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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3회 작성일 18-03-30 09:15본문
새 카드가 나와서 눈사람 친구에게 밥을 사고 옷을 샀다.
눈 사람 친구에게도 하나 사주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맞는 옷이 없었다.
왠지 눈사람 친구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서 전화를 한 것은 잘 한 일인 것 같다.
내가 믿지 못하고 대포 통장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 사실 나는 그녀가 그 부분을 알면서도 말꺼내지 말기를 바랬지만
그녀는 그 부분만큼은 확실히 알고 싶은지 계속 그 부분을 말했다.
그때 따라 우리가 만나면 늘 먹는 아쿠찜은 왜 그리 맛이 없는지
어떻게 그렇게 맛 없는 음식으로 음식점 차릴 생각을 한 것인지
나는 그만 젓가락을 탁 소리가 나도록 놓고 그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래! 난 그래! 따지고 보면 널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믿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고 그기에 대해 변명하는게
싫어서 전화 안받았다. 됐니? 그냥 넘어가주면 안되나? 내가 사실은
작은 것이라도 잘못되고 손해보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는 속물이라고
그렇게 속시원히 밝히고 싶니?"
우리는 봄볕에 얼었던 살을 녹이며 흘러가는 남강가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녀가 한모금 피다 주는 담배를 몇 달만에 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한 모금 피다 주는 담배 말고는 담배를 피지 않으니 술과 담배가
기운을 합해서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음악이 듣고 싶어서 멜론을 켰는데
하필이면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이나 짧은 처녀 시절
유행하던 디스코 음악이 나왔다. 한참을 걸어서 당도한 촉석루 맞은 편
대숲에는 저녁이 오고, 저녁을 피해 사람들은 집으로 가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갑자기 춤을 추었다. 그리고 눈사람에게도 추라고 했다. 그 무렵 웰라폼이나
무스를 발라서 머리를 닭벼슬처럼 세우고 나이트 클럽에 가서 추었던 춤을
추었다. 눈사람이 저물어가는 강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다 깔깔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옷가게 주인이 그 천을 프라다 원단이라고 불렀다.
내가 그 천을 고른 것은 개를 안아도 개털이 붙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아이들도 그런 천으로 된 옷들을 많이 고른다.
녀석들도 어렸을 때부터 개털과 신경전을 벌이며 살았기 때문이다.
개는 늙었다.
그래서 털도 더 많이 빠지는 것 같다.
애견 미용사에게 데리고 가고 싶어도
마취를 시킬까봐 아이들이 결사 반대를 한다.
성질이 더러워서 모르는 사람에게 가만히 몸을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늙은 개를 마취 시켜서 개가 깨어나지 않을까봐 라는
악몽을 녀석들은 지레 꾸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만 보면 껴안고 뽀뽀를 하느라 개를 몹시 괴롭히는데
아이들은 늙은 개를 학대한다고 나를 나무란다.
개털을 깍히는 것보다
털을 갈아 입을 수 있는 내가 개털이 붙지 않는 옷을 사는 것이다.
개털이 붙지 않을 것 같은 프라다 원단의 옷은 코트처럼 무릎까지 덮고
그것 하나만 걸치면 뱃살도, 밥을 많이 먹었을 때 오는 포만감과
몸이 옷 밖으로 쏟아져 나오려는 느낌도 모두 가릴 수 있다.
캔버스 신발을 신고 스키니 바지를 입으면 참 이쁠 것 같은데
하얗게 씻어서 햇볕에 꼬들꼬들 말린 캔버스 운동화를 참 좋아하는 나는
키가 좀 컸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하히힐을 신고는 오분도 걷지 못하는
내가 키가 작다는 것은 다른 모든 나의 신체 조건들처럼 더 이상 더 나아
지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무엇을 입어도 이 봄에
나는 갈데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 다만 오전반 일을 마치고 오후반
일하는 집을 찾아 갈 때 눈부신 봄볕과 벌써 하롱하롱 지는 꽃비를 맞고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과 개털이 붙지 않을 것 같은
프라다 원단 봄 코트는 궁합이 잘 맞을듯 하다. 아! 출근 해야겠다.
개털이 붙지 않는 프라다 원단을 입고 출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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