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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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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0회 작성일 17-10-0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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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 예술제 야시장 천막이 어제와 오늘, 나의 일자리다. 
아직 대목밑이라 그런지 한산한 야시장에 느닷없는 비까지 내려 개천예술제를 한다고 진주 하늘에 쏘아 올리는 폭죽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예술 회관 밑, 실크 박람회장과 품바 공연장이 있는 먹자 골목에 내가 일하는 참치집이 있다.
물을 받고, 쌀을 씻으려고 공동 화장실 옆에 있는 공동 수도 시설을 찾아 갔더니, 그 앞에 간이로 설치한 벽에
진주 화요 문학회와 여수 화요 문학회 회원인지 시인인지 모를 작가들의 시화들이 마른 꽃과 함께 걸려 있었다.
바께스에 물이 받힐 동안 한 편의 시를 읽다가, 그냥 바께스에 받히는 물을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발길을 돌렸다.
시 창작에 대한 어떤 강의를 들어도, 어떤 초보자들에게 하는 강연에서도 빠지지 않는 주문이 낯설게 하기라고 하는데
모두 낯익게 하기로 잘못 알아 들은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 추석, 가을, 낙엽, 코스코스, 보름달, 가을 하늘, 노을, 별빛,
낯익은 단어와 의식으로 짠 뜨개 옷 같은, 손님의 주문을 받고 계산서에 메뉴와 주류의 숫자를 바를 정자로 표시하며
밥을 퍼고, 국을 퍼면 고막이 떨려 귓밥이 떨어질만큼 크게 들리는 품바들의 트로트 가사가 오히려 시가 시에게 하는
주문을 잘 알아 듣는듯하다. 능수 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아주까리 등잔불 밑에서 귀밑머리 쓰다듬으며 하는 맹세
가 그 시화전에 걸린 문장들보다 훨씬 참신하다는 생각을 감히 했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가을을 가을이라고
말 할 것 같으면 시를 쓸 이유가 이미 없다는 것을, 몇 백원짜리 칫솔을 팔거라고 남녀상렬지사를 들먹이고, 아랫도리
털에 이 생긴 이야기까지 하는 빨간코 연지 곤지 찍은 저 품바들이 이미 시에 먼저 도달해 있다는 것을, 제법 알려진
지방 문화 축제에 시 한 편 걸어 둘 명함을 가진 사람들이 왜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일류 문예지와 신문 공모전에 낼
시와 원고료 몇 푼 주지 않는 예술제 시화전 시는 원래 행색이 다른 것일까? 트롯트 가사 보다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버젓이 발표하면서 걸핏하면 동백 아가씨, 녹슨 기찻길을 통속의 대명사인것처럼 무시하고 홀대하는 것인가? 중국이 점령하면
중국의 음악을, 일본이 점령하 엔카를, 미국이 점령하면 팝송을, 서구 열강이 점령하면 클래식을 흥얼거려야 뭔가 좀 행세를
하는것처럼 보고 보이는 사대주의가 시정신에도 뼛속에 스며들어 그들은 대중 다수의 공감을 우습게 여긴다.
그러면서 대중 다수의 공감을 뛰어넘고, 이끌고 갈 아무런 인식과 사고의 새로움이나 신선함도 내놓지 않는다.
한마디로 딱 집어 말하자면, 고민이 없거나,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나처럼 벌어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쓰는 시어나 문장이나 대상을 바라보고인식하는눈이 구제 옷가게의 옷처럼 누군가
입고 걸치고, 누군가의 영혼이 두르다 버린 스카프나 블라우스는 아닌지, 돈이 많아서 남 있던 옷 입으라 하면
더럽다, 지저분하다 하면서 시인이라는 사람이 남이 쓰던 언어나 인식은 어떻게 그렇게 남의 체액과 분비물이
떡이진 것들을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가을에 대해서 쓰라는 것이지 가을이라고 쓰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어
무엇이나 시가 아니라고 믿는 나는 그 시화들이 걸린 벽 너머에서 쌀을 씻고, 삼류 트로트 가수도 되지 못한
품바들이 부르는 안동역에서를 하루에도 열두번 넘게 헤매여야하고
아예 화요일인지 목요일인지 하는 그 문학회에는 아무 시인도 다녀가지 않은 것 같은 시들을 
제목밑에 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가을을 가을이라고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무식해서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낙엽 몇 장과 빈가지 몇 개, 달, 송편, 코스모스, 홍시 같은 소품들만 있으면
시집 천권이라도 이내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들은 시인인 모양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시인은 시를 고민하는 사람이고 시가 고민인 사람이고, 고민이라곤 시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절대로 고민을 하면 나올 수 없는 위대한 시들을 나는 오늘 읽은 것 같다.
먹고 사는 일을 고민하고, 먹고 사는 일이 고민이고, 시 빼고는 다 고민인 나 조차도
영혼이라는 단어를 쓸 때, 더우기 그것을 시어로 쓸 때 차라리 그 칸을 비울 때가 많다.
시를 쓴다면서 감히 내가 그 무게를 알 수 없는 다이아를 함부로 꺼내서 빛을 소모해도 되는 것인지,
누구이건, 그런 빛을 원할 때 쌀자루에 쌀알처럼 꺼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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