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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조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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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478회 작성일 18-01-22 18:56

본문

가사원 오전반을 마치고, 햇살이 좋아 걸었다.

혹시 오후반 일이 들어오지 않을까 전화기를 들여다보다

핞편, 들어오면 어쩔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무심코 호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는데,

받은 일당과 함께 뭔가 까슬까슬하고 우둘투둘한 것이 만져졌다.

조가비 껍데기 였다.

 

"엄마! 이거 예쁘다.!"


얼마 전 일을 빨리 마쳐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큰 아이와 함께

사천 비토 바닷가를 한바퀴 돌았다. 큰 아이는, 정말 아니길 기도했지만

어쩐일인지 나를 참 많이 닮았다. 제대로 직장 생활을 잘 못하는 것도

혼자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바닷가나 풍경을 찾아 다니는 것도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것도 닮았다. 다른 아이들은 중학생만 되어도

생긴다는 여자 친구가 아직도 없는지 큰 아이는 걸핏하면 전화가 와서

다 늙은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주머니에 삼천원 밖에 없어서

돈도 없는 녀석에게 국밥을 얻어 먹어가며 궁상도 지질이였지만

살짝 저물어가는 바닷가를 걷는 아들과 엄마는 연인처럼 웃음도 말도

많았다.

"야!  이거...보기도 싫어

이놈의 조가비 껍데기 까주느라 허리가 뽈라지삘라 한다."

"어 진짜로?  참 예쁜데?"

엷은 노을을 등지고 앉아 내미는 손이 부끄러울까봐

"아! 진짜네..우리 식당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색깔이 이쁘네" 하며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올 겨울에는 새로 산 롱 패딩만 입어서 오며 가며

만지작 거렸을텐데도 내 마음이 주머니에 들어가지 못했는지

오늘 처음 만지는 것처럼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전 몇 일 다니다 그만 둔 해물탕 집에선 가위와 집게를 들고,

아직도 다리 몇개가 살아서 기어나오려는 해물탕의 해물들을

일일이 잘라 주었다. 문어가 익기 전에 해물탕 남비를 빙 두른

조가비와 전복 부터 껍데기를 까주고,  아직 살았다고 반항하는

문어 다리에는 국자로 끓는 국물을 붓고 이미 죽은 다리부터

가위질을 했다. 굽힌 허리가 너무 아파서 허리를 펴고 싶을 때 쯤이면

껍데기를 담는 커다란 데야에 키 조개 껍질과 함께 가득하던 것이다.

찌든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엄마에게 바다를 보여 줄거라고 차를 몰고

나온 녀석이 색깔이 곱다고, 이쁘다고 건낸 조가비 껍질을 보고

펄펄 끓는 해물탕 김을 쐬며 땀이 짤짤 나던, 처음 온 집이라

사장에게 잘 보일거라고, 서툰 가위질을 능숙한체하며 허리 아팠던

생각만 할 수 있다니,

그때부터 나는 무심코 이 조가비 껍질을 만지작거리며 길을 걷고

차를 타고, 밥을 먹고 했던 것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조가비들이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조가비 껍질들이 그 안의 먹거리를 토하고는

아무 가치도 의미도 없어져 버린 것일까?

1992년 이였던가? 그 해 태어난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하필이면

내 아들이 된 그 아이가 스물 여섯 청년이 되어,

백수라고 엄마에게 갖은 구박을 다 받으면서도 엄마라고

그 바닷가에서 제일 예쁜 것인양

세상 온갖 추한 것 다 만진 손바닥에 건내주면, 하필이면!

 

사실은 만진다는 의식도 없이 내도록 어루만진 이 조가비 만큼도

녀석들을 소중하게 쓰다 듬어주지 못했다. 제 두껑이 바다를 지던

지게 였을까? 비료 포대에 감싸인 지겟살 같은 오돌토돌한

조개의 무늬가 처음 내 손바닥에 올 때보다 따뜻하다. 사람이 오래

만진 것들은 사람의 체온이 되어가는 것일까? 녀석들을 애지중지

이 조가비처럼 무심결에도 만지고 쓰다듬었더라면 녀석들도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애지중지 하지도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아이들의

품성은 가슴에 품은듯 따뜻하다. 작은 아이는 엄마가 없는 고종 동생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봐 그 아이들이 있는데서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손으로 내 팔을 살짝 잡는다. "엄마! 그 애들 앞에서 엄마를 부르는

게 너무 미안해!" 술을 한 잔 하며 작은 아이가 하던 말이 참 따뜻했다.

어제 잘린 식당에는 주말마다 알바 오는 설겆이 담당 언니가 있는데

큰 아들은 서울대를 작은 아들은 무슨 대학인가 의대를 다닌다고,

아이들이 장학금도 받고 학자금 대출도 받고 알바도 해서 돈도 그다지

들지 않는데도 알게 모르게 드는 돈이 많아서 식당 알바를 다닌다고 했다.

사실 부러웠지만 부러운 건 그 엄마가 아니라, 나중엔 기름일이나

뼈빠지는 노동 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그 아들들이 부러웠다.

나는 술만 취하면 아들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아이들은 내가 미안하다고만

하면 "엄마! 또 술 취했네" 한다. 엄마! 밤에 해장국집 다녀가면서

돈 벌어서 우리 과외도 시키고 했는데, 우리가 공부 않한거쟎아?

그래, 과외를 시켰었지.. 두 녀석 오십만원이였던가? 교대 다니는,

광우병 촛불 문화제에서 알게 되었던 여학생이 왔었다. 우리 식구가

아니면 무조건 짖는 우리 개가 그 여학생이 수업을 마치고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짖고 또 짖었지. 경상대학교 무슨 과였던가?

강사 선생네 집에 과외를 보내기도 했었지. 그랬던가? 나도 한다고 했던가?

밥도 제대로 챙겨 먹이지 못했던 기억만 왜 남는 것일까?

술 마시고 돌아다니느라 아이들에게서 온 전화를 제대로 받지도 못했던

기억만 남는 것일까? 녀석들은 술을 먹고 죽을거라고 강물에 걸어들어가다

119 구조대 차를 타고 온 몸이 물에 젖어서 돌아 온 나를 아직도 기억한다.

친구들 중엔 엄마가 버리고 간 아이들도 있는데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곁에 있어주어 고맙다고 한다.

남의 돈 벌어먹기 힘든데

더러운 꼴 못보는 엄마가 이 식당 저 식당 돌아 다니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의 밑에 들어가 돈 벌어 보니까 알겠다고 한다.

엄마가 새끼 낳았으면 키우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러던지, 저러던지, 그냥 엄마로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고맙다니,

 

서울대, 고대...용돈 선물,

아들아! 나도 그렇다. 나도

엄마 드라이브 시켜 준다고 바닷가에 데리고 가서 니가 준 조가비 말이다.

어느새 내 주머니에서 너를 실컷 어루만져 주지 못한 한을 풀어주는구나

정말 아주 옛날엔 조개 껍질이 돈이였다지

천년전인가 만년전인가

내 아들로 태어났던 네가 준 것이라

천년 후 만년 후

또 다시 이 나쁜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서

천만년 전의 용돈을 주는구나

고맙다 잘 쓸께.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백수로 있어도 사고 치지 않고

착하고, 좀 뚱뚱해졌지만 건강해주어 고맙다.

나도 너희들이 그냥 내 아들이기만 해도 고맙다.

바닷길이 생긴다는 작은 섬을 향해 걸어가며

이제는 바닷속을 비추러 가는 것 같은 저녁해를

같이 바라봐 주어 고맙다.

네가 본 예쁜 바닷가 마다 차를 세우고

여기 보라, 저기 보라

이게 이쁘다, 저게 기가 막힌다.

엄마! 살짝 옆으로 서보라.

그기 계단에 앉아보라 사진 찍어 주어 고맙다.

엄마! 소주 딱 반병이다. 더 마시면 않되!

소주병 뺏아 감춰주어 고맙고

엄마가 해주는 맛도 없는 음식들

맛있게 먹어주어 고맙다.

세상을 바꾸기는 힘들어도

마음을 바꾸기는 그런데로 쉽다.

시를 쓰서 좋은 건,

마음 바꾸기가 잘 되어서 좋다.

어떤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다보니

어떤 문제에 대해 다른 마음을 가지는 훈련이 저절로 되버린 것 같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집게로 집어 버리는 조가비가

내 호주머니에서 손난로보다 더 따뜻한 기억이 되고 의미가 되듯 말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최저 시급을 올려 주어도 제대로 일한 돈을 받지 못하던 시절보다 더 불만족

스러워 한다면, 이 시절 보자고 피터지게 싸운 젊음들은 투명의 아우성에 지나지

않듯 말이다.

 

늘 다른 곳에 뜨겁고,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살아도

그림자라도 함께 해주어 고맙다니,

오늘 받은 일당은 곧 쓰버리겠지만

네가 준 조가비는 항상 내 주머니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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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kgs7158님의 댓글

profile_image kgs7158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얀 조가비 노래가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조은글 잘 읽고갑니다
꿈꾸는 봄은 오기가 힘듭가돕니다 ㅎ
내일부터 또 엄청 추위가 온다합니다
조심들 하소서, 환절기애도,,

공덕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궁상 끝판 글에 머물러 주시고 댓글까지 달아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곳 일기 편지방에서 자주 뵙는군요.
전 초등학생적부터 돈이 생기면 쓰지도 않을거면서 공책이나 편지지를 사는
버릇이 있었어요.  얼마전에도 다이소에 가서 괜히 꽃 편지지 한 묶음을 사서
내버려 두고 있어요.

누가 댓글 한 줄 달면 이런 저런 말이 많은 것도
편지질 하던 것이 몸에 붙어서 그래요.

말 많다고 욕하지 마시길 바래요.
저의 누추한 하루에 들러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셀레김정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셀레김정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요즘 저는 공덕수시인님의 글에 흠뻑 빠졌습니다
매일을 시인님의 글이 올라오길 기다린답니다

오늘 올리신 글을 읽으면서
시인님 큰아들보다 한살더 많은 제 아들을 많이 비교해 봤답니다
아드님의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예쁘네요
제 아들은 지 여자친구 챙기기만 바쁘거든요 ㅎㅎ

아뭏든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공덕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녕하세요. 셀레님!
일케 좋게 생각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걱정 무지무지 되요.
여자 친구도 직장도 생기지 않는 제 아들
제가 되도 않는 글줄 잡고 있느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저 모양이 되었나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렸을 때 정도 제대로 주지 못해, 그 그리움이 남아서
저렇게 다 큰 녀석이 엄마 엄마 그러나 싶기도 하고요.

귀한 발걸음 무지무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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