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식사 > 편지·일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편지·일기

  • HOME
  • 창작의 향기
  • 편지·일기

☞ 舊. 편지/일기    ♨ 맞춤법검사기

  

▷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오랜 식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09회 작성일 18-02-17 05:07

본문

어떤 기사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오래되어 늙는다는 것과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먹는다는 것은 내안에 나이, 그러니까 시간을 들인다는 관점이고, 늙는다는, 그야말로 오래 되어 낡는다는 관점이라고 했다. 내 짧은 소견에 그것은 중요한 인식의 차이 인 것 같은데,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은 냉담한 것 같았다. 설날 먹는 떡국이나 음식들처럼 먹고 나면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어 나를 이루게 되는 나이, 우리네의 발상은 매우 긍정적이고 시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는 것 같다. 그저 내가 작년보다 더 오래 되어지고, 그래서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더 낡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먹을 맛도 살아갈 멋대가리도 없는 말 같다. 그것이 기독교적이건 희랍적이건 삶이 끝난 이후의 어떤 세계를 위해 삶을 하찮고 부질 없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은 싯적이지 못한, 그러면서 그리 합리적이지도 못한 인식 같다. 어떤 관점이 옳건 간에 나의 나이는 한 살이 더 늘었다. 그래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내 나이가 낡지 않고, 먹어서 내 영혼의 영양이 풍부해진 것이였으면 좋겠다. 전혀 우울할 것도 씁쓸할 것도 없이 맛 있게 나이를 먹고 그래서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많이 먹으면 여느 음식들처럼 체하는 것이 나이지만 그것도 야무지게 잘 씹어 먹으면 고소하고 물리지 않는 것이 내 나이였으면 좋겠다. 감나무의 감이 홍시가 되는 것은 병든 것이 아니라 제 철에 맞게 건강한 것이다.  가을이 깊었는데도 땡감에 머물러서 이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병든 것이다. 감은 시간을 제대로 먹고 소화 시켜서 그의 시간을 모두 나누어 먹을수 있게 된 것이다. 일부러 바싹 골아버린 다리에 청바지를 발라 입고, 먹은 시간이 없어서 기아 상태인 사람들의 흉내를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이를 잘 먹어서 소화를 잘 시키면 칙칙하던 머릿빛은 신성해져서 은빛이 되고,  피부는 아름다운 주름을 가지며 넉넉해지고, 몸은 잘 묶은 활처럼 둥글게 휘어지는 것이다.

나이를 먹은 것을 추하고 무능하게 인식하는 것은, 다만 어떤 물질이 더 오래 시간에 노출 되었다고 바라보는 딱딱하고 빈곤한 발상이다.

그러면서 멋지게 낡은 엔틱 가구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한 때 유행처럼 자신을 존재 시키고 싶은 것 같다. 내가 화가라면 새로 산, 사람의 발과 지친 걸음이 녹을 늘리고 주름을 만들지 않은 다만 신발 모양을 한 공산품을 그리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화가라면 발이라는 시간을 먹고, 깊어지고 풍요로워진 직립 보행의 나이를 그릴 것 같다. 한 때 나이를 부족하게 먹어서 풋 사과처럼 시고 딱딱해보지 않았던가? 모두 그 시간의 맛에 머물러 있다면 누가 가을이 왔다가 사과를 따먹겠는가?  굳이 로맨스 그레이를 꿈꿀것도 없이 우리는 내가 먹은 시간의 맛을 음미하고 느끼고, 일용할 양식처럼 두 손 모아 감사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내가 먹는 나이를 맛있게 느끼고 그기에 대해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이 젋게 당당하게 늙는 비결인 것 같다. 늙어도 젊은이 같은 로맨스를 꿈꾸는 일이 나쁠 것도 없지만 나이를 열 그릇 먹은 사람과 백그릇 먹은 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면 나이값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오로지 그대만을 사랑하기에 나는 나이를 너무 과식 한 것이다. 팽팽하던 피부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튕겨 나가던 산들 바람과 햇볕과 시간의 감촉들에도 오르가즘이 느껴지는 황홀한 나이의 효능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내가 더 먹을 수 없어서 더 애틋하고 소중하며 가슴 뛰는 나이의 맛과 느낌들,

우리는 드디어 내게 주어진 세계를 제대로 발견하고, 이 시공과 열렬한 사랑에 빠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모금의 카페인과 한 잔의 카페인이 우리 신체에 하는 작용들이 다르듯,  한 입의 나이와 한 알 다 먹어가는 나이는 우리에게 다른 효능을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린 벌써 잠이 잘 오지 않고, 얼굴이 잘 붉어지며, 별 것도 아닌 일에 심장이 뛰고 있지 않은가? 우린 드디어 세계와 온 우주와의 사랑에 빠져 가는 것이다. 그대, 너,  시간의 해변에 퇴적된 모래알 중 하나, 한 조각 사금파리처럼 이 세상 어딘가에 박혀 있는 상대가 아니라 이 세상과 우주와 신과의 사랑에 빠지려면, 고 영양의 나이를 잘 먹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와 풍습을 가졌었다.  어른은 젊은이보다 신성하고 영양가 있는 존재여서 먹을 것도 어른이 먼저 드시고, 어른은 안전하고 따뜻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도 나도 늙은이로 보일까봐 야단법석들이다. 늙은이는 폐지 줍는 리어카를 끌고, 아무리 크락션을 울려도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처음보는 젊은이들에게 반말을 하고 정치적인 견해는 스무살 때와 나이를 두배로 드신 지금과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다. 젊은이들의 세금을 축내며, 하루라도 더 숨을 연장할거라고 전전긍긍하는 젊은이들과 별종의 인류다. 퇴화에서 죽음에 가가워진 인류다. 그것은 나이를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서 그런 것이다. 탐욕과 연연을 버리고, 범사에 허기지지 않게 배 부르게 나이를

먹지 못해서, 억지로 나이를 먹고 나이의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탐욕적으로 집착하고 연연하는, 먹은 나이가 온 몸에 골고루 퍼지지 못해 범사에 식탐을 주체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다. 나이에 사약에 들어가는 성분이 있다는 것 사실이다. 그러나 나이는 먹어도 죽고 먹지 못해도 죽는 것이다. 그러나 산 동안은 먹어야 한다. 먹으면 먹을수록, 곧 이별해야할 이 세상에 대해서 애틋해지는 나이를 잘 먹자. 부질없는 집착으로 세상에게 부담 주지 말고, 말 없이 주먹밥이라도 싸서 손에 쥐어주듯, 어머니가 아들의 휴대폰 지갑에 슬쩍 지폐 한 장을 넣어주듯, 너를 위해 곧 떠날 자의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문득 떠나간 내 자리에 먹을 나이가 남은 자들이 놓아 준 국화 한 송이 같은 그리움이 되는 것으로 족하며 끝내 사랑하는 연인들의 라스트 씬을 직어야 하는 것이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270건 91 페이지
편지·일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57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0 0 03-07
156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2 0 03-06
156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8 0 03-05
156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 0 03-04
156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5 0 03-03
1565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4 0 03-03
1564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7 0 03-03
156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 0 03-02
156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6 0 03-02
1561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5 0 03-01
1560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3 0 03-01
155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9 0 02-28
155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5 0 02-27
155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2 0 02-26
1556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7 0 02-26
155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1 0 02-25
155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0 0 02-24
1553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2 0 02-24
155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7 0 02-23
155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1 0 02-22
1550
또 새 일터 댓글+ 2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0 0 02-22
154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1 0 02-21
154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1 0 02-20
1547 이혜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1 0 02-20
1546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22 0 02-20
154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1 0 02-19
154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6 0 02-18
1543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2 0 02-18
154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1 0 02-17
열람중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0 0 02-17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