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나의 담임 > 편지·일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편지·일기

  • HOME
  • 창작의 향기
  • 편지·일기

☞ 舊. 편지/일기    ♨ 맞춤법검사기

  

▷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가난, 나의 담임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22회 작성일 18-02-20 08:22

본문

 

 

난 대중탕을 잘 가지 않는다. 게을러서 그렇다. 입욕료가 5천원이나 하니, 우리집 한 달 수도세의 절반이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최소한 세 시간은 개겨야 한다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고,  별로 뜨겁지 않은 황토 찜질방에서 삼십분을 자더라도 한 시간은 뭉기적

거려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곳에서 내가 보는 여자들은 거의 무균의 존재들이다. 얼마나 물을 철철 버려가며 문지르고

씻고, 껍데기를 벗겨 대는지, 그 벗긴 껍데기에 푸른 것 노란 것, 벌건 것, 어찌나 발라대는지, 그 바른 것 또 씻어내느라 철철철

얼마나 물을 흘려 대는지, 집집마다 샤워 시설들이 있어서 날마다 거품 내서 씻고 헹구고 할 것인데 달목욕 끊어서 피부가 붉어지

도록 문질러 대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많이 오염되긴 된 모양이다. 난 얼마나 지저분한 사람인지 뭘 씻어야 할지도 모르고 목욕탕에 가서

머리 감고 샤워하고 열탕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아무 할 일이 없어진다. 보일러 기름이 떨어지면 몇 일은 온수가 나오지 않아

온 몸에 빼인 음식 냄새를 씻으러 가긴 가지만 목욕탕에서 흘려 보내는 물도 시간도 아깝다.  기름 보일러를 때면 택시를 타고 달리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미터기가 찰칵찰칵 올라간다. 그래서 세수 한 물로 머리를 적시고 머리 감은 물로 욕실 바닥 씻고, 머리 헹군 물로 발 씻고, 발 씻은 물로 빨래 불리고, 물은 만능 엔터네이먼트처럼 다방면으로 유능해진다. 그렇게 한 다라이의 물은 내 곁에 오래 머물면서

제 구실을 톡톡히 하고는 완전연소된 시간처럼 내 곁을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몇 달 전 시에서 깔아 준 수도관이 노화 되어서 수압이 낮아 물이 약숫물처럼 졸졸졸 흐를때는 바가지를 들고 한 동안 물을 받들어야 세수라도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럴 땐 물을 받는 일이 신탁을 받는 일처럼 성스럽게 느껴진다. 어떤면에서 보나 가난은 그렇게 민망하고 궁상맞은 불청객이 아니라 주어진 것들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아이들이 뱃속에서 부터 영어도 배우고, 글자도 배우는 세상에서 돈 내고도 배울 수 없는 과목의 담임인 것이다. 맑은 날에도

우산통에 꽂혀 있는 멀쩡한 우산들, 화장실 개수대에 버려져 있는 팔목 시계들, 그렇게 자라서 나중에는 낯선 길에 버린 엄마들,...다음 비오는 날에 새 우산을 들고, 돌아보지 않는 우산들,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내가 물을 쓰듯 돈을 쓴다면 모두에게 짠돌이가 될 것이다. 몸에서 5%만 빠져 나가도 몸이 붓고,

20%가 빠져 나가면 생명을 잃게 되는 물의 진가를 졸졸졸 가르키는 가난의 목소리는 참으로 청아하다. 그뿐이겠는가? 가난은 삶을 간결하고 날씬하게 만든다. 꼭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게 만들고, 꼭 사야할 것만 사게 만들고, 꼭 가야 할 곳만 가게 만든다. 비대한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녹은 고무처럼 늘어지게 만들지 않는다. 밥벌이 하는 것을 빼면 돈이 연료처럼 들어가는 관계와 인연의 분산스러움을 피하게 만들어준다. 가난은 여행을 허락하지 않지만 산책을 허락한다.  어쩌다 짬이 나서 발품으로 가까운 곳을 산책하다보면 이 가난한 시공이 나의 여행지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멀리가지 않아도 멀리가야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멀리가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만들어준다. 남편과 함께 긴긴 강뚝길을 걷다보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 이 강뚝길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기에도 일몰에 잠기는 산 그림자가 있고,  산을 파헤치듯 산그림자를 파헤치며 길을 내는 강오리떼가 있고, 겨울 바람이 쓰다듬는 늙은 갈풀들이 있고, 숯더미에 잦아드는 불씨 같은 불빛들이 있는 것이다. 돌아오기 싫은 절경처럼, 나 또한 오랫동안 이 가난의 절경을 두고 어디론가 돌아가기 싫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여유, 여유 하며 비싼 커피를 마시고, 여행을 떠나지만 여유는 돈의 선물이 아니라 의지의 선물이다. 밤이 오면 하룻밤 자고 가야겠다. 숨이 차면 한 박자 쉬고 가야겠다, 내가 나의 속도를 조절하고 간섭하고

즐기려는 의지를 가지면 살면서 하는 다른 일들처럼 실행에 옮겨지는 일이다. 가난은 있는 것은 유지하려는 부의 속성이 여유롭고자 하는 의지를 방해한다고 나에게 가르친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진단하는 것들, 늦잠을 자고, 게으르고 내일을 염두에 두지 않는것, 어쩌면 가난은 사람에게 두둑한 배짱을 가르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돈에 덜 끄달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서울 어느 클럽에서 8000만원짜리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멋진 일이다. 팔천만원짜리를 사주어 그것을 팔고 신이 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작은 틈하나 없이 맞물려 있는 경제는 전체적으로 신이나서 회전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개고생의 톱니바퀴라는 말이다. 술은 1300원짜리 두어 병만 마셔도 기분 좋게 취하고, 격조 있고 품격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마시면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본질은 과시욕이다. 술맛을 다르게 느껴지게 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너희들에게 쏠 수 있다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비속어로 가오에 대한 집착이다.  팔천만원이면 소줏잔 한 잔에 몇 백만원 하는 것인가?  부자의 자식들은 부자가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부자가 된 부모의 유전자를 타고 났기 때문에 가진 밑천도 남다르지만 성향이 부자가 되기에 적합할 것이다. 그들이 괜히 팔천만원짜리 술을 뿌리지는 않을 것이다. 허영이나 과시도 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과시, 과욕, 과한것들의 굴레에 평생 매여서 그렇게 아니면 사는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되고 그 신념의 독성을 주변에 팔천만원짜리 샴페인을 나누어주며 퍼뜨리는 것이다.

 

가난은 나에게 내 가난의 색깔을 선택하라고, 이제는 말한다.

1학년이 지나고 이학년이 지나고 삼학년이 되면 진로를 선택하라고 말하듯이 이제는 네 가난이 청빈인지 거지의 손바닥처럼 검은 가난인지 골라 보라고 말한다. 어제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주택 공사 임대 아파트에서 최신식 아우디가 그 우아한 눈들을 끔뻑이며 나오는 것을 보았다. 450만원에 산 모닝을 끌고 뒤를 따르던 아이가 말했다."엄마 완전 최신상 아우디네.. 저 아파트에 외제차 의외로 많던데"

저 차에서 내리면 그 사람이 달리 보이는 것일까? 달라보이긴 달라 보인다. 거지도 아니고, 저런 비싼차 사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서 아프고 무능한 이웃들에게 돌려져야할 나랏돈을 가로채는 것을 보니 더럽게도 찌질하게도 보인다. 아이들 키우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일이 뼈가 아파서 작은 아이 취업하자 마자 동사무소로 달려가서 "이제 아이들 다 컸으니까 그거 좀 빼주세요, 이제 기초 생활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이제껏 고마웠지만, 이제는 알아서 살께요." 했던 내가  황제처럼 느껴진다. 어떤 대통령의 연설처럼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가난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그것이다. 부끄러움 말이다. 사지멀쩡하고 정신 똑 바른 내가 왜 남의 돈을 빌어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잠은 텐트에서도 잘 수 있고,  김에다 김치 한 가닥이면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고, 뭔 짓을 한들 내 한 목숨 풀칠 못할 것인가?  내가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는다고 달라지는 것을 자부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서로 그런 것을 보며 으시대고 인정해주고, 우러러 볼 것 같은 사람들하고는 어울리지 않으면 되고 엮이지 않으면 된다. 사람은 어차피 혼자다. 그런 종들과 노닥거릴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나 같이 살다간 사람들을 찾아 벗 삼으면 되고, 조용한 강뚝길이라도 걸으며 오고 가는 계절과 벗하면 되는 것이다.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새벽에 원인 모르게 죽어간 49살 내 친구를 보아도 그렇다. 모든게 잠깐이라고 가난은 가르친다. 한 방울 이슬에 먼지와 얼룩을 묻히지 말라고 가난은 가르친다. 아무것에도 연연하지 말라고, 이름에도 재물에도 심지어는 목숨에도 연연치 말라고, 모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것들이라고, 없이 사는 것은 가난이 내게 시키는 훈련 같은 것이다. 패션으로 내 안의 무엇을 바꿀 것인가? 자꾸 나의 표면으로 나가지 말라고 가난은 가르친다. 화장품 장사하는 친구에게 인사로 산 화장품 한 셑트로 이년을 버티고 살아도 내 얼굴 썩지 않았다. 좀 썩었다면 따뜻하게 웃고, 바라봐주고, 고마워해주고, 사랑해주면 또 살아나는 것이 얼굴이다. 돈이 아까워서 버리고 사지 않은 것이 아닌다.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사지 않은 것이다. 가난은 자꾸 나에게 여름도 아닌데 홀가분을 입힌다. 가벼움을 바르게 한다. 나는 지금 비린내 나는 몸통을 빠져 나온 깃털 같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66건 1 페이지
편지·일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66
그령 그령 댓글+ 1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2 2 01-14
165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1 1 01-15
164
시,시해진다. 댓글+ 2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9 1 01-23
163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2 0 07-10
162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7 0 08-21
161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 0 09-17
160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6 0 10-27
159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7 0 12-14
158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1 0 02-17
157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3 0 03-30
156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4 0 04-23
155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6 0 06-24
154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8 0 09-18
153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3 0 07-15
152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6 0 08-24
151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9 0 09-18
150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6 0 10-29
149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5 0 12-18
148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3 0 02-18
147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9 0 03-31
146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5 0 04-25
145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4 0 06-25
144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7 0 10-02
143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4 0 01-18
142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1 0 07-15
141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80 0 08-25
140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2 0 09-25
139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97 0 11-02
138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5 0 12-21
열람중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23 0 02-20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