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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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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3회 작성일 18-03-03 14:17

본문

어제는 술에 취해 무척 긴,

사실은 내가 별로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의견을 길게 썼다.

깨고보니 부끄럽다.

 

이제 이 한낮의 나는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열시에서 세시까지 하는 오전 반을 월요일부터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밥집이라고 했다.

술이나 특별한 메뉴 없이 밥과 반찬만 파는 식당을 밥집이라고 부른다.

한달에 60만원을 줄거라고 했고, 일요일마다 쉰다고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식도락이 끼여들지 않은 순수한 허기들이 둘러 앉고

나는 맑은 땀방울을 흘리며 소주 고리처럼

반짝이는 이마를 갖게 될 것이다.

따뜻한 엽서 같은 장면으로 나를 위로하지만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곳에서 세시까지 일하고 다섯시가 되면

횟집을 가는 것이다.  줄돔들이 제 몸에서 퉁퉁 불어가는

바코드를 벗으며 제 생의 유통을 끝내는 횟집에서

받는 내 저녁의 값은 오만원이다. 그기다

가끔 손님이 술잔에 감아주는 천만원이 더해지는

날도 있다. 어제는 삼만원이나 팁을 받아서

일당은 살림에 쓰고, 삼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여유를 어디다 쓰야 할지 몰라서 틈만 나면

구겨진 만원짜리 세장을 들여다본다.

목욕탕을 가볼까, 시내 나가서 싸구려 옷을

사볼까,  작년에 떨어진 커피콩을 한 봉지

사볼까, 이젠 노안이 와서 잘 보이지도 않는

책을 한 권 사볼까? 삼만원에 이렇게 많이

꾸어볼 수 있는 꿈은 참 싸구려인 모양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걱정이 많을 것인가?

삼만원도 어디 쓸지 몰라 생각이 분분한데

삼억이고, 삼십억이라면 무엇을 해볼까

무엇을 먹어볼까, 누구를 만나볼까 얼마나

머릿속이 어지럽겠는가?

신이 내게 돈을 적게 주시는 것은

내 머리가 단순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올해도 작년 정월대보름에 태우지 못한 달집은

우리 동네 공터에 그대로 널부러져 있다.

조류 독감 때문이라고 작년에 들었는데

새들의 독감은 참 오래도 가는가보다.

정월 대보름마다 남편의 속옷을 가지러 오시던

시어머니는 액이 그의 체액이라 믿으셨던 것 같다.

달집을 태우지 못해서 집집마다 그 많은 액들은

다 어쩔것인가? 새들의 독감이 빨리 나아서

하룻밤도 묵지 않는 달의 집을 태워서

달이 한 해 동안 야근을 하며 몸에 걸쳤던

어둠에 스며든 진액들을 모두 태웠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위해

혹은 무엇인가를 위해

밥도 돈도 아닌 뜻을 위해

한 생애 그르친 사람들은

다 한가닥씩, 잘 갈린 칼날의 서늘함을 품고 산다.

나날의 누추로 기운 옷을 입고

머리를 엉클고 살아도

자신의 얼굴이 비칠 만큼

예리하게 닦인 극한의 결기에

스스로 베이며 사는 것이다.

칼날이 길인 생이라면

칼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벼르다벼르다 칼집으로 돌아갈지라도

숫돌에 잠을 비비며

검은 침을 흘리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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