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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이는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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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8회 작성일 18-02-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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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 전, 겨울 깊기 전에 늙어가는 친정 엄마와 함께 커 가는 쌍둥이 조카들에게 선물 했던 실내용 텐트 3개 때문에

보일러도 때지 않고 지내는 낡은 빌라가 캠핑장이 되었다. 포항 실내 체육관에 만들어졌던 캠핑장의 텐트들이 철거

되었는지 문득 궁금도, 걱정도 되어졌다. 어릴 때 쌍둥이라고 무조건 같은 옷만 사입히던 할머니의 사랑도 이제 조금

약발이 떨어졌는지, 서로 따로 자고 싶다는 쌍둥이 조카들에게 실내용 텐트는 구원의 성 같다. 이제 일란성의

삶에도 사생활이 필요해질만큼 딸아이들이 자란 것이다. 지난 가을 담보 대출을 내어서 보냈던 오십만원에서도

십일조를 떼어 헌금했던 할머니의 깨알 같은 믿음 덕분인지 비닐 뜯긴 비닐하우스 같은 추운 집에서도 아이들은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이제는 제법 기집테가 올라 인터넷 쇼핑몰에 나오는 속옷이나 화장품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설날 하루 전에 내려와서 엄마가 술 좋아하는 딸을 위해 한 병 사두었던 소주를 마시고, 낡은 차처럼

그만 퍼져버린 나는 모처럼 엄마와 함께 실내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큰 아이는

미용고에 작은 아이는 간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작은 아이는 장학금 오십만원을 받게 되었다고, 피부

미용사 자격증을 따는 큰 아이가 해주는 미백 마사지를 몇 번 받았더니 피부가 하얘졌다는 자랑이

꺼져가는 캠프 파이어의 불씨처럼 타닥타닥 다 탄 장작 같은 졸음의 표면에서 깜빡깜빡 타올랐다. 다리가 아파서

사천 어딘가 무허가 약국에서 사사로 지어먹는 신약이 독해서 얼굴이 보톡스 맞은 것처럼 팽팽하게 부어 오른,

조금만 걷거나 움직이면 바람을 넣는 풍선처럼 숨을 쌕쌕거리는 늙은 엄마가 "그래도 저것들 에미한테 고맙다.

너그 아부지도 그래 가시고, 내가 저것들이라도 있응께 명을 잇수고 살지, 이 적막한 집에 저래 예삔 피부치들을

슬어 놓고 간기 고맙다. 못난 내 자슥 싫어 갔신께 좋은 배필 만나서 잘 살고 있었으모 조컷다. "

속으론 엄마 속에 깃든 성령의 불빛이 참 밝다 싶으면서도 "움디 것은 년, 삼시 세판이라 캤응께

두번 실패했으니까 세번째는 제대로 만났것지" 하고 더 몰릴곳도 없는 절벽 같은 범사에 담쟁이처럼

뻗아나가는 감사에 소금치는 소리를 했다. "그래도 사람이고 정이고 놓을 줄 모르는 우리 종자 않 닮고

돌도 되지 않은 핏덩이들을 버리고 가서 이날 이때까지 뒤도 한 번 안 돌아보는 독한 종자랑 섞이서

저것들도 에미 없이 저리 잘 큰기다. 엄마."

 

작년에 큰아버지를 보내고, 바닷가 마을 산 밑 동네 텅빈 집에서 혼자 지내시는 팔순의 큰 어머니는

어젯밤 전화가 와서 엄마가 부럽다고 하셨다. "그래도 너그 엄마는 쌍둥이들이라도 있응께 그리

적막강산은 아니다 아이가? 너그 사춘들은 바뿌다고 하룻밤 자고 가지도 않고, 내는 참 외롭다"

낮에 잠깐 들러서 봉투에 돈 오만원을 넣어드리고, 관절로 엄지가 거꾸로 붙은듯한 큰어머니가

서운 하실까봐 부른 배에 억지로 나물밥을 채워넣고 돌아왔더니 고맙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올 대목밑에는 오빠가 돈을 터뜨리고,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가느라 교복도 맞추고, 대전 아제라

불리던 오촌 아제가 돌아가시고, 온 집안 둘러도 사 짜 하나 없는 집안에도 인사 칠 일은 많아서

오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 달려가서 울지 않으면 숨통에 바람들지 못할 것 같았다고 코맹맹이

소리로 울먹이던 엄마의 십자가가 큰어머니에게 부러움이라니, 사람은 곁이 재산이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젊어서부터 큰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는 없는 성품으로 큰 어머니를 괴롭혀 왔다.

배를 탄다고 몇 해를 집을 비우시더니 동네 과부와 눈이 맞아서 몇 해를 큰 어미를 때리고 미워하시더니

말년에는 간암을 앓으며 또 일천간장을 다 녹이시다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큰어머니에겐 그렇게

적막한 빈 자리라니

 

"야야! 너무 좋다. 아들보다 딸이라더마, 우리 딸이 엄마한테 집을 세 채나 사주고, 가스나들도

올매나 좋아 죽는고 모린다. 밑에 전기장판 틀어놓고 한 삼십분 있으모 더버갖고 옷을 벗어야

할 판이라..내가 이것들 같이 자기 싫타사서 우짜꼬 싶어 기도 했더마, 니가 딱 저나가 와서

이 거를 들미기는기라,. 참말로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기라,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인기라"
" 뭐시라카노..하나님이 살아 계시모, 좀 돈 많은 사람한테 역사 하시야지, 내것이 없이사는

딸년한테 역사하시는기 말이되나? 하나님 타령 듣기 싫다"

사실은 십일조 같은 것 하지 말고 집에 보일러나 켜고 살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살아도 살아도 겨울 뿐인 엄마에게 번듯하게 척 기적 한 자락 보여줄 수 없는 가난한 하나님이

엄마에게 보일러보다 더 따뜻한 온기라니, 엄마의 믿음을 더 이상 괴롭히기 싫었다.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는데 오빠는 노름을 했다며 이천오백만원 빚이 졌다고 엄마 몰래 오백만원만 빌려달라고

내게 전화가 온 것이다. "저노무기 사람이가? 가스나들 고등학교 보낸다꼬 엄마는 동네방네 구걸을

하다시피 학원비야 교복비야 돌려낸다고 피를 말리는데, 노름이라니..이 씨발끼 오빠라" 오빠

멱살을 비틀듯 소주병 두껑을 따며 "뭐어? 하나님이 살아 있다꼬? 살아 있다 그래, 살아 있으모

뭐하낀데 넙죽넙죽 저런 다리 아픈 할마시 돈을 받아뭄시롱, 해주는기 뭐있네? "

 

"됐다 몰아붙이지 마라..지도 무슨 낙이 있것네? 그리라도 숨통 트고 살아 있으모 된다."

해도 해도 너무한 아들 감싸듯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을 감싸는 우리 엄마의 품은 얼마나 큰 것일까?

무슨 까닭인지 오른쪽 네번째 손가락이 잘 펴지지도 구부러지지도 않는 딸에게 볼펜과 종이를 내밀면서

식구들의 이름과 기도 제목을 쓰달라는 엄마. 아예 네번째 손가락을 쭉 펴고 엄마가 불러주는 기도 내용들을

적어주며 슬그머니 큰 아이 취업 부탁도 덤으로 올려 놓는 나,

 

어쩌면 믿음이란 거대한 교회 건물 같은 것이 아니라

난방 꺼진 집안에 펼치는 얇은 텐트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바람을 막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우풍을 가려 생의 온기를 지켜가는 일,

지상에 거주할 크고 단단한 건축물이 아니라

지상을 다녀가는 자의 얇고 가벼운 바람막이를 지고 다니는 일

홑겹 두께와 갈대처럼 허술한 골조 때문에 깊이 잠들수 없어서

늘 깨어 있게 되는

순순간간 펄럭이며 신의 입김에 반응하는 민감한 보호막을 갖는 일,

신의 전지전능으로 사람의 남루한 초막을 함부로 무너뜨리지 않는

생의 주파수에 맞춰나가는 하모니카처럼 뜨겁고 가느다란 교감을

유지해나가는 일, 펄럭이는 천국을 지상에 옮겨 놓고 어둠과 바람을

견디는 일

집이 들판 같은 가난이 실내에 들인 1인용의 교회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를 마저 마치지 못한 엄마가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에 관해

식당 다니며 시 쓴다고 시를 부끄럽게 만드는 무식한 딸과

밤새 소곤소곤 토론하는 소리가 잠 못 드신 하나님의 귀에

들리는, 십일조, 헌금 봉투에 적힌 이름과 기도 제목을

목사님이 대신 읽어주지 않아도, 환희 비치는 불빛처럼

잘 들리는 그런 교회가 믿음 이였으면 나는 좋겠다.

 

우리 딸이 집을 세 채나 사줬다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세 채에 십만원도 들지 않은 탠트를 택배로 받고

들뜬 목소리로 감사 전화를 하듯,

집을 팔아 여자 때문에 생긴 빚을 갚아 주었더니

늙으막에 노름을 했다고 또 한 껀 터뜨려 놓는 아들

그런 낙이라도 주셔서 목숨 부지 시켜 주셔서 감사하는

그런 믿음으로 건축한 어머니의 성전에서 하룻밤 묵고 나니

내 시름도 십자가를 본 드라큐라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것 같다.

 

감사하다. 그 모든 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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