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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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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34회 작성일 17-12-09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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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모가 김장 김치를 갖다 주셔서 짜게 먹었더니 목이 말라 잠이 깨었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서서 만두로 아침을 떼우거나

그것 조차도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제대로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없는 것을 두고 인간의 기본권의 침해 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식당이라는 곳은 남들을 제대로 먹이기 위해 스스로는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장소라는 인식을 당연한듯이

하지 않으면 밥을 벌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식당도 공장이나 여타 직장들처럼 공식적이고 엄연한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식당 종업원들은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보장 받고 있는 권리들로부터 예외여야 하는 것일까?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단 한 시간이라도 업주가 이익을 포기하면 적어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식사 중간에 일어서서 식은 밥을

먹는, 인간답지 못한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언제 손님이 올까 마음을 졸이며 거의 장을 채우기 위해 끌어 붓는 식사를 식사

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욕인 것 같다. 누구도 싸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식당에선 영원히 인간을 모욕하는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싸울 의지가 없다. 피곤하고 지쳤다.

 

눈사람 친구는 계속 전화와 문자가 오고 나는 받지 않는다.  대포 통장에 대해서 어떻게 거절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험한 세상 빈틈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용기가 없다. 이미 내가 험한 세상 아무 빈틈이 없어 절벽에 매달려서 더 딪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를 욕하고 상처 받지 말았으면 좋겠다.

 

시를 쓸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시를 잃어서는 안된다. 쓸 수 없다고 내 안의 시가 사라져서는 않된다.

 

남편이 백화점에 나를 데리고 가서 올해 유행이라는 롱 패딩을 사 주었다.

어느 색상의 옷에나 무난한 검정색 모자도 사주었다.

길 가는 사람 다섯 중 한 명은 입은 듯한 롱 패딩이 키 작은 나에게는 입고 다니는 침낭 같았다.

그래도 유행 한다는 옷을 입으니 어쩐지 보호색을 한 짐승이나 벌레처럼 안전한 기분에

푹 싸여 연말의 거리를 걸었다. 그대로 걸어서 얼마 후 있다는 시모임에 가보고 싶었다.

대전 어디라고 문자가 왔다. 등단이라는 것을 얼떨결에 했지만, 그곳도 이제는 외로운 장소인 것 같다.

아무도 반길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제사 때라도 가서 혈육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듯

내 삶이 시라는 끈에 연결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것 같다. 그들을 만나면

왠지 펑펑 울 것 같다. 그들을 그리워 할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들이라는 사람들 자체의

얼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운 건 시인 것 같다. 그들의 마음 속에, 한 아파트의 불빛처럼

공통으로 켜져 있는, 시라는 불빛이 그리운 것 같다. 외국에 살아 본 적이 없지만 외국에 살다

한국에 돌아오면, 문득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나를 뼈저리게 느낄 것 같다. 나는 내 현실에서

외국인 같다. 그들을, 아니 그들 안의 시를 만난다는 생각만 해도 벌써 눈물이 난다.

그러나 나는 갈 수 없다. 연말의 주말은 식당에선 부모형제가 죽지 않는 이상 뺄 수 없는 시간이다.

꼭 가려면 가겠지만, 난 그 이후의 스나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고 싶다. 나를 시인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시인들이 보고 싶다.

세상에 없는 피붙이처럼 그들이 그립다. 모자를 쓰면 영락 없이 침낭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은

새로 산 패딩을 입고, 시라는 보호색에 푹 싸여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나는 아마도 그 길로

집이라고 불리는, 남편에게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가지 말자, 가서는 않되는 것 같다.

더우기 사시 사철 옷 한 벌 사입지 않는 그가 사 준 패딩을 입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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