.

사람은 왜 꿈을 꿈이라 부르는 것일까?

자신이 만든 꿈을 꾸는 사람은 없다.

어젯밤 나는 결혼을 할 것이라고 엄마가

두 벌이나 사주는 한 복을 입어보는 꿈을 꾸다 깨었다.

빨간 색동이 소매 끝에 들어간 화려한 한복이였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난 나는 결혼하는 꿈을 꾸면

죽는다는 말을 떠올리고,

다시 잠이 들면 수의처럼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 입장을 하게 될 것 같아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마시며 잠을 쫓았다.

아니 꿈을 쫓았다.

사람의 의지로 꿈을 디자인 할 수도 재단 할 수도 없어

내가 살고 싶은 나를 그리는 일을 꿈이라고 부르나보다.

결국 내가 꾸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꿈을 꿈이라 부르나보다.

깨고 나서 먹기 직전이었던, 핏기가 군침처럼 고여가는 스테이크를 먹지 못했다고

그렇게 억울할 것도 없고,

누가 내 뺨을 때렸다고 꿈을 깨고 꿈 속의 사람에게 고소 할 일도 없는

수면 속의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이루어도 깨져도 부질 없는 것이 꿈이여야 한다고

꿈을 꿈이라 부르나보다.

내 잠은 아직 꽁깍지를 부풀리는 강남콩 같은 꿈이 들어 있었음 좋겠다.

죽기 싫다는 말은 아래 위 달라붙은 빈 콩깍지가 되지 싫다는 말이다.

약을 치지 않아 병든 감나무 밖에 없는 마당에

새끼들의 침이 동그랗게 말라 붙은 젖꼭지를 햇볕에 말리는 난이와

신석정도 시인도 아닌 내가 오래 앉아

썰물이 돌아오지 않는 바다를 잊어가는 것이 꿈이라는 말이다.

내일을 위해 꿈을 꾸지 않고

가장 아픈 어느 순간,

절벽에서 툭 떨어지는 순간 깨어나는

허술한 꿈을 꾸고 싶다는 말이 살고 싶다는 말인 것 같다.

하얀 웨딩드레스로 갈아 입기 전에

깨어서 다행인 꿈을 나는 계속 꾸고 싶다.

난이와 함께 내 꿈속을 관람하고 싶다.

팝콘과 코카콜라를 가슴에 꼭 안듯 밥그릇과 새끼들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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