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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35회 작성일 17-11-30 19:55

본문

어미 고양이 난이가 몇 일 째, 목을 컹컹이며 숨을 쉬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출근길에 걱정을 했지만 고양이 치료비가 비쌀거라는 생각 때문에 남편에게

고양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자는 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 밥을 먹지 못하는 고양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남편과 싸움을 해서 영구처럼 까맣게 썩어가는 대문니를 떼우지 않을테니

고양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자고 완강하게 버텼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길 고양이 거두어 먹이는 것도 벅찬데 병원비까지 쓰야 하냐며 남편도 벼락치듯

화를 냈지만, 남편을 설득 시켰다.

"앞 이빨이야, 그것 좀 썩었다고 내가 죽는 것도 아니지만, 고양이는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한 번만 병원에 보여보자. 만약 한번 데리고 갔는데도 죽으면 지 팔자니까

더 이상 나도 말하지 않을께"

입금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던 남편이 완사에 순대국밥을 먹자고 몰던 차를 집 앞으로

다시 돌렸다.

"후회하지 마라! 정말 이 치료 못한다. 고양이 병원비 내면.."

 

그가 일할 때 끼는 빨간 코팅 장갑을 끼고, 거의 명을 떼듯 울부짖으며 온 몸을 비틀며

도망치려는 고양이를 수건으로 감싸 안고 트럭에 태웠다. 산쵸 때문에 늘 다니던

동물 병원에 갔지만 의사가 건강이 좋지 못해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구,

난이야! 니가 운이 없네 하며 처음 보는 수의사에게 겁에 질린 난이를 내밀 수 밖에 없었다.

난이의 목과 배를 만져보기도 하고 청진기를 대어 보기도 하고, 잔등의 살을 집어보기도 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몸에 탈수 현상이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코를 한 동안 두 손가락으로

집고 있더니 코가 막힌 것 같다고 했다. 의사가 주사를 두 대 맞히고는 한 동안은 바깥에 내보내지

말고 실내에 두라고 했다. 가습기를 켜주고 물을 많이 먹이라고도 했다. 난이를 데리고 돌아 오는

길에도 남편과 싸웠다.

"참, 내가 니 오지랖 때문에 못 살겠다. 길 고양이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이 진드기 구덕이를 방안에 들이자고"

"우짜끼고! 일단은 살리고 봐야지. "

결국은 내 오지랖이 이겼다.

난이를 방에 데려다 놓고 젖은 수건을 걸고, 분위기 잡을거라고 놓아 둔 물 흐르는 인테리어 소품에

몇 년 만에 물을 넣고 전원을 켰다. 이 놈의 고양이 때문에 계속 영구처럼 까맣게 웃으며 살아야 하나

한 숨 쉬고 있는데 남편이 빨리 치과에 가자고 옷 갈아 입으라고 했다. 아침에 말쑥하게 차려 입고

나선 코트가 고양이 털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난이의 치료비는 13000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밥을 주는 것은 정을 주는 것인 것 같다.

애지중지 해봤자 쥐약 먹고 죽고 차에 치여 죽고, 까닭도 모르고 죽고 해서 이 놈의 들짐승들

내가 눈이나 맞추나보자 했지만, 식당일하며 손님들 먹다 남긴 떡갈비며 만두며 얻어다 먹인 것이

모두 정이였나보다. 그것도 받은 정이라고, 어둡고 외진 퇴근길에 고양이 다섯마리가 모두

길가로 몰려나와 우리를 마중했다. 우리는 주안상을 차리고 먹다남은 치킨이나 삼겹살을

서로 고양이에게 줄거라고 싸웠다.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모습이랑 새끼 입에 밥들어가는

모습만큼 좋은 구경이 없다더니, 녀석들이 닭 가슴살이나 뼈에 발린 살들을 먹으려고 달려

와서 야옹대며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슨 낙을 누릴 시간도 없는 우리 부부의 유일한 낙이였다.

이제 새끼들도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올라서 마당을 뛰어다니고, 이 집의 터줏대감 노랑이와도

별 마찰 없이 잘 지내나 했는데 사나흘 전 부터 난이의 상태가 이상 했던 것이다.

다행이도 흰머리를 염색하고, 스켈링을 받고 영구 이빨을 하얗게 떼우고 집에 돌아오니

난이의 상태가 조금 호전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밭에 나왔다가 갑작스럽게 들른

시어머니 때문에 다시 난이가 마당에 나와 있었다. 어머니에게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는 말도 고양이가 아파서 안방에 데려다 놓았다는 말도 나를 좀 모자라는

며느리로 보게 하는 말이어서 빨리 어머니가 댁으로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렸다.

저녁밥을 주니까 난이도 밥그릇에 주둥이를 대는 것 같았다.

큰 방에 보일러를 켜고 전기 장판을 켜서 다시 난이를 방에 들여다 놓았다.

아주 오랫만에 예수님께 기도를 했다. 난이를 살려 달라고 기도 했다.

지금 이 세상을 통틀어 나의 가장 절실하고 유일한 소원은 난이가 사는 것이다.

난이가 이전처럼 숨을 쉬는데 아무 불편한 소리도 내지 말고 밥도 잘 먹고

다시 살도 올랐으면 좋겠다. 오십년을 살아도 사는게 뭔지 모르겠지만

목숨 붙은 것들은 모두 잘 살았으면 좋겠다.

 

미용실에서 지루해서 읽던 책을 빌려왔다. 그 책은 고은의 화엄경이다.

발행일이 1991년인 이 책은 얼마나 세월이 앉았던지, 일부러 그런것처럼

책 전체의 페이지들이 갈색 그늘이 져 있다. 책장은 흰색이 아니라 갈색이다.

사실 저자의 이름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고? 했는데 집에서 검색해보니

시인 고은이 쓴 책이였다. 내가 무식해서 처음 본 것이였지 사실은 아주

유명한 책인 것 같다. 그래도 잘 되었다. 나랑 인연이 된 것이다. 고은

고은 노벨 문학상 후보라는 것과 시 몇 편 읽어본 것이 전부 였는데

뭘 안다고 술에 취해서 고은 이야기를 일기에 썼던 것 같다. 어쩐지

문장들이 빨려들어갈듯이 아름답고 시적 정취가 느껴진다고 했는데

그 흔한 여성 잡지도 꽂혀 있지 않는 동네 미용실에, 딱 한권 하필이면

이 책이 꽂혀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내 영혼을 코 바늘끝에 걸고

뜨개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더 높은 곳으로 한 코 한 코 물어서 끌고가는

어떤 손길이 있는 것 같다. 여사장은 딱 한권 뿐인 책을 자주 오지도 않는

손님에게 빌려주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지, 손님이 읽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지만 책에 끼여 있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손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전화 번호를 적어 줄까요 하며 눈치 코치 안면 몰수하고 빌려와버렸다.

밤 아홉시에 일을 마치는 내게 하늘이 주신 멋진 여행이 될 것 같다.

행복하다. 좋은 책을 읽게 된 것이다.

난이가 나았으면 좋겠고

아! 빨리 화엄경을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이다.

이젠 웃어도 영구 같지 않다.

물 입니다

바람 입니다.

물 입니다

바람 입니다.

친절한 칫과 간호사가 스켈링을 하며

내 입에 투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켜 주었다.

물 입니다

바람 입니다.

물이거나 바람이거나

말라 뻗뻗해진 명태처럼 입을 벌리고

견디는 수 밖에 없겠지만

그녀가 물이라거나 바람이라고 말해주어

두려움이 덜하긴 했다.

왠지 그것에서 시가 느껴졌다.

물 입니다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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