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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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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48회 작성일 17-12-04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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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한 이후 처음으로 매출이 400이 넘었다고 콘크리트 동상처럼 무뚝뚝하던 여사장이 조청처럼 말랑말랑 해졌다.

여사장이 조청처럼 말랑말랑 해지는 대신 아침이 되니까 내 오른 손은 퉁퉁 붓고 주먹을 쥘 수 없게 굳었다.

계산상으론 뚝배기를 약 천개는 씻은 것이다. 오후 세시반까지의 매출이 400이였으니까 그 이후 마칠 때까지를

계산해보면 그렇다. 뚝배기와 설겆이는 기본이고, 몇 솥의 밥을 앉혔는지, 또 씻은 뚝배기 만큼 네모난 쟁반 위의

밥을 뜯어다가 누르고 가장자리를 다듬어서 뚝배기 안에 납작하게 앉혀야 한다. 손님이 바깥에 까지 줄을 서서

아침 겸 점심은 먹지 못하고, 오후 네시나 되어 사장이 한 턱 내겠다며, 나중에 거나하게 한 턱 쏘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그것도 함께 일하는 이모가 배가 고프다고 말을 해서 종일의 한 끼를 짬뽕으로 떼웠다. 종일 쫄쫄 굶다가

매운 면이 들어가니까 속이 니글거리고, 식곤증이 밀려들었다. 다행히도 손님이 끊이지 않아 졸음을 견딜 여유가 없었다.

 

고양이가 스스로 물을 먹었다.  헛구역질을 계속한지 거의 일주일 만이다.  의사가 물을 많이 먹여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머리를 잡고 입을 벌려서 티 스푼으로 물을 먹였다. 또 고양이가 죽을까봐 가슴 앓이를 많이 했다.

사는 일이 참 가슴 아프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다더니, 도처에 도사린 아픔들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다. 외로워야 사람이라더니, 아파야 가슴인가? 눈을 마주치고 갇혔던 물처럼 서로를 섞기가 겁난다.

이렇게 쉽게 찢어지는 재질의 가슴을 가진 내가 두려운 것이다.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했다. 아버지도 죽었고

큰 아버지와 아이들의 아버지가 죽었다. 고양이 따위가 무엇이라고 찢으면 피가 흐르는 종이처럼 내 가슴은

아픈 숨 앞에서 후들거리는지 모를 일이다.

 

이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바깥으로 나가면 버린 쓰레기 만큼이나 묵직한 한기를 온 몸에 뒤집어 쓰야 한다.

닫힌 자바라를 밀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설 때쯤이면 뒤집어 쓴 찬물 같은 한기가 핏줄을 타고 뼛속으로 스미는 것 같다.

오줌 눈 아이처럼 몸서리를 한 번 치고, 다시 더워질 때까지 움직이는 수 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도 내 눈 앞에는

숱한 죄목을 적은 판자 같은 것을 목에 걸고 처형대에 묶여 있는 내가 있다. 눈처럼 동그랗게 밥알들을 뭉치다가 확

던져 버리고 싶고, 뚝배기를 한 줄로 쌓아놓고 씻다가도 던져 버리고 싶고, 한 주먹 콩나물을 뚝배기 안에 놓다가도

던져 버리고 싶은 증오로 내가 내 밖에 세워놓은 죄수가 한 명 있다. 그런 나를 내 안에 두고 싶지 않아서 나라를 판

프랑스 여자처럼 거리로 끌어내고 누구라도 똥물을 뿌리라고 외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고도 밤이 깊어 혼자

빈방에 있으면 종일 피가 통하지 않게 묶여있다 풀려나서 푹 바닥에 꼬꾸라지는 그녀를 안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버렸어야 했는데, 그녀를 안고 또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그녀를 끌고 밥을 벌러 나가는

것이다.

 

어제는 소주를 삼분의 이나 남겼다.  한 이틀은 아예 먹지 않기도 했다. 조금씩 술 기운으로 부터 내 삶이 멀어지면 좋겠다.

감각을 열어 두어야 할 것이다. 오늘도 한바구니의 풋고추를 쓸겠지만, 오늘도 한 통의 오징어 젓갈을 치겠지만, 오늘도

몇 백개의 뚝배기를 씻겠지만, 손끝으로 나랑 인연이 된 사물들을 장님이 세상을 만나듯 민감하고 예민하게 만나야 할 것이다.

무엇이나 형광등 불빛 아래서 가공 되고 포장 된 것들을 마주치는 것보다 날 것으로, 본래의 모양으로 성질로 만나고

바라보는데 내 직장은 참으로 좋은 장소다. 그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조용히 잠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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