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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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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90회 작성일 18-01-03 07:01

본문

이제 나의 시간은 묶음이나 매듭을 잃었다.

새해가 되었다는 것을

1월 1일, 시간의 큰 다발 하나가 풀렸다는 것을 출근 때, 콩나물 국밥집 자동문 앞에 줄을 선 손님들 보고 알았다.

아마도 해돋이를 보고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토, 일, 밀려드는 뚝배기와 그릇을 씻는 물에 허우적거리다

그것이 한 해의 마지막 날들인 줄 또한 몰랐다.

새 해, 새 달, 새 주일이 시작 되었으나

나는 전생 쯤에나 벌려 놓은 듯한 묵은 일과 씨름하느라 아무 새 느낌과도 닿을 수가 없었다.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은 발바닥의 굳은 살 같은 것이 내 의식을 감싸고 있는 것 같다.

재작년엔 요구르트 장사를 했고,

그 이전의 해엔 무엇을 했던가?  이젠 과거나 미래나 가본 적이 없는 시간 같다.

아버지가 재작년에 돌아 가셨는지, 그 전 해에 돌아 가셨는지도 모르겠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다는 사실,

그리고 또 다시 원점에서 다시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느 지점에선과 나랑 아무 상관없는 공전을 계속 하리라는 사실,

그러니까 또 한 해, 또 한 달, 또 하루에 대해 어제나 오늘이나 무덤덤하듯

그리하여 마침내 어느 지점에서 내가 살아야 할 날들을 송두리째 잃는다해도

무덤덤 하기를 바랄 뿐이다.

어릴 적 엄마가 다우다라 불리는 나일론 천의 가장자리를 촛불로 그을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장 자리 천이 들쑥날쑥 풀리지 않도록 매듭을 짓는 것이였다.

억지로라도 매듭을 짓고 묶음을 만들고 다발을 짓자.

초등 학교 방학 때 일일 계획표를 짜듯,  도화지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피자처럼 시간을 조각내어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독서, 숙제, 음악 감상, 야외 학습 따위를 하는 것이다.

사흘이 지나면 이미 다 먹고 소화된 피자처럼 아무 의미도 상관도 없어지는 계획일지라도

사흘 동안만이라도 내 시간을 계획이라는 나에 대한 나의 권력 속에 밀어넣고 지배해보는 것이다.

 

9일까지만 석달을 채워 콩나물 국밥집을 다니고 그만 두는 것이 우선 첫번째 계획이다.

그래도 불쑥이 아니라 한 달, 두 달, 석 달, 이라는 시간의 묶음이나 매듭을 지워 그만두게 된 것이

계획과 실천에 대한 나의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노예 생활을 비교적 잘, 비교적 오래 견딜 수 있게

된 것이 내 정신의 수양과 무관하지 않다는 낙관을 하는 것 같다.

부당한 것을 말 없이 견디는 것은 내 스스로 그 부당해지는 것이다.

사람이 하루에 한 끼 밥이라도 가만히 앉아서 먹어야 한다는

나 아닌 어느 사람이라도 그래야 한다는 정당에 대한 기준이 선다면

그렇게 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견디지 않거나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작은 싸움들이 커다란 자유와 행복의 씨불 같은 것이다.

최소한의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식당에서 남의 밥을 해먹이느라

제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사람들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이십분이라도,

줄을 선 손님들에게 주는 밥을 우리도 앉아서 먹을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십분, 사장이 이익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루에 단 이십분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인간으로 우리를 인정할 수 있도록

그 숱한 공장에서 했던 싸움들을 식당에서도 시작해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잔업이나 특권이 인정 되지 않는다.

근로자의 날에 우리는 더 많은 밥을 팔러 출근해야 한다.

몇 배의 노동을 더하는 주말의 일당이나 평일의 일당이나 똑 같다.

다른 것 모두 사치고 욕심이라 쳐도 최소한 하루 두 끼 먹는 밥이나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시간 동안, 중간에서 몇 번이고 숟가락을 놓고

일어서는 일 없이 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이 늘었으면 인원도 늘어야 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도 제 멋대로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다

식당 종업원들 겨우 앉아서 밥 숟가락 드는 세 시 네 시에 밥 먹으러 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주방 두 사람, 홀 두 사람 모두 네 사람이 밥 한 숟가락 뜨려고 앉았는데 한 손님이 들어오면

모두 우리들만 들을 수 있게 한 마디씩 욕을 하며 각자의 일을 하러 일어선다.

"어이구, 씨발 새끼들, 이 때까지 밥 않 쳐묵고 뭐하고,

넘 목구멍에 밥 넘기는 시간에 쳐 와갖고 지랄이고,"

"저 인생도 우리만큼 힘든갑다.  넘들 다 밥 먹는 시간에 못 먹고

우리랑 같은 시간에 밥 묵는거 보니" 애써 좋은 마음을 먹어보려고 해도, 역시

국밥을 끓이는 삼분 동안 기다리고 서서  식어가는 내 밥과 국을 바라보는 마음에

울화가 돋는다. 그러다 펄펄 끓는 국밥을 손님 상에 놓아주고 내 밥상앞에 돌아오면

식은 밥과 국처럼 식욕도 식는다. 국밥 밑에 까는 밥이라 모래알처럼 된 밥이라

그렇쟎아도 입에 꺼슬꺼슬 겉도는데 아예 밥맛이 뚝 떨어져 찬물에 말아서 먹고

쭈그러진 장에 인사나 하듯,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만다. 올 해는 내 밥 시간에 오는

밥 손님에게 화를 내지 말자고 결심해야 할지, 내 밥 먹는 시간을 주지 않는 식당에서

일하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내가 키우는 개도,

고양이들도 밥 먹는 시간에 꼬리를 만지거나 목덜미를 만지면 으르렁 거리거나 문다.

밥 먹는 시간에 오는 손님에게 그렇게 화가 나는 걸 보면 내가 개와 고양이와 그리 멀지

않은 짐승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린 개나 고양이 만큼도 존중 받고 있지 못한 것이다.

우린 얼마나 쉽게들 살아가려고 하는가?

편하기 위해 견디는 불편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시 한번, 독립 투사나 민주 투사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마시는 자유는 그들의 숨이고, 피다.

 

새 해엔 청와대 홈페이지에 식당 아줌마들이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시간 동안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청원을 해야겠다. 브레이크 타임이 그냥

마음 좋은 식당 사장의 배려 차원이 아니라 식당을 운영하려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식기 세척기나 가스불처럼 기본적인, 혹은 제도적인 설치가 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운동들을 벌여야겠다. 서로 앉아서 계속 식사 드시라고

서로 양보를 해서 국을 끓이러 가고, 포장을 하러 가는 사이 앉아서 먹는 사람은

상대방이 고생하는 것이 미안해서 삽으로 흙을 퍼넣듯이 꾸역구역 바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식당 아줌마들 중에선 위염이나 소화 불량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이것은 기분문제가 아니라 생존, 생명권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이든다.

나 또한 자주 체해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등을 두들겨 달라고 보챌 때가 많다.

관공서나 병원이나 어느 직장이라도 밥을 먹느라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아닐지라도

그들 모두 밥 먹고 제 자리로 돌아간 시간에라도 단 이십분이라도 식지 않은 밥을 먹게

해달라고,  2018년 싸우는 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나머지 계획들은 그 결심을 따르면

될 것 같다.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그럴 권리 조차 없다면 우린 개와 고양이보다

못하다고 동료들을 설득 시키고 , 그 사실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설득을 시킬 것이다.

그래서 어느 일정한 시간에는 대한 민국에 있는 모든 식당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모두 함께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밥만 먹을 수 있도록 싸울 것이다.

 

세상의 굳은 살이 되지 말 것,

묵묵히 견디면 드디어는 바늘에 찔려도 아프지 않게 된다.

아파서, 씨발, 왜그러냐고,

대드는 여린 살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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