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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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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5회 작성일 18-04-10 09:07

본문

어제는 낮사장이 한 무리의 손님을 이끌고 내가 밤에 일하는 호프집을 찾아왔다.

처녀때 이 도시의 유명한 미용실 원장이 미스 경남에 나가라고 따라다니면서 권유하는 걸

엄마가 말렸다는 언니는 따르는 남자들이 많다. 손님 중 많은 사람들이 누야, 누야 부르면서 오고

손님 중 언니가 자신의 첫사랑이였다는 사람도 있다. 난 누구의 첫사랑도 되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누군가의 첫사랑이 될 수 있었던 예쁜 여자들이 참 부럽다. 언니는 두서 없이 음식을

만드는 것 같은데, 뭐든 뚝딱뚝딱 무치고 만들면 맛이 있어, 이마에 땀이 뻘뻘 흐르도록 생멸치

조림과 갈치 조림, 동태찌개 따위를 먹은 손님들이 카드 결제를 하는 동안 꼭 맛있다는 말을

하고 간다. 언니는 음식을 애써 꾸며 내지 않는다. 상추도 가지런히 예쁘게 놓으라고 닥달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손에 집히는데로 푸짐하게 자연스럽게 준다. 마치 옛날 시골집 텃밭에서 급히 따다가

급히 씻어 점심상에 내 놓은 것 같이 모든 음식이 편안하게 나간다. 특히 고추 장아찌와 깻잎을

멸치 젓갈에 버무려서 만든, 반쯤 삭은 멸치가 통째로 나오기도 하는 고추 장아찌 무침은 어느

식당에서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언니만의 별미 같다. 언니가 만드는 반찬은 거의 날마다 바뀌고

김치와 거의 모든 재료들이 국산이고, 새벽장에서 사온 것들이다. 무엇을 만들든지 꼭 나를 불러

맛을 보라하고, 내가 아이들에게 하듯, 맛이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마치 내 혀가 무슨 천재적인

감각이라도 가진 사람처럼 우쭐해져서 싱겁다, 짜다, 달다, 뭐가 2% 부족하다며 까다로운 맛평을

한다. 나는 언니가 재료비라도 아끼라고 음식을 일본 사람처럼 접시에 발라서 내는데 언니는

푸짐하게 내 드리라고 나를 나무란다. 모자라면 한번더 갖다주면 된다는 나의 고집은 입밖으로 내지

않고,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을 언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잘 모른다. 아직도 지구에 굶어죽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우리가 음식을 낭비하고 버리는 일은 염치없고, 의리 없으면 아주 둔한 사람이

하는 짓이라는, 밥솥 밑에 눌러붙은 누렁지 같은 생각도 입밖에 내지 않는다. 어쨌거나 서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더 편하고 기분 좋을까 궁리하는 시간은 누구랑이라도 신혼처럼 달콤하다는 것을

요즘 느낀다. 그런 마음으로는 노동을 하는데도 소풍와서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재미가 있다.

어제는 뿌옇게 보이는 유리컵을 몽땅 꺼내어 수세미로 문지르고 세척 했다. 선반의 어디에. 어느 구석에

상대방을 기쁘게 할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를 찾듯, 나는 구석구석에서 더러움을 찾아낸다. 음식을 맛있게

하는 반면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언니는,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잘 한다고 아주 기쁘한다.

사실 나도 벗은 옷 그대로 주저 앉혀 놓는, 뒤죽박죽 별장의 삐삐 같은 사람이지만 어쩐지 내가 일하는

언니의 가게 만큼은, 샤방샤방이라는 트롯트 가사처럼 만들고 싶다. 뭐든 기분이 내켜서 척척 해내는

일은 골병이 없다. 하기 싫어서 어기적 어기적 마지못해 일을 하면 삭신이 쑤시고 몸이 늘어지는데

기분 좋게 신이나서 해치우는 일은 완전연소한 종이처럼 뒤끝이 없는 것이다. 키가 크고 예쁜 언니가 내가 일하는

호프집에 손님들을 몰고 와서 사장에게 "참 좋은 동생입니다.  좀 예쁘게 잘 봐주이소! 잘 부탁 합니더"

하니까 사실은 코끝이 찡해져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언니가 몰고 온 손님들의 옆구리를 툭툭 쳐서 각자

팁을 주고 갔다. 늘 처음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고 경계해서 친해졌다고 해서 마음이나 태도가 달라지지 않게

변함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사이에 영원이란 죽을 때까지다. 지구는45억년 넘게 있어 왔는데

사람의 평생은 요즘 길어져서 백년을 넘본다. 그 짧은 시간동안 의리를 지키는 일을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짧은 시간 동안, 필요나 이해 관계에 따라 의리를 갈아타고 사는 것이다. 서로 마음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조건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등을 지는 일을 의리 없는 짓이라 부른다. 의리는 낡고 오래된 단어이기도 의미이기도

인간이 그린 인간의 그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름답고 훈훈하다. 실리적인지, 현명한 일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의리를 버리는 인간보다 의리를 지키는 인간이 어느 영화 어느 소설에 나와도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라고 사전에 나오는 이 의리가 인간관계에서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상대방과의 약속이나 관계를 우선시하는 태도나 자세를 말한다. 그냥 대체로 의리라는 단어는 그렇게 살아남은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보다는 사람의 관계에서 끝내 지켜야 할 도리로 더 많이 쓰이는 것이다.

부부도 처음엔 사랑이지만 나중엔 의리로 사는 것이다. 부모 자식 관계도 따지고 보면 의리다. 그 의리를 저버리는 일은

살아가는데 마땅한 사람의 모습을 지키지 않은 일이다. 김보성인지 털복숭이 배우가 드링크 광고 할 때 함께 광고한 의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생이 생각보다 짧기 때문이다. 의리를 버리고 살기에 인생은 어처구니 없이 짧은 시간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심한다. 그 의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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