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의 주둥이를 묶는다는 것은, > 편지·일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편지·일기

  • HOME
  • 창작의 향기
  • 편지·일기

☞ 舊. 편지/일기    ♨ 맞춤법검사기

  

▷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배추의 주둥이를 묶는다는 것은,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71회 작성일 17-11-29 04:14

본문

사장 엄마는 나의 좋은 스승이다.

중국 아이 남편이 땅을 갈아 심은 배추가 많이 자랐다고 했다.

그러자 사장 엄마가 말했다.

배추는 주둥이를 잘 묶어 주어야 속이 찬다고 했다.

순간 배추에게 주둥이가 어디인가 생각 했다.

그런데 우리 집 앞 공터에 땅 임자 아닌 농부들이 심어 놓은

배추를 보니 배추는 햇빛을 먹는 모든 잎들이,

그러니까 배추의 몸 전체가 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에게도 바디 랭귀지라는 것이 있으니까,

진실한 침묵이란 금과도 같다는 옛말이 금 같다.

사장 엄마의 말처럼 주둥이를 그러니까 모든 잎들을,

그러니까 배추의 몸통 전체를 묶어 놓은 배추를 보니까

배추가 까들까들, 한 잎 한 잎, 속이 차고 또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초 겨울 배추와 같아지리라

나를, 혹은 내 전부를 입으로 묶는다.

 

흰색에 대한 반목이 깊다.

아침 출근길에 남편은 트럭 전면 창에 끼인 성에를 긁어내고

나는 공주처럼 앉아 그의 손이 얼마나 시릴까 죄송한 마음을

세로로 한 줄 한 줄 늘어나는 그의 얼굴을 피해 미처 하지 못한

화장을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사람들은 흰색은 깨끗한 것이라는 착시 현상을 가지고 산다.

아마도 그 착시의 근원은 젓이나 우유에 있을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기 위해 먹어야 했던 음식이 흰색이였고

밥이나, 밀가루나 모두 흰빛이다. 우리의 주식이 흰빛이다 보니

우리의 의식 속에는 흰 빛이 깨끗하고 유익하다는 맹신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러나 쌀을 씻어도 맑은 물이 우러날 때까지

흰 빛을 씻어내고, 차창의 성에 또한 그 흰빛을 긁어내지 않으면

앞을 볼 수가 없다. 신부는 웨딩 드레스를 입지만 결국 그 흰 옷을

벗어야 첫날 밤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때다.

식당에서 식탁을 닦을 때 막걸리나 우유를 쏟았다고 해서 닦지

않는 것이 아니다. 더 오랫동안 박박 문질러야 한다.

가증스럽다는 말은 흰색과 비슷한 말 같다.

투명은 어떤 더러움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말,

그러니까 닦는다는 행위는 투명의 회복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되지 않는 사람은 하루에도 몇 백번 식탁을 닦고

또 닦는 식당 아줌마보다 시인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 같다.

세상을 자꾸 희다고 우기는 사람의 시는 성에 낀 차창 같다.

스스로도 고집스럽게 희다고 우기는 것 같다.

흰 것은 모든 더러움의 도화지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돌아볼 수 없는 아집은 흰 색 같다.

특히 시의 흰색은 거의 벽과도 같다.

흰 색의 시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가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아

자꾸 같은 시를 쓰면서 읽는 사람의 눈을 탓하고,

자신에게 시를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사람을 탓한다.

시란 결국 공부하는 스님들의 화두처럼 자신을 보는 안경이나

돋보기 같은 일종의 도구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믿는 것 같다.

 

사람이 된다는 말은 참 말랑하고 따뜻한 말 같지만

사람이 된다는 고민을 해보면 참으로 어렵고 냉혹한 말이다.

사람은 그 단어에 대해 스스로 흰색일 때가 많다.

이 것이 사람이다. 이래야 사람이다라고 믿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이 것은 사람이 아니다. 이래서 사람이 아니다

성토를 하지만, 다른 흰색들이 모이면 그 또한

이 것이라, 이래서 사람이 아닐 뿐이다.

그 사람은 인간미가 없어.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에 근접한

사람을 볼 때 우리가 가하는 치명타가 무엇인지 돌아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다양하고 실제하지 않으며 실천하기 어려운

존재인가를 간파 할 수가 있다.

대체로 나는 좋은 인간이다. 괜찮은 인간이다 하는 흰색의 믿음이

흰 소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사장이 나에게 한 주문을 잘 지키고 있다.

말하지 않고 산다.

말하지 말라는 것은 생각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생각하면 말하게 되어 있다.

생각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생각이 많으면 많아지는 말 또한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인은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는 동물이 아니라

말과 생각과 싸우는 동물, 그러니까 말과 생각을 고민하고

우리에게 굳은 살 같은 통상적인 말들을 걷어내는 동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꾸 시를 쓰다보면

내게 끼인 흰색이 지워진다.

스스로를 믿지 않게 되면 남을 탓하지 않게 된다.

이 것이 스스로에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시를 백년을 쓰고 천년을 쓰도

그는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나는 든다.

그러니까 칼은 도구이다.

칼을 무엇에 쓸 것인가?

요리도 하지 않고,

배추 밑동을 베어내지도 않을거면서

죽어라고 그 칼을 갈기만 한다면 그는 칼을 썼다고 볼 수 있는가말이다.

시는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고 나는 왜 생각드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무명으로 죽어가는 것일까?

시가 신이 아니라서.

시는 나를 보는 눈이다.

내가 사는 세상을 보는 눈이다.

눈은 보라고 달려 있는 것이다.

어둠에 가려진 내가 흰색에 가려진 나와 별반 다를 것도 없다는 사실을

보라고, 햇빛 속에서도 눈을 뜨야 한다고,

햇빛이란 산란하는 색의 잔치,

이 착시의 축제 속에서도 나를 보라고,

 

교수의 시론을 읽다가

왜 그럴까 나는 무식해서 그런지

시를 위한 시,

언어를 위한 언어에 회의 혹은 환멸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예쁜 눈꽃 같은 것,

순결한 성에 같은 것,

시가 구도는 아니지만

물감 만으로 그림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무식한 직시 같은 것이 자꾸 된다.

직시가 착시 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배추의 주둥이를 묶었더니

속으로 들어갈수록 아삭아삭한 무엇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사장 엄마가 산에 닭장을 만들어 키우는 청계닭 한마리가

모이 준다고 문을 열었는데 탈출하더니

아무리 닭장 속으로 몰아도 들어가지 않다가 결국은

얼어서 굶어서 죽었다고 한다.

닭은 자살한 것일까?

닭대가리로 고민해도 닭장 속의 삶은 삶이 아니였나보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66건 4 페이지
편지·일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76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9 0 01-21
75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5 0 01-15
74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5 0 01-15
73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3 0 01-13
72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5 0 01-13
71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4 0 01-13
70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91 0 01-03
69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8 0 12-26
68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97 0 12-25
67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6 0 12-21
66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5 0 12-18
65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8 0 12-14
64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9 0 12-13
63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5 0 12-11
62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5 0 12-09
61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6 0 12-06
60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8 0 12-04
59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6 0 11-30
열람중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2 0 11-29
57
묵언수행 댓글+ 2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9 0 11-21
56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0 0 11-20
55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4 0 11-14
54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5 0 11-13
53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2 0 11-10
52
내일도 댓글+ 1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7 0 11-03
51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98 0 11-02
50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8 0 10-29
49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6 0 10-27
48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64 0 10-26
47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13 0 10-24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