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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향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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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11회 작성일 18-01-13 23:36

본문

누군가를 놓아 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냥 놓아주면 그를 무시하는 일이라

화장을 하듯, 그를 가루가 된 그를,

그의 가루를 흩뿌려야 할 때가 있다.

강물이던지

땅이던지

흩어진 그가 강이나 땅에 사는 목숨들의 양분이 되게

자유로워지는 건 죽은 그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내가 될 때가 있다.

나에겐 냉정이란 있어 본 적이 없는 체온이다.

그가 내게서 흩어진 골분처럼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아직도 그로 인해 기쁘거나 슬픈 사람이 있다해도

나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조금은 유치하게도

가엾게도, 하찮게도 보이는 것이다.

사랑이 뱀이나 매미의 탈피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벗은 허물을 돌아보는 뱀이나 매미는 없다.

그것을 벗으며 살갗이 터지고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기

때문에 허물은 다만 징그러운 것이다.

허물을 벗고 난 뱀이 얼마나 순결한지,

허물을 벗고 난 매미의 몸이 얼마나 반들반들한지,

허물이였던 자는 다만 허물로 그 자리에 주저 앉을 것이다.

버리는 자는 허물이 아니라

매미와 뱀이다.

 

님을 향한 행진곡을 들었다

사랑도 명예도.~~~

내 또래 청년들이 이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서울 도봉동에 있는

라면 공장에 다녔다. 여상 3학년 2학기 때 주판을 튕기기 싫어

실습을 간 곳이 양산의 라면 공장이였는데 교환 근무를 지원해서

서울 구경을 갔었다. 그때 체류탄 냄새라는 것을 처음 맡아 보았다.

뉴스에서 화면으로 보던 체류탄 냄새를 맡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

장미꽃 향기를 맡는 사람처럼 코 평수가 넓어졌다. 재채기라는

화학적인 반응을 신체가 보였지만, 마음은 황홀이라는 심미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였다. 우리 생물 선생님은

서울 대학을 다니다 데모하다 잘렸다고 했다. 여상에 처음 입학 할 무렵

유난히 목련이 많은 창가에 앉아 턱을 괴고 목련보다 더 하얀 셔츠를 입은

개구리처럼 눈이 동그란, 그래서 별명이 개구리였던 그 선생님을 보았다.

그 선생님에게서 난생처음으로 체류탄 향기를 맡았다. 그것이 불온의 향기라는

것을 알기까지 거의 십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라면 공장에서도 데모를 했지만

데모 하는 동안 컨베이어에서 강물처럼 흘러 나오는 라면을 지문이 지워지도록

박스에 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을 뿐이다. 위장 취업을 했으리라고

세월이 훨씬 지나서 깨닫게 된, 이상하게 공순이 공돌이 치고는 귀티가 나는

언니나 오빠들이 각이 진 목소리로 무슨 연설 같은 것을 했지만 나는 아무 공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들은 노래들이 아침 이슬인지 상록수인지, 임을 향한 행진곡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에사 내가 빚진 인생이라는 깨달음이 들지만

한편, 내가 꾸고 싶어서 꾼 인생이 아니라는 억울한 생각도 든다. 그나마 대학물이라도

먹을 수 있어서 데모라도 할 수 있고,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고민이라도 할 수 있었고, 싸울수도,

목숨을 걸 수도 있었다면 그 무렵으로서는 축복 받은 청춘이 아니였을까? 난 시골에서

여상을 다니며 세상에 대해 아무런 낌새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수돗물이 없어서

물동이를 이고 식구들의 빨래를 하고, 새벽에 오빠와 동생의 도시락을 싼 건 국가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엄마나 아빠가 가난해서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믿었다. 그래도 엄마가 하던 포장마차

옆구리를 묶은 고무 튜브를 잘라 만든 줄을 풀면, 엄마가 밤 늦게까지 팔다 만 김밥이나

라면을 먹을 수 있고, 아직 불기가 남은 연탄불에 계란 후라이를 해서 동생들 반찬을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새로 부임한 대머리 대통령이 날마다 텔레비젼에 나와서 우리 나라를 잘 다스려서

교복도 자율화 되고, 88올림픽도 열게 되는 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래서 그 대머리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같은 것을 할 때 사실은 너무 슬펐다. 천진하게도 정말 슬퍼했다. 나를 대표하던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상실감을 나는 앓았다. 그가 백담사로 떠날 때도

그를 백담사로 보내는 우리 국민들이 정말 의리 없고,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어쩔것인가? 학교에서 누가 그것을 가르쳤는가?

국민 교육헌장을 암기하지 못하면 여학생이라도 엎드려 뻗쳐를 했고

국기 하강식을 하면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께끼가 다 녹아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고,

공산당 때려 잡자는 반공 포스터를 그리는 숙제를 하지 않으면

교복 치마에 먼지가나도록 빳다를 맞아야 했는데, 어쩔것인가?

 

내가 서울에 처음 갔을 때 이대 앞에 놀러 갔다가 스노우 진이라는 청바지에 락스가 잔뜩 튄 것 같은

청바지가 유행 했다. 무스와 웰라 폼을 처음 발라 보았고, 지하철을 처음 탔고, 맆스틱도 처음 발라 보았다

공장 다니는 오빠들과 미팅을 해보았고, 까페에서 진토닉이라는 것을 마셔 보았고, 애마 부인 같은 영화를

보고 기숙사 이층 침대 이불 속에서 몰래 내 몸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그냥 내가 알지도 못한 일에 대해 저항

하지 않았다고 나에게 빚을 청구하기에 나는 너무 무지했다. 광주에서 벌어진 무지막지한 일에 대해서도

같이 공장에서 컵 라면을 만드는 부서에 일했던 광주 언니를 통해서 이야기 들었다.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여고생의 가슴을 자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폭도들이 원인 제공을 했다고, 엄마 아버지가 말하는데로 믿었다.

광주 언니보다 엄마 아버지가 내게 더 가깝고 중한 사람들이였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아니였던가?

지식은 영혼의 신분을 만들지 않았던가? 많이 배운 것은, 많이 가진 것이다. 그들은 귀족으로서 의무를 다했고

어쩌면 권리를 누린 것 아닌가? 그 피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 피를 질투한다. 누구도 나를 그 고귀한 의무와 권리에

끼워주지 않았다. 1987년을 보고 그것이 그렇게도 서러워서 나는 꺽꺽 울었다. 세상의 양지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세상을 위해 싸우고 피흘리고 죽을 기회 조차 가질 수 없었던 내 삶이 서러웠다.

태어나서 배운거라곤 비겁 뿐이다. 나 자신에 관해 배우기를 바위를 깰 수 없는 달걀이라고 배웠다. 영화 변호사에

나오는 대사처럼 바위를 넘어 갈 수 있는 달걀이 아니라, 차라리 바위를 더럽히지라도 말아야 하는 달걀을

나 자신이라고 배웠다. 사랑도 명예도 나는 모른다. 그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데, 그날이 왜

와야하는지도 나는 몰랐다. 청문회에 나온 그들도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내가 어떤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몰랐다. 진정 난 몰랐다.

 

지금은 초등 학생들 조차도 무엇인가를 아는 시대다.

그야말로 열린 시대다.

평생 목이 묶여 있던 개는 목을 풀어주어도 달아나지 않는다.

내게 체질이 되버린 비겁은 나에게서 달아나지 않는다.

다만 믿는 구석이 생긴 것 같다.

국가가 정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정의나 진실과 상식의

뒷배가 되어준다.

너무 일찍부터 천정을 알아버린 새는 하늘을 꿈꾸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임의 행진곡을 부르며 체류탄 앞에 설 수 있었던 청춘을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 질투한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누가 노래 했던가?

나는 목숨 걸고 행진 해야할 임을 배우지 못해

이제사 그런 나를 위한 행진곡이라도 부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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