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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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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26회 작성일 17-12-14 22:03

본문

내가 쉬는 날이 목요일이여서 좋다.

물 수를 쓰는 수요일도 좋았겠고,

흙토를 쓰는 월요일도, 달 월을 쓰는 월요일도 나쁠 것 없겠지만

연연함이 많아도 머물지 못하는 내가

연연함에 충실한 나무 목의 날에 쉬어 정말 쉬는 것 같다.

내 마음이 불화 같은 날, 내 마음이 태양 같은 날 쉬지 않아

참 좋다.

 

오늘은 김장 하느라 고생한 시어머니와 그녀가 나와 잘 친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딸과 사위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작년 여름부터 말을 하지 않았던

그녀의 딸에게 내가 전화를 한 건,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 사람들

끼리 사이가 붙고, 화목해진다는, 그녀의 오랜 지론에 공감을 해서가 아니라

어쨌거나 그녀가 기분이 좋아졌으면 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있었던 그런

지론이 참 아이러니한 것이, 여자가 시집을 오면 삼년 동안 귀먹어리 벙어리 장님

노릇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귀먹어리, 벙어리 장님이 잘들어 온 여자라니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여자의 역할이라는 말인데, 어머니는 귀먹어리

벙어리 장님에게 자꾸 무슨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가족들의 사이가

나쁘다면, 그 귀먹어리 벙어리 장님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맛 있는 김장 김치를 담아주고, 입 짧은 남편과 식탐 많은 내가 먹으라고 늘 반찬을

해 주시는 시어머니가 내가 쉬는 목요일, 나무처럼 무슨 그늘이라도 되어주고 싶은 날

행복하시길 바래서 그녀의 딸에게 말 못하는 벙어리가 아니라 말 하는 벙어리 역할을 했다.

용서란 뭐든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듯 전화를 했기 때문에

그녀와 나 사이엔 정말 아무 문제가 없어져 버렸다. 밀렸던 숙제라도 하듯, 서로 주지 못한

애틋한 것들을 주기 바빴다. 그녀가 오디 영감네 집 감을 얻어다 손수 깍아서 만든 꽂감들을

친정 엄마에게 보내 주라며 주었고, 남편에게는 긴 극세사 잠옷 바지를 주었고, 나는 그녀가

이사를 간 집에 집들이를 하라고 재촉 했다. 오늘 내가 추천한 아구찜 집에 찜이 맛있다며

대 자를 시킨 아구찜 접시가 하얘지도록 추가로 시킨 밥을 비벼서 싹싹 긁어 먹고 그 집의

명함을 얻어갔다. 입이 짧은 일가족들이 혹평을 하지는 않을까 맘 졸이며 갔는데 맛 있다고

하니까 잠시 우쭐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서 기분이 매우 좋아진 남편은 갑자기 미치도록 내가

사랑스러워졌는지, 어쩔줄을 몰라 했다. 어쨌거나 나 때문에 그가 행복해진 것 같아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가 다운 받아 준 영화를 보았다. 제목을 모르겠다.  쌍둥이 금동불상을 독립 운동 자금으로 바치려고 했던

구한말의 선비가 일본놈의 칼에 찔려 죽었는데 그것이 묻힌 곳이 북한의 원산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안동의

어떤 문중이였고, 귀신으로 나오는 예쁜 이하늬가 눈 앞의 이익을 찾아 헤메는 두 형제를 지키는 내용이였다.

사실 그 문중의 종부였던 두 형제의 엄마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치매에 걸렸는데, 마동석이 역할을 맡은

아들이 그녀에게 휴대폰을 사주며, 제사 음식을 일일이 만들지 말고 배달 시켜서 하라고, 떡은 몇 번, 생선은 몇 번,

과일은 몇 번이라고 가르쳐 주는 장면에서 엉엉 통곡을 하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하도 잘 울어 남편은 나랑 영화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난 내가 얼굴이 좀 예뻣으면 영화배우가 되었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역할도 아닌데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감정이입이 되어 숨을 쉴 수 없거나, 울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영화를 보고

나는 내 다음 생의 꿈을 정했다. 이 생의 꿈은 시인이다.

이 생의 꿈을 꾸느라 나는 다음 생의 꿈을 버렸다.  다음 생에 나는 좋은 엄마가 될 것이다. 젊은 새 남편과 사느라

아이들이 뒷전인 나쁜 엄마의 역할은 이 생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다음 생에도 나는 저 고등 학교 겨우 졸업한

공부 못하고, 잘 난 것 없는 저 녀석들의 엄마로 태어나, 다음 생에는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그냥 남자도,

남편도, 시도 없이, 마냥 자식들만 보고 살다 죽는 엄마, 그냥 엄마이기만 해도 좋은, 그기서 정말 좋기까지 한 엄마로

사는 것이 다음 생 나의 꿈이다. 이 생에는 정말 나쁜 꿈을 꾸고 살았다. 배운 것도, 재능도, 아무것도 없는 년이

시인이 되는 꿈을 꾸며 살았다. 그것은 어제 오른쪽 대퇴부가 아파서 붙인 파스 같은 꿈이였다. 진통만으로 치료를

대신하는, 순, 순, 간, 간, 유용한 꿈이였다. 그러나 다음 생엔 오로지, 다만, 그냥, 미치도록 엄마였으면 좋겠다.

사랑하라고 태어나서 사랑하지 못하고 살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 내가 이 생에 초대한 인생들에게 면목이 없다.

 

시인이 죽을 때까지 꿈이여서 나는 참 좋다.

다음날 잠을 깬 하루가 꿈만 하겠는가?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어 나는 참 고맙다.

이루지 않고 싶은지도 모른다. 정말 시인들이 나보다 시로 인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할 때가 더러 있었다.

어쩌면 돈을 모르는데 돈을 벌게 된 사람처럼,

그들이 시를 모르는데 시를 얻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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