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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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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32회 작성일 17-10-16 08:23

본문

해고 예고 수당 신고를 취소해 주었다.

노동청에서 전화가 갔던지 사장으로부터 여러통의 전화가 왔기 때문이고,

내가 무엇하나 끈덕지게, 독하게 끝장을 보는 야무진데가 없는

바보이기 때문이고,

내가 일하지도 않는 뼈 아픈 돈을 벌금으로 받는 것이 께름칙 했기 때문이다.

그 돈을 받아서 아직 돌려주지 않은 유니폼과 함께 돌려줄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분명 돈을 보면 욕심이 생길 것 같아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취소 시키고 보니

정말 바보가 된 것 같고, 내가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장이 비웃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처음부터 미안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안해 하라고 신고 했던 것이

아니였던가? 그리고 미안해하라고 만든 법의 장치인 것 같기도 하다.

삼성이나 현대도 아닌,

사장이 나처럼 뜨거운 불앞에서 휴일도 없이

뛰어다녀야 밥 벌어먹는 작은 식당 사장에게

땀에 절은 돈 받아내어서 무엇 할 것인가?

 

새로 취직한 곳은 콩나물 국밥집이다.

사람들이 악보에 그려진 음표를 콩나물, 콩나물 그러는데

뚝배기에 한 주먹의 밥과, 한 주먹의 콩나물을 셋팅 할 때면

정말 축 삶은 음표 한 주먹씩을 쥐었다 놓는 기분이 든다.

3800원짜리,

그야말로 배가 고파서 먹는 국밥을 만들게 되어

내 인생에 감사한다.

열 두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마음을 놓고 앉을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금요일마다 목욕도 할 수 있는 큰 고무통

열 두개를 놓고 깍둑으로 썰은 무우를 채우고,

양념을 치대어, 담아야 하는, 들어간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아침마다 콩나물 국밥만 먹어야하는 식당이지만

십분마다 옛날식 텔레비젼만한 큰 육수통을 채우고 들어야 하지만

어쩐지 그 육수통은 탬버린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어제는 같이 연화도로 가기로 했던 친구들이 왔다.

비가 내려서 배를 타지 못하고 산청쪽으로 놀러 갔다.

친구들은 내가 뼈빠지게 고생을 해도 늘 거지처럼 사는 것이

못마땅한지,  계속해서 남편과 헤어지라고, 왜 그렇게

병신처럼 사느냐고 몰아 붙였다.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것은 잘 알지만 나는 너무 속상해서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처럼 함께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만 마음 독하게 먹으면, 아이들 각자 취직했겠다

내가 그렇게 고생 고생하며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 친구들이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였다.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친구들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뭐가 좋은 사람이냐고

나랑 같이 울면서 나를 나무랬다.

 

남사의 오래 된 가옥에서 족욕을 했다.

뜨거운 물을 가득 받고, 약초물을 넣은 항아리에

발을 푹 담그고, 주인이 주는 홍시와 당귀차를 마시며

흘러 나오는 음악에 귀도 푹 담궜다. 하루 종일

손에서 잠시 놓은 쟁기처럼 바닥에서 뗄 시간 없는

가엾은 발이, 욕조에 담긴 몸처럼 호사를 누렸다.

학교 다닐 때의 추억들을 주고 받으며 네명의

여자들이 각자의 삶의 하중을 내려 놓고 오랫만에

발을 섬기는 시간 이였다. 그래 늘 생각하지만

행복이란 티 스푼 끝으로 조금만 넣어도 인생은

필요한 맛이 나는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주인이

정성스럽게 심어놓은 맨드라미가 각혈처럼

붉은 마당에, 약을 치지 않았다는 감과 홍시의 무게로

폭삭 주저 앉을 것 같은 감나무들, 집안의 물건들이

빠짐없이 입고 있던 레이스 뜨개처럼 눈에 보이는

벽이라는 벽은 죄다 걸쳐 입고 서 있는 담쟁이들,

비는 내리고, 다음에 남편과 함께 와야지 생각하고 있는

내 마음이 들렸던지, 친구가 또, 일부러 더 나즈막하게

소리를 낮춰 남편과 헤어지는 일을 깊이 한 번

생각 해보라며 다짐하듯이 다시 걱정을 건내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딱 한 번 내가 먼저 사람을 버린 적이 있었다.

아이들의 아빠였다.

그가 올 해 죽었다. 암이였다.

교회에 나가서 그를 살려 달라고 옷 소매가 다젖도록

울면서 기도 했지만 그는 죽었다.

내가 그를 죽인 것 같았다.

그의 장례식장에도 갈 수 없었다.

 

내가 버리는 것보다 내가 버려지는 것이 나는 편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과 살고 살지 않는 판단 기준에

돈을 넣는 것은 남들의 가치 기준에 내가 지는 것 같아

기분 나쁘기도 하다. 이런 저런 것 다 두고라도

그는 나에게 너무나 좋은 사람이다.

친구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염색하지 않은 나의 흰머리,

초라한 행색,

늘 돈이 없어서 쩔쩔매는 모습,

시간이 없어서 바쁘게 허덕이는 목소리,

 

친구들아, 나 괜찮다.

가끔씩만 행복하면 되는거라고, 나는 지례 생각한다.

그런데 바보처럼 친구들 앞에서 왜 그렇게

울고 말았던 것일까?

내가 빵집에 취직을 하면 빵을 사러 빵집을 찾아오고

내가 횟집에 취직을 하면 회를 먹으러 횟집을

내가 야쿠르트를 하면 야쿠르트를 사러 거제에서 창원에서

사천에서 와 주던,

내가 챙길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우리 엄마에게 까지 내가 내지도 않는 계금으로

이십만원을 용돈으로 드리는 씨알 친구들,

언제나, 술도 한 잔 하지 않는 답답한 인생들이라고

피해 다니는 나를 어떻게든 챙겨주던 친구들이다.

난 친구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해도

서운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다.

그녀들은 정말 친구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남편을 좋아하게 내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친구들의 말귀를 못 알아 들었나보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난인데...

그런데 어찌보면 이 가난마저 사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론 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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