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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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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64회 작성일 17-10-26 08:04

본문

삐꺽이는, 혹은 출렁이는 푹신한 뗏목을 타고,

어제의 내일에 표류 되는 아침이다.

상륙이 아니고 표류라고 쓰고 싶은 아침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또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계획과 예측이 나에겐 부질 없기 때문이다.

친구는 점괘를 믿었다.

바람둥이 남편이 내년엔 쓰러져서

여자 인연이 다 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 내년에 시어머니가 돌아 가실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십만원을 주고 부적을 샀다고 했다.

내일을, 미래를 믿는 방식도 참 제 각각이다.

점이 맞건 맞지 않건

나 조차도 볼 수 없는

내가 아직 살아 본 적 없는 나의 미래를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불러낸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느끼는 것은 불결함이다.

점쟁이가 볼 수 있는 미래 같은 것이 있다면

이 세계의 주인공이던 개인들은 모두 조연으로

밀려나고 마는 것이라는 생각이 왜 드는 것일까?
아무리 하찮고 사소한 드라마라 할지라도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어 삶을 견딜 조명들을

머리 위에 켤 수 있지 않은가?

누가 죽더라도, 혹은 내가 죽더라도

그때의 문제를 미리 앓고 싶지는 않다.

 

어제는 남편 몰래 적금 대출 30만원을 내었다.

내가 번 돈을 대출 내는데 왜 도둑질하는 기분이 되어야 하는지,

추석 전에 쉰 날이 많아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쌀과 생필품들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돈은 물에 풀어 놓은 종이 비누처럼 녹았다.

이것 저것, 장을 보고, 갚을 것을 갚고 나니 딱 오만원이 남았다.

지갑 속에 오만원권 한 장을 넣어 두었다.

출근을 하면 아무 곳에나 팽개쳐 두던 가방을 사람들의 손이 잘

닿지 않는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오만원이 든 지갑이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이나 소지품을 넣어다니는 가방 조차도 돈이 있으니

놓는 위치가 달라지고 대우가 달라진다. 지갑속에 오만원이 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든든하고, 당당해지는 것일까?

어제는 깍두기를 치대는 날이라 이모들이 파 김치가 되어 있어서

박카스 몇 병을 사다 드렸다.  지갑을 가지고 다니면 땡전 한 푼

지갑에 없는 거지를 면하는 부적 같은 오만원을 얕은 인정에 다 헐어

쓰게 될 것 같다. 지갑을 따로 빼어서 안방 서랍속에 넣어두고 다녀야

겠다. 그래도 어딘가에 나만의 돈 오만원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내가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친구가 창원에서 파스를 사들고 왔다.

수자원 공사에서 가을이 물든 진양호를 바라보며 수다를 떨었다.

어제 일을 마치고 친구가 사다 준 파스를 등 허리에 붙였다.

붙일 때는 차갑던 파스가 아침이 되니 따뜻하다.

몸에 파스를 붙이면, 각설이들의 옷에 기워 붙인 네모 헝겊을 붙인것처럼

몸이 누더기가 되는 기분이 들어 나는 파스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픈 곳에 얹은 친구의 손 같아,

어쩐지 그녀의 안수 기도 같은 것이 파스에 스며 있는 것 같아

파스를 붙인 것이다.

남편과 몇 번의 섹스를 했다고 떠벌리는

남편의 애인에게 밥을 차려 주고,

마침 밥을 먹으러 들어 온 남편과 함께

남편의 애인이 밥을 먹게 내버려 두고

도저히 함께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비켜 주었다는

그러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오늘까지 살아오고,

내년에 남편이 쓰러질 거라고 점쟁이가 말하니까

쓰러지지 말라고 부적을 샀다는

이미 제 마음이 천장의 파스로 싸맨 미이라 같을텐데

내 걱정이 되어 창원에서 진주까지 달려온 그녀의

착한 기도가 등허리에 스며 들었는지 허리가 훨씬 나아졌다.

 

어제 근로 계약서를 썼으니까

나는 이제 백수가 아니다.

직장도 있고, 돈 오만원도 있고

창원에서 파스 사들고 달려와 주는 친구도 있고

엄마가 해주는 가자미 조림을

가자미 뼈를 빗으로 쓰도 좋을만큼 깨끗하게

맛있게 발라먹는 아들도 있고,

파스를 등허리에 붙여주고 푹 자라고

불을 꺼주는 남편도 있고

가을 되었다고, 푸름도 지겹다고

그 많은 나뭇잎 어느 한 잎도 빼지 않고

차곡차곡 단풍을 칠하시는,

걸핏하면 먹고 산다고 바쁜 나를 붙들고,

"기가 막히지 않냐고?

어떠냐고? 하던 붓질을 멈추고 내 느낌을

묻는 하나님도 계시고,

내가 표류된 오늘이 나는 마음에 든다.

사랑한다고,

부질없는 인연들에게 종이에 지핀 불 같은

사랑을 지펴대며 제 손만 데이던 말을

또 어떤 섬이 나를 기다리나 해수와 아침 햇살에 젖어

촉촉한 모래사장에 한 발 두 발, 발을 떼고 있는

이젠 아무 두려울 것도 없는 나에게 한다.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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