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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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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759회 작성일 17-11-21 08:14

본문

잠결에 누군가 나를 만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더니

남편이 나의 어깨와 팔을 안마하고 있었다.

내가 잠결에 끙끙 앓고 있었던 모양이다.

목줄기에서 양쪽 어깨로 갈라지는 지점에선 내가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까무룩 다시 잠 들었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마당에 깔아 준 담요 위에 오글오글 모여 앉은 고양이들의

등이 추워보여 요구르트 장사를 하며 잠금쇠가 고장 나서

집에 하나 갖다 두었던 보관함을 고양이 집으로 만들어 주었다.

경계심이 많은 노랑이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난이는 내가

집이라며 목덜미를 들어 넣어 주었더니 새끼들도 어미를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 마리도 죽지 말고 겨울을 잘 났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콩나물 국밥을 계속 먹게 되었다.

간신배가, 몇 일 알바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온 나의 뒷통수를 보며

"저 년이 일하면 나는 그만 둘거다"하고 했더니

사장 엄마가 내 역성을 들었기 때문에 오전 내도록 두 사람이 싸우더니

간신배가 결국 보따리를 싸고 집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나와 중국 아이는 다시 계속 다니게 되었다.

 

사장은 나에게 농담도 하지 말고, 웃지도 말고, 콧 노래도 흥얼거리지 말라고 주문했다.

사장은 내가 자신이 주는 이백만원을 받으며 이백만원어치 불행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행복하면 나타나는 어떤 증상도 거슬려 하는 것 같았다.

일만 하고, 일에 관련된 말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홀 서빙들에게 커피를 부탁 할 때 "고맙소 낭자!"하는 정도의 농담 외에는 종일 종종 걸음 치며

바빠서 서로 얼굴 마주 볼 시간도 없는데 도대체 내가 그런 금지 항목을 들어야 할만큼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일까? 물론 사장에게 매달리며 커피숖에서 만나 세시간이나 울면서

무엇인가 억울하다며 하소연 하던 간신배의 입김이다.

 

그래 말하지 말라면 하지 말고, 웃지 말라면 웃지 말고, 콧노래 흥얼거리지 말라면 말자.

개수대가 가득차고 넘칠 정도록 뚝배기와 그릇이 밀려들면 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게 될까봐

내 마음의 속도를 조절하느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독도 아리랑 같은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그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노래의 리듬을 타며 그릇을 씻으면 그릇이 더 빨리 씻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거슬린다니,  일만, 일만 하라고 한다.

묵언수행 같은 것을 한번 해보고 싶지 않았던가?

 

이제 위안이라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며 올려다 볼 수 있는 시릴수록 파란 하늘 밖에 없다.

구름을 보거나 별을 보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구름도 별도 보지 말자.

이백만원어치 노동과 불행을 확인하고서야 사장은 자신의 돈이 아깝지 않다는 것을  느낄테니까.

 

감나무에 따지 않은 감이 많다.

겨울에 까치나 새들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왜 누군가에게 월급을 줄 능력도 없으면서

박복한 나와 인연이 되어 내 곁이 되는 모든 이들이

잠시라도 웃고, 쉬고, 뭐라도 먹고 노래를 흥얼거렸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일까? 천하게 태어나서 고귀한 품을 가지고 사는 것은

길하지 못한 것이라고, 어떤 역술책 같은데서 읽은 것 같다.

 

남편이 아침에 끓여주는 뜨거운 우유가 참 행복하다.

그가 커피콩을 가는 소리가 참 행복하다.

이제 여름 내 갈아 먹었던 오디가 다 떨어져서

우유를 끓여서 커피를 조금 타 주는 것이다.

나를 귀하게 여겨주는 그가 참 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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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공덕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맙습니다. 이것을 행복으로 읽어 주셔서요.
늘 저의 일기를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츠등학교
땐 선생님이 일기 검사를 했죠.
전 그 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 일기를 검사해주셔서가 아니라
경청 해주셔서 고마워요.
제 말을...참,, 고마운 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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